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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빼이 Jan 19. 2023

초빼이의 노포 일기 [거제 외포항 중앙식당]

꾸덕꾸덕 열흘을 말린 대구회 한 접시의 미학, 그리고 기록

'포항 대구 열 마리를 줘도 거제 대구 한 마리와는 바꾸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 대구를 특산물로 하는 곳은 몇 군데가 있다.

경북 포항에서 시작하여 부산 가덕도를 지나 거제 외포항까지 길게 이어지는 벨트를 이루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거제도 외포항만큼 대구의 크기가 남다른 곳도 없다. 이는 거제 외포항이 지역 특성상 대구가 산란을 하는 가장 최종 종착지에 가깝기 때문.


러시아의 차가운 바닷속에서 살던 대구는 동해안을 따라 남하하여 1차는 포항 쪽에서 잡히고 나머지는 진해만 쪽을 지나 거제 앞바다까지 와서 산란을 하게 된다. 이 이동 경로 중에 울산과 부산 쪽의 거친 바다 물살을 헤치고 오며 거제에서 잡힌 대구는 훨씬 더 살이 튼튼해지고 알까지 가득 품게 되니, 그 크기도 다른 지역에 비해 남다를 뿐 아니라 육질도 더 탄탄해진다.

거제의 대구를 포항의 그것보다 더 쳐주는 이유는 바로 이런 이유 때문.


거제 외포항 대구회. 해풍에 10일 정도 말린 대구회이다.


이미 여러 서적과 다큐멘터리를 통해 대구는 인류의 역사와 밀접한 관계를 가진 생선으로 알려져 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바이킹의 조선술을 이어받아 유럽의 바다를 휘저은 바스크 족의 주요 해상식량이 된 '염장 대구'에서부터 한 때 전 세계의 바다를 주름잡은 영국 해군의 주요 식량으로서의 '대구', 영국의 식민지였던 미국의 독립전쟁 발발의 주요 원인이 되었던 보스턴 지역의 '대구무역 제한법', 그리고 가장 최근에는 잉글랜드와 아이슬란드의 세 차례의  '대구 전쟁(Cod War, 1950년대~1970년대)까지 인류의 역사에 큰 획이 그어지는 순간에 '대구'라는 생선은 그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뜬금없는 대구 타령으로 시작한 이유는 잊혀가는 대구회를 소개하고 싶기 때문.

비록 수년 전의 경험이지만 열흘을 말린 대구회는 내 기억 속에 굉장히 독특하고 강렬한 경험으로 각인되어 있어 여행을 좋아하고 술과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꼭 전해주고 싶다는 개인적인 욕심도 한 몫하였다.



거제 외포항의 대구는 11월부터 시작한다. 거제 외포항의 대구축제도 보통 12월에 열린다. (22년 12월 17일~18일)(금어기 전이 외포 대구를 찾기 좋은 시간이다. 2023년의 금어기는 1월 16일~2월 15일까지 임)

짜디 짠 바닷바람이 잔뜩 날을 벼려 살벌하게 몰아치는 겨울 초입 11월부터 1월 중순 정도의 3개월이 금어기가 풀리는 시간이기 때문. 초빼이는 12월에 외포항을 찾았다. 부산에서 개인 업무를 보고 거가대교를 지나 거제도에 차를 올리면 외포항은 지척에 있다. 겨울의 외포항을 찾으면 위의 사진과 같이 갓 잡은 대구와 물메기가 배를 드러내고 겨울 햇살에 말려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외포항 전체가 대구를 말리는 덕장이 되는 것.


경매장이 자리 잡은 외포항 안쪽까지 들어오면 꽤 많은 횟집들과 생대구나 말린 건조 대구를 파는 천막들이 지천이다. 서울의 수산시장이나 쇼핑센터 수산코너에서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있는 대구는 이곳에 와 보면 어린 대구정도로 치부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고개만 돌리면 눈에 치이는 것들이 8~90센티가 넘는 것들이고 1미터를 넘는 녀석들도 흔하디 흔해 이건 숱체 대구가 아니라 괴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

  

1. 생대구(알이 가득 참)           2. 손질 후 세척한 대구(내장과 아가미 제거)               3. 건조 대구           


낚시를 취미로 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요즘,

수많은 조사들의 경험담에서 빠지지 않는 것이 갓 잡은 대구를 선상에서 손질하여 싱싱한 대구회를 먹는 것인데, 사실 이게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대구회와는 다른 부분이 있다.


외포나 거제, 통영 같은 경상도 바닷가에서는 대구를 잡으면 손질하고 깨끗이 씻은 다음 바람이 잘 드는 곳에 걸어 말리기 시작한다. 이를 한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 하면 대구살에 있던 물기가 빠지고 살이 더 촘촘해지는데, 예전 경상도 사람들은 이때쯤 대구를 손질하여 회를 먹고 남은 부분은 탕을 끓였다. 사실 생대구를 회로 먹는 게 말린 대구로 회를 치는 것보다 훨씬 쉽고 힘이 덜 드는 일이지만 더 좋은 것과 더 맛난 것을 찾는 사람들의 본능이 어디 그걸 쉽게 허할 수 있을까?


외포항에서 오래된 식당인 중앙식당을 찾아 들어갔다.

그리고 대구회를 주문하면서 혹시 일주일에서 열흘쯤 말린 대구 있냐고 물어보니 있다고 하여 '그럼 그걸로 회를 쳐 주세요'라고 부탁했다. 주방에 계시던 이 집 사장님(할머니)께서 '요즘 사람들은 이래 대구회 안 먹는데 젊은 양반들이 어째 이걸 아노?'라며 한 말씀 거드신다.  


1. 대구 알젓                                                                                 2. 대구 아가미 젓


넓은 상에 기본찬과 대구의 부속물(아가미, 알 등)로 만든 젓갈들이 올라온다. 이윽고 말린 대구로 잘라낸 대구회가 한 접시 오른다. 생대구의 물기 많은 흐물흐물한 살결이 아닌 정말 약간의 수분만 남은 꾸덕꾸덕한 살이 확연히 눈길을 끈다. 게다가 사장님께서 신경 써주셔서 잘 마른 껍질까지 함께 잘라주시니 이런 호사가 또 없다.


원래 살에 수분이 많은 생선들은 회로 먹기에는 애매하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좋아하는 광어나 돔, 우럭과 같은 생선들은 살에 기름기가 많은 생선들. 그래서 물기가 많은 생선을 어느 정도 시일에 걸쳐 수분을 빼낸 후 먹는 것이 훨씬 더 맛있게 먹는 방법이다.


경상도식 막장(된장 또는 쌈장에 참기름, 청양고추와 마늘 등을 섞어 만든)은 대구회의 담백한 맛을 더 끌어올려주는 숨겨진 필살기. 대구 살이 겨울 볕과 해풍에 잔뜩 몸을 웅크리며 끌어올린 감칠맛과 꾸덕한 식감에 경상도식 막장의 고소함과 청양고추의 매운맛이 틈새를 파고들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다. 대구회가 입안에서 서서히 녹는 느낌. 그리고 소주 한 잔. 또한 대구 아가미 젓이나 대구 알젓을 대구회에 올려 먹어도 굉장히 좋다. 아마도 이런 경험은 쉽게 할 수 없는 경험일 듯.


쉴 새 없이 움직이는 마눌님의 젓가락을 보며 또 한 번 성공의 미소를 짓는다.


이 정도의 반응을 이끌어 내었다면 쉴 새 없이 그 감동을 몰아쳐 가야 한다. 남은 대구를 끓여 만든 대구탕으로 이 대구회 성찬의 마무리를 지으면 꽤 큰 감동을 오랫동안 간직할 수 있다. 대구탕도 생대구보다는 말린 대구로 끓이는 것이 훨씬 더 맛있다.


이곳의 대구탕은 매운탕보다는 맑은탕으로 먹는 걸 추천하는데 이유는 맑은탕으로 먹어야만 말린 대구의 참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기 때문. 보통 우리가 서해안의 우럭탕을 찾을 때 생우럭으로 끓인 것보다 말린 우럭으로 만든 우럭탕을 훨씬 더 선호하는데 이는 소금기 가득한 바닷바람과 겨울 볕이 만드는 절대적인 마법이 우럭을 더 감칠맛 나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비슷한 사례는 아구찜에서도 찾을 수 있는데 아구찜의 본고장인 마산에서는 생아구보다 건아구를 많이 사용하는 것도 비슷한 이유이다.


무 등의 채소와 말린 대구 조각을 함께 물에 넣은 후 끓이다가 소금이나 새우젓으로 적당히 간을 하고 바로 먹을 수 있을 만큼 감칠맛이 좋다. 다른 육수나 조미가 필요 없을 정도. 술 좋아하는 분이라면 꼭 한 번은 경험해 보시라고 추천하고 싶다. 아마 처음으로 맛보는 대구탕 맛에 자리를 뜨기 싫다는 기분도 느낄 수 있다.


사족을 붙이자면,

이 대구회와 탕을 경험해 본 마눌님이 통 크게 대구 한 마리를 주문, 배송하여 지인들과의 모임에서 회와 탕으로 와인과 페어링 해서 먹기도 했다. 거의 1미터에 가까운 말린 대구 한 마리 가격이 몇만 원 정도 수준이니 시기를 잘 맞춰 서울에서 주문해 먹는 것도 나쁘지 않다. 참고로 배송할 때는 조각내서 달라고 해야 한다.    


또 하나의 사족.

외포항의 많은 식당들은 생대구로 회를 내고 탕을 끓인다. 초빼이가 방문했던 것은 몇 년 전이었고 옛 기억을 살려 당시 중앙식당 사장님께 특별히 부탁했고, 그분께서 기꺼이 승낙해 주셔서 가능했던 부분.

물론 그 집에서 열흘 정도 말린 대구를 두 마리 정도 더 사기도 했다. 결론을 말하자면 요즘 가면 그런 부탁을 안 들어주실 수도 있다는 것. 영업에 방해가 되는 일을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무조건 가서 떼쓰지 말기를. 나의 경우는 굉장히 운이 좋았던 경우이니. 특별한 경험이라고 한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기도 하다.  


[메뉴추천]

1. 1인 : 음식의 특성상 1인분은 조금 힘들다.

2. 2인~4인 : 대구회를 주문하시되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 말린 대구를 회쳐줄 수 있는지 물어보면 됨.(불가능할 수도 있다) 대구탕은 꼭 맑은 탕으로 드셔 보시길. 대구살의 감촉과 식감이 예술적이라는.    

* 개인의 취향에 의한 추천이니 절대적인 것은 아님. 적어도 사람 수만큼은 주문해야 도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만.


[추가 팁]

1. 거제 외포항으로 가서 횟집에 들려 포장을 해서 숙소로 가도 됨.

2. 아니면 서울에서 외포항의 식당(식당들이 보통 대구도 같이 팝니다)을 검색하고 그곳에서 말린 대구를

    주문하는 것도 방법임. 단 말린 대구는 회를 뜨기에 조금 많이 힘들다.

3. 대구를 주문할 때, 꼭, 반드시! 토막을 내서 달라고 하시길. 대구뼈는 굵은 나무 같아서 칼로 자르기에

   쉽지 않다. 잘못하면 도마와 식칼 몇 개를 버려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실제로 그곳 어부들도 대구를 자를 때 톱을 쓰기도 한다.

4. 11월에서 1월이 대구가 좋은 시기입니다. 1월 말 이후 산란을 마친 대구는 상대적으로 맛이 떨어집니다.  

5. 일반적으로 외포항의 대구 축제는 매년 12월 중순 경에 열린다.

6. 주차는 식당 앞쪽에 주차장으로 쓰는 빈 공간이 많고, 자리가 없을 경우에는 수협 경매장 건물 뒤편에도

    주차가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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