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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빼이 Dec 19. 2024

고독한 미식가가 찾았던 청국장 백반집, 토방

142. 전북 전주시 평화동 1가 토방

초빼이는 일본이라는 국가와 그들의 정치인들은 그리 좋아하지 않지만, 보통의 일본인들에게는 꽤 호감을 가지고 있는 편이다. 특히 일본인들의 특성이라 할 수 있는 세심함과 디테일,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는 태도, 그리고 어떤 분야에서든 깊게 파고들어 전문가가 되어버리는 그들의 장점들을 좋아하고 인정한다.


초빼이가 처음 미식과 음식에 대한 공부를 시작할 때 다른 이들처럼 일본의 미식과 요리 만화를 참조한 적도 있다. 혹자는 "다 큰 어른이 무슨 만화책이냐?"라며 핀잔을 주기도 했지만, 지금 뒤돌아 보면 그때의 그 선택은 그리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아주 오래전에 읽었던 '미스터 초밥왕'에서부터 '맛의 달인', '심야식당', '라면 요리왕', '방랑의 미식가', '신의 물방울', '에키벤' 그리고 '고독한 미식가'까지, 기억을 더듬어 보니 꽤 많이 읽었었다. 그중에서도 고독한 미식가를 좋아하였는데, 그 작품은 드라마로 만들어져 아직도 즐겨보고 있는 편이다. 주인공 '고로상'으로 캐스팅된 '마츠시게 유타카'를 굉장히 좋아하기도 한다. 대부분 혼자서 노포 식당을 찾는 초빼이의 노포일기도 고독한 미식가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할 수 없을 듯하다. 


고독한 미식가는 담백한 내용의 잔잔한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다. 유럽의 앤티크 물품을 수입하는 고로상이 도쿄와 일본 전역(때론 해외도)에 출장을 다니며 해당 지역의 괜찮은 식당을 찾아간다는 간단한 구조의 드라마. 시즌이 거듭될수록 찾아가는 식당의 지역이 넓어졌는데, 최근에는 대만이나 한국의 식당도 가끔 한 번씩 등장하기도 하니 더 반갑다. 

고독한 미식가 시즌 7의 에피소드 중 하나는 전주 출장에서 찾았던 청국장 백반집이 있었다. 초빼이가 사랑하는 '고로상'이 찾은 곳이니, 초빼이도 꼭 한번 찾아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전주의 중심에서는 조금 떨어져 있는 평화동의 한편에 '토방'이라는 백반집을 찾았다. 우리나라 사람도 요즘은 조금 먹기를 주저하는 청국장을 에피소드로 만들었다니 조금 놀랍기도 했다. 일본에는 우리와 비슷한 낫또가 있어 괜찮은 건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에서는 '전시(戰時)에 단기숙성으로 단시일 내에 제조하여 먹을 수 있게 만든 장'이라고 청국장을 정의한다. 그런 의미에서 전국장(戰國醬)이라 부르기도 하고 청나라에서 배워온 것이라 하여 청국장(清國醬)이라 부르기도 했으며 전시장(煎豉醬)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1760년(영조 36년) 발간된 '증보산림경제'에 제조 방법을 기술하며 문헌에 처음으로 등장한다. 일본의 낫또도 청국장과 기원에서 차이는 없는 것 같. 병사들의 주식으로 쌀이 아닌 콩을 삶아 보관하는 과정에서 콩이 자연 발효가 되며 만들어졌다고 한다. 발견하게 되었다는 것. 


초빼이가 그렇게 즐겨 먹던, 청국장이 소위 요즘 언어로 이야기하면 군인들을 위한 '전투식량'으로 만들어진 음식이라니 놀랍기만 하다. 초빼이의 군 생활 중에는 한 번도 청국장은 나온 적 없었고 1년 365일 '똥국(두부 된장국)'만 나왔던 것 같다. 또 한편으로는 매일매일의 일상이 전쟁인 현대인들에게는 어쩌면 한 끼의 청국장 식사가 전투식량으로서 기능을 하니, 나름 의미가 없는 것도 아니다 싶다.  

바쁜 점심시간이 갓 지난 시간, 여전히 사람들로 가게 내부는 가득했다. 다행히 1인 손님을 위한 좌석이 하나 남아 있어 별도의 대기 없이 자리를 잡았다. 사장님 청국장 하나요. 이곳 '토방'에서 식사는 나름의 체계가 있다. 마치 계단 하나하나를 밟아 올라가는 듯, 순서를 지켜 음식을 먹어야 한다.  먼저 먹고 싶은 메뉴를 골라 선택한다. 사진의 메뉴판에서처럼 보쌈 정식백반과 불고기 백반은 2인 이상 주문해야 하는 메뉴. 초빼이와 같이 혼자 찾은 사람은 주문하기 어렵다. 그러면 아래의 가정식 백반을 주문해야 하는데 '오늘의 백반' 메뉴는 매일 바뀐다. 초빼이가 찾은 날 백반은 총 3가지. 청국장과 김치찌개, 새우탕 중 하나를 주문하면 된다. 


초빼이의 선택은 당연히 청국장 백반. '이노가시라 고로'상도 청국장 백반을 주문했다. 

참 신기한 것이 초빼이는 콩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는데 콩으로 만든 두부나 비지, 청국장은 너무너무 사랑한다.(콩밥, 콩자반. 콩국수 어쩔 수 없는 경우만 제외하고 먹지 않는다.) 테이블에 찬이 올라왔다. 여느 백반집의 찬 구성과 그리 다르지 않다. 재밌는 것은 메인 요리가 청국장인데, 반찬으로 메인 요리급의 제육볶음을 작은 접시로 낸다. 그리고 세 가지나물을 기본으로 주시는데 나물의 양과 담긴 모양새가 누가 봐도 비빔밥용이라고 추측할 수 있을 정도다. 비빔밥을 마누라님만큼 사랑하는 초빼이가 밥을 비비지 않을 수 없다.   


널따란 접시에 담긴 계란 프라이마저 비빔밥에 넣기 좋게 '흰자를 넓게 펴서 익혔다'. 사실 비빔밥에 넣는 계란은 노른자를 익히지 않으면 좋은데, 쉴 새 없이 몰아치는 손님들과 전쟁을 치르는 주방에서는 계란 프라이를 만드는 데 드는 노력도 최소화하기 위해 앞뒷면 모두를 익힌 것 같다. 큰 비빔밥 그릇에 모든 것을 들이부었다. 나물도 반찬용 한 두 젓가락 분량만 남기고 몰아넣었고, 계란 프라이도 올렸다. 가장 중요한 청국장도 두세 숟가락 넣는다. 청국장 국물은 밥이 잘 비벼지게 윤활유 역할도 하지만 쿰쿰한 냄새의 청국장 풍미도 비빔밥에서 살릴 수 있어 자주 애용하는 방법이다. 


이 집의 된장은 연한 색이지만 의외로 강된장에 가까운 진한 맛을 가지고 있었다. 마늘 한 조각 된장을 묻혀 제육볶음과 쌈을 싸 먹는데 깜짝 놀랐다. 색상만 보면 식당에서 많이 쓰는 그런 공장에서 만든 된장 같지만 맛을 보니 직접 담근 장을 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무채 나물을 무친 찬모님의 솜씨가 정말 좋다는 느낌이랄까? 가볍지도 그렇다고 무겁지도 않은 밸런스를 잘 갖춘 무채가 너무 마음에 들었다. 해외의 드라마에까지 나올 정도면 무언가 이유가 있겠지 싶었는데, 역시 음식들의 맛이 기대 이상이었다. 

비빔밥을 만들었으니 이젠 무제한의 흡입시간. 

비빔밥을 가장 잘 먹는 방법은 '한정된 숟가락이라는 공간' 위에 모든 노하우를 동원하여 다양한 채소와 밥을 최대한 많이 올려 '한 수저로 입 안 가득 채울 양'을 만들어 먹는 것이다. 저작이 힘들다고 느낄 정도로 밀어 넣어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곡물과 채소로 이뤄진 한 수저 정도의 양은 어떻게 해서든 씹어 넘길 수 있도록 우리의 몸은 만들어져 있으니. 우리의 몸을 믿어야 할 순간이다. 가끔 목이 메이거나 뻑뻑한 느낌이 들면 가볍게 청국장 한 수저 들이키면 된다. 


토방의 청국장은 기대만큼 맛있었다. 진한 청국장 냄새가 너무나 마음에 들었고 그 쿰쿰한 향을 맡으면 없는 병도 다 나을 것 같은 묘한 기대감까지 안겨줬다. 유난히 청국장을 먹을 때마다 청국장을 음식으로 보지 않고 건강 보조식품 내지는 약처럼 느낄 때가 있는데, 이 집에서는 그런 느낌이 조금 더 강하게 났다. 청국장의 쿰쿰함이 조금 더 남달랐기 때문일 테다. 잘 띄운 청국장일수록 그 쿰쿰함이 더 강하다고 하는데 이 집의 것이 바로 그랬다. 어느새 청국장과 비빔밥 그릇이 바닥을 드러냈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다. 밥을 다 먹을 때 즈음, 직원분이 작은 쇠 냄비를 하나 테이블에 올리고 가시는데, 누룽지에 물을 붓고 끓여 숭늉을 만든 솥째로 주신다. 팔팔 끓고 있는 숭늉을 보니 마치 작은 시골 한정식 집에 온 듯한 느낌도 난다. 소박하지만 어느 것 하나 버릴 것 없는, 꽉 찬 밥상이다. 그러고 보니 요즘 너무 백반집을 가지 않은 것 같다는 후회도 한다. 숭늉 한 모금에 온몸의 세포가 살아있다는 신호를 보낸다. 


속이 편안해진다. 오랜만에 혼자 구시렁대지 않고, 핸드폰도 주머니에 넣고 밥을 먹었다. 

그야말로 청국장과 비빔밥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낯선 전주의, 이름도 모르는 골목 식당에 앉아 '고로'상이 이 훌륭한 음식을 맛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추측도 해 본다. 

아! 생각해 보니 고독한 미식가를 촬영할 당시에는 이 집은 좌식 테이블을 썼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모두 입식 테이블로 바꿨구나.      


[메뉴추천]

1. 1인 방문 시 : 가정식 백반 + 소주

2. 2인 이상 방문 시 : 보쌈 정식백반 또는 불고기 백반 + 소주 

* 개인의 취향에 의한 추천이니 절대적인 것은 아님. 적어도 사람 수만큼은 주문해야 도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만.


[추가 팁]

1. 별도의 주차공간은 없으나 인근 도로변 주차 가능. 

2. 월~토 09:30~20:00 / 브레이크 타임 14:30~17:00 / 정기휴무 일요일

3. 참고

    -  청국장 백반 강추. 굉장히 독특한 청국장이 매력적이다. 

    -  반찬, 특히 나물류가 좋다. 역시 미식의 본고장 전주 사람들의 손맛은 살아있다. 

4. 여행 및 관광 정보

    - 전주 노포 : 진미(중국요리집), 진미집 본점(같은 상호이나 돼지불고기집이다), 전일갑오, 초원편의점, 

      해태바베큐, 연지본관, 중앙식당, 베테랑칼국수, 남문손칼국수, 한미반점, 현대옥, 삼백집, 육일식당, 동락

      일식, 대보장, 행원, 조점례남문피순대, 남노갈비, 효자문식당, 왱이콩나물국밥전문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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