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사장님은 홀쭉해요. 손님들만 뚱뚱할 뿐. 중앙동 뚱보집

173. 부산 중구 중앙동 뚱보집

by 초빼이

초빼이는 허름한 노포가 좋다. 노포 중에서도 '허름한'이라는 형용사를 붙일 수 있는 곳을 특별히 더 좋아한다. 전국 각지의 노포를 찾아다니며 취재하고 그 집들의 음식을 맛보는 것이 초빼이의 주된 일이라 이미 수백 곳의 노포를 찾았다. 때로는 깔끔하게 잘 정리된 매장도 있고, 이미 대기업 프랜차이즈 수준의 인테리어와 시스템을 갖춘 곳도 있지만, 거의 대부분의 노포들은 허름하고, 정리되지 않고, 때로는 불편함을 느낄 정도로 옛날식으로 운영되는 곳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빼이는 그런 허름한 노포들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따뜻함을 느낀다. 참으로 독특한 취향이다.


불현듯 초빼이가 '노포를 찾을 결심'을 하게 된 순간이 떠 오른다. 첫 해외 출장지였던 중국 천진과 북경에서 만났던 백 년이 넘는 노포에서 그들의 역사와 문화를 경험하며 '우리나라의 노포도 찾고 싶다'는 혼자만의 다짐을 했던 순간이 기억난다. 백 년 노포가 주는 그 경이로움과 오랜 문화의 발자취를 온몸으로 느끼며 전율을 느꼈던 것 같다. 그 당시에도 이런 문화유산(노포)은 그 자체가 가진 매력과 정체성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주목받을 것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던 것 같다.


직장 생활을 하며 틈틈이 일본과 중국을 찾았고 그들의 노포를 하나씩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노포는 우리의 노포들과 사뭇 다른 점이 많았다. 오래전부터 상업이 발달했던 일본과 중국은 상인에 대한 대우가 그리 나쁘지 않았다. '사농공상(士農工商)'이라며 상업에 종사하는 이들을 가장 아래로 치던 우리와는 시작부터 차이가 있었다. 상업을 우대하니 경제가 급속도로 발달하기 시작했다. 19세기말과 20세기 초, 우리가 외세에 의해 반 강제적 개항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이런 차이에서 시작했다.

곤고구미.jpg
북경 동인당.jpeg
일본 - 곤고구미(578년 창업) / 중국 - 북경 동인당(1669년 창업)

* 사진출처 : 네이버 이미지 검색. 사진 사용에 문제가 있을 경우 삭제하겠습니다


일본은 노포의 나라다. 전 세계 100년 이상 기업 중 40%, 세계 최장수 기업 10개 중 9개가 일본의 기업이다. 100년 이상된 기업이나 가게만 27,300여 개가 있고 500년을 넘긴 곳이 150여 개, 1천 년 이상의 가게가 21개나 된다. 일본에 이처럼 노포가 많은 것은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일본인들은 '전통과 신의'를 우선한다. 또한 사회 전반에 걸쳐 한 가지 분야를 깊이 파고드는 '장인정신(모노즈쿠리, ものづくり)과 기술'을 높이 평가한다. 거기에 일본 자체를 뜻하는 '와(和)'라는 정신이 있기 때문이다. '와(和)'는 일본 자체를 의미하기도 하며 '조화나 화목'을 뜻한다.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남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다는 의미도 있다. 이런 이유로 일본의 노포는 몇 백 년의 시간이 흘러도 한자리에서 작은 규모로 운영되고 있는 집이 많다. 거기에 더해 정부 지원은 사업의 승계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강하니 노포가 오래갈 수밖에 없다.


오랜 역사를 가진 중국도 노포는 활성화되어 있다. 일본에 뒤지지 않는다. 400년 이상된 노포에서부터 다양한 노포가 그 넓은 영토 곳곳에 있다. 중국에서 노포는 '라오쯔하오(老字号)'라고 부른다. 검은색 바탕에 황금색 글씨로 쓴 간판이 상징이다. 1949년 공산화 이전까지 1만 개가 넘는 노포가 있었으나 사라지거나 정리되었다. 1991년 중국 상무부가 엄정한 기준으로 재선정한 노포수는 1천6백여 곳. 2023년 기준 1,128개의 노포가 남아 있다. 노포의 평균 연수도 160년 정도이다. 중국의 노포는 식, 의약품과 요식업 노포가 전체의 60% 정도를 차지한다. 중국의 라오쯔하오는 국가가 관리하고 국가가 지원한다. 일찍부터 노포의 중요성을 인식한 중국 정부는 '중국 장수기업 브랜드 인정 관리방법'이라는 법률에 근거, 중국 상무부 산하 '장수기업 브랜드 진흥발전 위원회'에서 운영과 지원을 총괄한다. 상무부 외 16개 부처가 노포 지원 프로그램에 관여하고 있다. 그래서 중국의 노포는 기업형태가 많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천진 구부리(狗不里), 동인당(同仁堂), 전취덕(全聚德) 등의 노포들은 상장된 거대 기업이기도 하다.


이들에 비해 우리나라의 노포는 조금은 빈약한 편이다. 소상공인진흥공단의 발표에 따르면 100년 이상 생존하고 있는 기업은 10개만 있다. 30년 이상 운영된 가게를 대상으로 선정하는 백년 가게는 23년 기준 1,350개다. 그중 18개의 노포는 코로나 시기를 거치며 폐업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선시대부터 상인들을 천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당연히 상업이 발달하지 못했다. 우리나라에서 100년 이상된 기업이 많지 않은 가장 큰 이유다. 거기에 더해 일제의 강점기 시절을 거치며 심한 수탈을 겪었고, 한국 전쟁으로 인해 그나마 존재했던 산업 기반이 무너져 버렸다. 전쟁은 우리나라의 산업을 초토화시켰지만 또 한편으로는 요식업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전후 일자리를 잃고 전쟁으로 인해 배우자를 잃었던 여성들이 가장 진출하기 쉬웠던 요식업으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백반집도 이 시기부터 등장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노포 중 5~60년대에 영업을 시작한 곳이 많은 것은 사실 이런 사정 때문이다.


중국은 상무부와 16개 부처가 집중 지원을 통해 노포의 성장과 지원을 총괄하고 규모를 키워 상장까지 지원해 준다. 일본은 노포의 지속성 확보를 위해 상공회의소와 48개 지역에 거점 사업지속지원센터를 구축, 인력 DB를 구축하고 노포의 마케팅과 홍보를 집중 지원한다. 은행과 연계 다양한 지원 프로그램도 확보하여 각 사례에 맞는 자금 지원, 대출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에겐 일본이나 중국처럼 노포를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거의 없다. 대표적으로 소상공인 진흥공단의 '백년 가게'나 서울시와 인천시에서 운영하는 '오래 가게', '이어가게' 제도가 있다. 지원책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현판 하나와 웹사이트에 소개 등이 거진 전부다. '노포'를 지역사회의 공공재로 간주하거나 관광객을 유입시키는 관광자원으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아쉬운 마음이 가득하다.

백년가게_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jpeg
오래가게_서울시.jpg
이어가게_인천시.jpeg
백년가게(소상공인진흥재단), 오래가게(서울시), 이어가게(인천시)

우리나라의 노포는 생계형 가게에서 시작한 곳이 많다. 전쟁과 가난으로 인해 '호구지책(糊口之策)'으로 시작했던 가게가 수십 년을 이어오며 영업해 온 결과물이다. 그래서 허름하고 작은 노포들이 많을 수밖에 없다. 전문적인 음식점 경영의 노하우나 위생에 대한 개념들이 천차만별일 수밖에 없다. 노포의 음식은 지역을 대표하는 음식이며, 세대를 거쳐 이어오는 맛의 기준이 된다. 요즘의 지나치게 맵고 과하게 단 음식들과는 그 궤가 다르다. 사실 노포의 음식 하나만으로도 그 가치를 인정받아야 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현실의 벽은 그리 녹녹지 않다.


그래서 초빼이는 허름한 노포를 좋아한다. 뭔가 예스러운 '날 것'을 볼 수 있다는 느낌이다. 얼마 전 부산행에서 가장 먼저 찾았던 집은 부산의 구도심이라 할 수 있는 중앙동 뒷골목의 노포였다. 서울에 충무로(忠武路)가 있다면, 부산엔 중앙동(中央洞)이 있다. 충무로와 중앙동은 쌍둥이처럼 유사한 점이 많은 곳이다. 일제 강점기 시절 일본인들의 거류지였던 것에서부터 그 시대의 사람들이 많이 찾았던 중심가 역할도 했다. 게다가 묘하게 오래된 인쇄골목과 오래된 극장도 품고 있었다. 본정통(일제 강점기 시절 충무로의 명칭으로 일본인들이 만든 중심이라는 의미)과 중앙동(일본인들이 만든 중심지역)이라는 명칭의 의미에서도 겹치는 부분이 있다.


옛 부산에서 배를 타는 뱃사람들이라면 중앙동은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동네였다. 고된 뱃일을 끝내고 육지로 발을 디디는 순간 그들의 발끝은 본능적으로 중앙동으로 향했다. 뱃일의 대가로 받은 품삯으로 주머니는 두툼해졌고 주머니에 넣은 손은 마음만큼 대범해졌다. 구석구석 자리한 중앙동의 선술집들 골목에선 술잔을 부딪히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하이톤의 '찐한' 경상도 사투리가 뒤섞이며 바다의 고단함을 풀어냈다.


부산항이 외세에 열리며 중앙동에는 거대한 변화가 찾아들었다. 초량역(현 부산역) 앞으론 청국의 조계지가 들어섰고, 중앙동에는 일본인들이 발을 들여놓았다. 좁고 어두운 골목으로 일본식 상점가, 관청, 은행, 창고 그리고 항만시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뱃사람들이 밀려난 빈자리엔 일본인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일본의 영사관이 들어섰고, 조선은행과 동양척식주식회사가 둥지를 틀었다. 해방이 된 후 중앙동은 다시 부산 사람들의 손으로 돌아갔다. 그것도 잠시, 한국전쟁이 발발하며 중앙동으로 8도의 모든 이들이 몰려들었다. 전쟁의 참상을 피해 몰려온 사람들이었다. '40 계단'은 전국에서 몰려든 사람들이 헤어진 가족과 상봉하기 위한 '만남의 광장'으로 변신했다. 중앙동의 나지막한 산은 전국에서 몰려온 피난민들의 판자촌으로 채워졌다. 근처의 국제시장과 자갈치 시장이 연계되어 미군을 상대로 한 상권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1910년대부산중앙동부산역_출처_한국저작권위원회_2018년공유저작물DB수집.jpg
1966년부산중구중앙동상품박람회장의사람들_출처_한국저작권위원회_2018공유저작물DB수집.jpg
(출처 : 한국저작권위원회_2018공유저작물DB수집, https://gongu.copyright.or.kr/)

(사진 1. 1910년대 부산 중앙동 부산역 / 사진 2. 1966년 부산 중구 중앙동 상품 박람회장의 사람들)


전쟁 이후 중앙동은 전 세계의 문화가 우리나라로 들어오는 관문이 되었다. 부산의 금융, 무역, 해운업의 중심지로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일본식 건물은 현대식 빌딩으로 탈바꿈했고, 광복동과 함께 부산을 대표하는 최대의 번화가가 되었다. 도시는 살아있는 생물처럼 전성기를 누렸다 조금씩 시들어갔다. 도심이 노후화되며 사람들은 새로운 상권을 찾기 시작했다. 서면과 해운대, 센텀시티가 새로운 도심으로 떠오르며 중앙동은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져 가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발걸음이 뜸한 중앙동 뒷골목을 부러 찾아다니며 걸었다. 그러다 한 순간 어느 골목에 들어서니 뿌연 연기가 가득 해지며 기분 좋은 불향의 강력한 유혹이 초빼이를 끌어들이기 시작했다. 낮고 허름한 가게 앞에서 많은 이들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서 있었다. 내가 원하던 곳을 제대로 찾아왔다는 확신도 함께 찾아들었다. 사장님께 나무 주걱으로 만든 번호표를 받고 가게 앞에서 어슬렁 거렸다. 의외로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졌다. 중앙동의 허름하고 오래된 노포 '뚱보집'이었다.


원래 이 집에선 '록빈'과 '수육'을 먹을 작정이었다. 하지만 가게 앞 연탄화로에서 석쇠질로 불향을 입히며 완성되는 쭈꾸미 구이를 보고 있으니 마음이 바뀌었다. 초빼이의 마음은 바람 앞의 갈대처럼 수시로 이리저리 흔들린다. 소나무처럼 강한 바람에도 굳건히 지조를 지키는 그런 마음은 절대 가질 수 없다. 붉게 양념된 쭈꾸미가 지긋이 타오르는 연탄불 위에서 고춧가루 탄 내를 피우며 무르익어가는 것을 보니 마음을 바꾸지 않을 수 없었다. 혼자 찾았기에 구석진 자리로 안내받았다. 과감히 수육을 포기하고 쭈꾸미 구이와 록빈 그리고 소주를 청했다. 주변에 있는 모든 테이블엔 쭈꾸미 구이가 올려져 있었다.


사람은 역시 시류의 흐름을 잘 파악하며 조금은 '얍삽'하게 움직일 필요도 있다.

KakaoTalk_20250624_171626166_05.jpg
KakaoTalk_20250624_171624027.jpg
KakaoTalk_20250624_171624027_23.jpg
KakaoTalk_20250624_171624027_20.jpg

뚱보집의 기본 반찬은 모든 게 배추로 만들어진다. 배추나물과 잘게 자른 배추김치, 그리고 쌈용 배추가 전부다. 거기에 조금은 빈약한 듯한 국물 하나가 추가되었다. 오랜 기다림에 말라버린 목을 달래기 위해 고니탕에 수저를 댔다. 갑자기 눈이 확 트이며 반사적으로 소주병의 뚜껑을 땄다. 의외로 부산 지역소주인 대선소주보다 초빼이의 고향인 마산 무학소주의 '좋은데이'를 많이 마시고 있다. 연속으로 두 잔을 마셨다. 그리고 다시 고니탕 한 수저. 어지간한 식당의 고니탕이나 동태탕보다 훨씬 낫다. 조금은 칼칼하면서도 시원한 경상도 음식 특유의 '거칠음'이 생생하다. '어 이거 물건인데?'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동태탕이나 고니탕이 메뉴에 있었다면 아마 추가로 주문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입에 착 붙었다. 작은 국그릇에 무 2조각, 고니 3~4조각이 정량인 듯하다. 쭈꾸미와 록빈이 나오기 전 소주병을 2/3나 비웠다. 시작이 좋다.


거의 동시에 록빈과 쭈꾸미 구이가 테이블에 올랐다. 본격적인 만찬의 시작이다. 조금은 조잡한 에나멜 식기들이 플라스틱 간이 테이블을 뒤덮었지만 '용기(容器)'가 무에 중요하랴? 처음 찾은 노포의 음식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용기(勇氣)'만 있으면 된다. 게다가 어차피 초빼이는 허름한 선술집을 찾은 것이 아니었던가?


쭈꾸미 구이는 매운 양념으로 버무린 쭈꾸미를 석쇠에 올려 연탄불에 굽고, 접시에 올려 다시 매운 양념장을 한번 더 발라서 나온다. 쭈꾸미를 버무린 양념은 매운 고춧가루가 메인이고, 마지막에 한번 더 바르는 양념장에는 톡 튀는 날카로움을 담기 위해 '캡사이신'을 주로 쓴 것 같다. 캡사이신은 불에 올리면 소위 말하는 '날내'가 나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연탄불에 달궈 향 좋은 불내를 입히고 다시 매운맛을 한번 더 보충한 땡초 쭈꾸미는 그야말로 매력적인 모습과 향기로 초빼이를 끌어당겼다. 경험해 본 적은 없지만, 옛 선술집의 '작부'들이 붉은 입술을 번득이며 멀리서 찾은 객을 유혹하는 것이 이와 같았을 것이다. 조금씩 술기운은 오르고, 기막힌 불향이 안개처럼 몽환적으로 농염한 분위기를 만들어 주니 도저히 뿌리칠 수 없었을게다.

KakaoTalk_20250624_171624027_18.jpg
KakaoTalk_20250624_171624027_16.jpg
KakaoTalk_20250624_171624027_15.jpg
KakaoTalk_20250624_171624027_12.jpg
KakaoTalk_20250624_171624027_10.jpg
KakaoTalk_20250624_171624027_03.jpg

작은 배춧잎 한 장을 손바닥에 올리고 젓가락을 들어 쭈꾸미를 그 위로 포갰다. 손위에 올린 쭈꾸미가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닥터 스트레인저의 '도르마무'처럼 몇 번을 되풀이했다. 처음엔 달콤한 맛이 부드럽게 찾아왔다. 쭈꾸미에 손을 가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매운맛이 중첩되며 그 본성을 슬며시 들이밀기 시작했다. 몇 번이나 중첩된, 날카롭게 벼린 매운맛이 송곳처럼 온몸의 땀구멍을 뚫는 것 같다. 쭈꾸미를 먹을수록 입안은 불타 올랐지만 개운함과 시원함이 입을 제외한 온몸에 휘몰아쳤다. 지독한 '쾌락'은 강렬한 '통증'을 수반한다. '쾌락'은 '고통'의 또 다른 이름이다. 언제나 함께 존재한다. 정말 잘 구워낸 쭈꾸미 구이다. 탱글탱글한 쭈꾸미의 식감은 최고로 살리며, 짙은 불향도 놓치지 않았다. 석쇠를 잡은 이의 노련함이 쭈꾸미 구이의 식감에 그대로 묻어 나온다. 예사롭지 않다.


좀처럼 진정되지 않는 입에 '록빈' 한 조각을 급하게 투입했다. 매운, 그것도 심하게 매운 음식을 내는 집들은 보통 그 매운맛을 누그러트릴 수 있는 보완재를 하나씩 가지고 있다. 이 집에서는 록빈이 그 역을 맡은 듯하다. '록빈'이라. 녹두 빈대떡의 줄인 말이 아닐까 잠시 의심했지만, 그것과는 전혀 상관없는 음식이다. 사장님께 록빈이 무슨 뜻이냐고 여쭸더니 "그거 그냥 아무 뜻 없어예. 그냥 지은 이름입니더"라고 무심히 답해 주신다.


뚱보집의 '록빈'은 몇 년 전부터 소문을 들었던 음식이기에 사장님의 무심한 대답이 조금은 허망하기도 했다. 록빈을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새우를 넣어 튀긴 야채튀김이랄까? 분식집의 일반적인 야채튀김보다는 몸집을 불린, 그런 음식이다. 잔뜩 펌핑된 몸과 기름에 튀겨 윤기가 흐르는 피부를 가진 녀석이다. 거기에 채소들의 달콤한 맛을 몸에 담고 있으니 소주나 막걸리 그리고 맥주까지 커버가 가능하다. 초빼이가 호프집을 운영하는 사람이었다면 몰래 훔쳐가고 싶은 마음도 들 것 같았다. 가게를 찾는 어느 나라의 사람들에게 어느 술과 함께 내더라도 제 몫을 톡톡히 할 수 있는 요리였다. 게다가 튀긴 음식이라는, 한 스푼의 '불량함'까지 담고 있으니 어찌 매력적이지 않을 수 있을까?

KakaoTalk_20250624_171624027_05.jpg
KakaoTalk_20250624_171624027_09.jpg
KakaoTalk_20250624_171624027_04.jpg

허름한 노포의 즐거움이다. 뻔히 예상되는 음식들도 있지만, 예상하지 못했던 '의외'의 음식도 만날 수 있다. 그렇다고 그 의외로움이 딱히 고급스럽지는 않다. 적절한 수준의 과하지 않은 음식들이다. 그래서 더욱 정겹고 대단하다. 특별하고 대단한 음식이었다면, 이미 그 음식을 내는 집은 허름한 집이 아니었을게다. 그러기에 더욱 가치 있는 음식이다. 어떤 과정을 통해서 어떤 개기로 만들어졌는지 모르지만, 이 음식들 또한 우리 음식사에서 작은 한 귀퉁이를 차지할 수 있는 '우리의 맛'이 될 충분한 자격을 갖췄다. 허술한 듯 보이는 고니탕의 깊은 맛에 놀라고, 쭈꾸미 구이의 강렬함에 또 한 번 감탄한다. 그리고 진정되지 않는 가슴을 '록빈'이라는 이 집만의 독특한 음식으로 진정시킨다. 마치 하나의 탄탄한 구조를 가진 소설처럼 그 얼개가 꽉 차 있다.


이번 부산 취재 중 찾았던 첫 집이니만큼 기대가 컸었는데, 그 기대 이상을 충족시켜 줬다. 이른 저녁 시간부터 사람들이 긴 줄을 서 있을 이유가 충분한 집이었다. 초빼이보다 딱 열 살 어린, 82년생 '뚱보집'에서 너무나 큰, 만족감을 얻어간다.

마지막으로 첨언을 하자면 이 집에는 큰 비밀이 있다. 가게의 상호에서 예상할 수 있듯 사장님께서 매우 뚱뚱해서 이런 상호를 붙인 것 같지만 사실 이 집의 사장님은 마른 편이다. 뚱뚱한 사람들은 이 집을 찾고 배부르게 음식을 먹는 초빼이 같은 손님들뿐이다.

KakaoTalk_20250624_171624027_28.jpg
KakaoTalk_20250624_171626166_02.jpg

[음식, 음주, 노포 전문 크리에이터 초빼이]

- 인스타그램 : https://www.instagram.com/jay.kim.9843

- 페이스북 : https://www.facebook.com/jay.kim.9843

- 유튜브 : https://youtube.com/@choppei?si=hRPvsFuQjW1Y38Gb

- 문의 : iclick2u@naver.com


[메뉴 추천]

1. 1인 이상 방문 시 : 쭈꾸미 구이(또는 땡초 쭈꾸미, 보쌈) + 록빈 + 소주

* 개인의 취향에 의한 추천이니 절대적인 것은 아님. 적어도 사람 수만큼은 주문해야 도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만.


[추가 팁]

1. 별도의 주차장은 없음. 인근 주차장 이용 권장.

2. 월~목 16:00~21:40, 라스트 오더 20:40 / 금요일 16:00~22:40, 라스트 오더 21:40 / 토 11:30~22:40,

라스트 오더 21:40, 브레이크 타임 14:00~14:30 / 일요일 정기휴무

3. 참고

- 메인 안주(쭈꾸미 구이)와 록빈의 조합은 추천하지 않을 수 없다.

- 웨이팅은 기본이다. 사장님께 반드시 나무주적 대기표를 받을 것.

4. 여행 및 관광 정보

- 인근노포 : 초량불백, 부산할매돼지국밥집, 본전돼지국밥, 사해방, 마가만두, 신발원, 일품향, 88수육

돼지국밥, 명성횟집, 석기시대, 중앙모밀, 양산박, 중앙식당, 서울깍두기, 원조 고갈비, 할매집 회국수,

백광상회, 수복센터, 종각집, 삼송초밥, 18번완당집, 부산명물횟집, 고등어정식할매집, 여송제 등.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