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 잇포도 차호, 츠루야 요시노부, 토라야카료 교토 이치조점
눈처럼 하얀 가루, 설탕(雪糖). 약(藥)에서 만병의 근원이 되다.
우리나라에 처음 설탕이 들어온 것은 삼국시대나 통일신라시대로 추정하지만 문헌상 기록으로 남은 것은 고려시대다(파한집(破閑集) 고려 명종 때 문신 이인로의 시화집). 중국 송(宋) 나라에서 후추와 함께 설탕이 한반도에 첫 발을 디뎠다.* 설탕(雪糖, 또는 沙糖, 砂糖)은 우리 땅으로 들어온 후 수백 년간 약재로 분류되어 약용으로 사용되었다. 그렇다고 한반도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단맛을 몰랐던 것은 아니다. 지구상에서 가장 완벽한 물질 중 하나라 알려진 '꿀'을 통해 단맛을 알았고, 곡물의 전분을 통해 '조청과 엿기름'을 만들어 냈으며, 대추나 곶감, 과일 등의 농축액에서 단맛을 빌려오기도 했다. 조선시대에는 중국이나 류구국(琉球國, 오키나와)의 사신들을 통해 소량의 설탕을 얻을 수 있었다. 본격적인 설탕의 대중화가 이뤄진 것은 근대인 일제 강점기에 이르러서야 수입이 확대되고 제당공장이 만들어지면서 이뤄졌다.
(* 한국학 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검색어 '설탕', 일부요약)
일본의 경우도 우리와 다르지 않다. 단지 일본의 설탕에 대한 기록은 우리보다 조금 앞선다. 서기 753년(천평승보 5)에 쓰인 '당대화상동정전(唐大和上東征伝)'에 당나라의 승려 '감진(鑑真)'이 일본으로 들어오며 '석밀, 자당 500근, 감자 80 속(石蜜(석밀)・蔗**糖(자당) 500斤(근)、甘蔗(감자) 80束(속))'을 싣는다'라는 문구에 등장한다. 일본 역시 오랫동안 설탕을 수입에 의존하였고, 약용으로만 사용해 왔다. 설탕을 대신하는 단맛은 곡물류인 현미나 맥아를 발아시킨 미즈아메(水飴), 담쟁이덩굴 뿌리로 만든 '아마주라(甘煮)' 등을 사용하는 등 형편이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일본은 우리보다 빠르게 14세기 후반에서 15세기 초부터 설탕이 식재료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 蔗는 '사탕수수'라는 의미이며 '자'로 읽는다.)
'설탕'이 우리에게 흔해진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지금이야 거리에 넘쳐나는 것들이 설탕의 단맛을 잔뜩 품은 음식과 주전부리지만, 불과 1백 년 전만 해도 설탕의 단맛은 소수의 지배계층이나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만 즐길 수 있는 맛이었다. 정제설탕과 액상과당, 그리고 각종 시럽이 지배한 오늘날의 세상이 사람들에게 비만과 당뇨라는 고질적인 질병의 원인으로 손꼽힌다. 한때는 약으로 분류되던 설탕이 이제는 만병의 근원으로 지목되고 있는 것을 보면 설탕의 운명도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라는 것일까?
교토가 만들어 낸 또 하나의 예술품. 화과자(和菓子).
일본의 다도문화의 시작은 교토에서 비롯되었다. 일본의 천년 고도(古都) 교토는 도시 자체의 특성으로 인해 귀족과 승려 등을 위한 상류층의 문화가 발전할 수밖에 없었다. 교요리(京料理)의 다섯 체계도 교토의 상류층과 승려들의 음식과 연회에서 기원했다. 여기에 교요리에 포함되어 선보이거나 때로는 별개로 선보였던 다도(茶道) 문화도 빼놓을 수 없다.
교토(우지)에서 재배하기 시작한 차는 '고급차'의 대명사가 되었고, 승려들과 왕실에서 차를 마시던 예법과 문화는 일본 다도(茶道) 문화의 시금석 역할을 했다. 이러한 배경을 바탕으로 교토에서 화과자가 발달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었다. 궁중의 의례와 연회, 제사에 쓰일 '격식 있는 과자'에 대한 수요가 언제나 넘쳐났다. 이런 수요가 과자를 만드는 장인(과자사, 菓子司)을 교토로 몰려들게 하였고, 기술은 후대로 대물림 되었다.
나라와 헤이안 시기에는 중국(唐)에서 전해진 유탕과자(唐菓子/唐果物, 카라쿠다모)가 의례의 공양물로 쓰이거나 불교 의식에도 등장했다. 이를 일컬어 '헌상과자 또는 상과자(献上菓子, 上菓子(じょうがし))'라 부르며 서민이 먹는 과자와 구분해서 불렀다. 카마쿠라 시대에 이르러 교토는 차의 중심지가 되었다. 아침과 저녁 하루에 두 끼로 연명하던 일본인들에게 하루의 중간, 차와 함께 먹는 간식(일본어로 텐진, 딤섬, 點心)이 문화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무로마치시대와 에도시대에 '차노유(茶の湯)'가 발전하면서 '차의 쓴맛을 북돋우는 단맛'이 필요해졌다. '차노유'는 당시 '의례, 교양, 권력의 언어(지배계급에서 즐긴)'가 되었고 이때 함께 곁들이는 과자는 '한 자리(一席)에 한 종의 과자(一菓)'와 같이 주최자의 의도와 계절을 담는 형식으로 고도화되었다. 화과자(和菓子, 교과자(京菓子), 교토에서 만들어 낸 과자)의 탄생이었다. 에도시대 이후에는 설탕의 유통이 안정되며 단맛이 풍부해지고 손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다양한 모양을 갖게 되며 '공예(工藝)'로 완성되었다.
교토에서 화과자는 '디저트'라기보다 교토라는 유서 깊은 도시의 특성을 대변하는 '도시의 상징'이다.
궁정에서는 의례나 연회에 화과자를 사용하며 '격(格)과 명망(銘)'을 나타내게 되었다. 과자의 이름과 형태 그리고 쓰임 자체가 교양 있는 사람과 자리의 표현이 되기도 했다. 사찰과 신사에서는 과자는 단순한 간식이나 식사의 수준을 뛰어넘어 '성스럽고 귀한 공양물'이 되었다. 교토의 과자에서 '행사, 절기, 의식' 등과 결합되기 시작했다.
격식과 예를 중시하는 '차노유(茶の湯)'가 발달하며 과자는 단맛이 아니라 차의 쓴맛을 '정리하는' 보조적인 역할의 단맛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차를 마시는 계절보다 앞서 계절을 나타내기에 화과자가 적절했다. (화과자에서 구현하는) 인간의 모방은 해당 계절의 본모습을 따르지 못한다 생각했다. 오늘날 우리가 감탄하는 '교토의 화과자'가 계절성과 조형성을 극단까지 표현하는 전통은 이때부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교토라는 도시를 지탱했던 '장인들이 만들어 낸 경제의 핵심'으로 자리 잡으며 궁정과 사찰, 다도라는 끊임없는 수요를 배경을 두고 '도시형 공예 산업'으로 정착하게 되었다.
교토의 화과자는 어느 날 갑자기 태어난 음식이 아니다. 교토라는 도시의 다양한 장소와 시간, 그리고 사람들의 욕구가 서로 얽히고설키며 오랜 시간 겹쳐지고 압축되며 만들어진 결과물이다. 그런 이유로 교토의 화과자를 말하고자 한다면 "무엇을 먹는가?"보다 "어디에서 필요한 것인가?"를 먼저 떠 올려야 한다. 교토라는 도시는 늘 과자를 맛보다는 과자에 담긴 의미가 중요했다. 그래서 교토의 화과자는 덤덤하다. 얌전한 단맛을 품었다. 교토의 화과자는 항상 말을 줄여야 하는 공간이나 숭고한 의식에 집중해야 하는 목적으로 쓰였기 때문이다.
교토를 대표하는 화과자 노포 3곳
[잇포도 차호 교토혼텐(一保堂茶舗 京都本店)]
일본 다도의 시작은 9세기 경부터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815년, '사가(嵯峨) 천황(809∼822)'이 범역사(梵繹寺)에 들렸을 때 승려 '에이타다(永忠)'로부터 '전차(煎茶)'를 대접받았다는 기록이 '일본의 음차(飮茶)'에 관한 것으로 가장 오래된 기록이다. 이때 대접받은 차가 매우 인상적이었던지 2개월 후에 천황이 차를 재배하도록 권장하여 긴키(近畿) 지방(간사이 지방)을 비롯하여 오우미(近江, 현재의 시가현(滋賀県)), 단바(丹波, 교토부와 효고현 일대), 번마(橎磨) 지방 여러 곳에서 차를 재배하여 매해 진상하게 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출처_네이버 지식백과_차생활문화대전 중 일본의 차문화 중 일부 발췌)
일본에서 다도 문화가 번성하기 시작한 것은 12세기 경부 터인데 송나라에서 말차가 전해지며 급속히 퍼져 나간다. 우리나라에서는 '다도(茶道)'라 부르는 것이 일본에서는 '사도, 차도, 차노유, 오차'등의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일본 시가현(近江, 현재의 오미)을 근거로 움직이던 대표적인 상인집단인 '오미상인(近江商人)' 출신 '와타나베 리베에(渡辺利兵衛)는 1717년 '오미야(近江屋)'라는 차와 도자기 등을 취급하는 가게를 열었다. 에도 막부 말기 '야마시나노미야(山階宮, やましなのみや, 일본왕실의 가문 중 하나)'로부터 '잇포도(一保堂)'라는 명칭을 받게 되었다. 잇포도차호는 이 시기부터 차에 대한 깊은 탐구를 시작했다. 현재는 홋가이도, 도호쿠, 칸토, 도쿄, 츄부, 교토, 간사이 등 일본 전국에 걸쳐 100여 곳이 넘는 매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교토와 도쿄에서는 직접 찻집을 운영한다.
교토고쇼(京都御所) 인근을 돌며 소진해 버린 원기를 끌어올리기 위해 잇포도차호를 찾았다. 차 한잔의 여유를 부리며 몸에게도 잠깐 쉬는 시간을 주고 싶었다. 도보로 5~7분 정도? 그리 멀지는 않은 거리라 쉽게 찾아갈 수 있었다. 이른 봄이었지만 너무나 더웠던 날이라 '타는 목마름'으로 인해 갈증을 해결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이 날따라 차가운 커피나 음료보다는 따뜻한 차가 더 끌렸다.
잇포도 차호 교토혼텐의 첫 이미지는 마치 우리나라의 오래된 한약방을 찾아간 것 같은 기분이었다. 고풍스러운 일본식 상가건물인 마치야(町家) 형태의 건물부터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매장으로 들어서면 각종 차를 판매하는 카운터가 있는데, 그 뒤편으로 펼쳐진 차를 보관하는 갈색 항아리와 바닥에 놓인 오래된 나무상자가 눈길을 끌었다. 직원의 안내를 받아 카운터 좌석에 앉았다. 메뉴에서 차를 고르고 샘플로 보여 준과자 셋 중 하나를 고르면 주문은 끝.
입구에 발을 들이는 순간부터 '이 매장의 직원들은 정말 친절하구나'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보다 먼저 온 손님들을 안내하는 모습을 보며 '나에게도 저런 태도로 안내를 해 주겠지'라는 생각을 하니 기분 좋은 미소가 슬며시 떠 올랐다. 그만큼 인상 깊었다는 의미. 워낙 유명한 찻집이라 그런지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외국인의 모습도 많이 보였고, 교토 현지인들도 많이 찾았다. 특히 단체로 방문한 여성 손님들이 굉장히 많았는데 찻집의 분위기가 우리의 카페와 달리 꽤 조용한 편이었다. 찻집이었지만 화과자를 함께 내는 구성의 메뉴가 많았다. '이런 게 차노유의 전통일까?'라는 생각도 자연스레 하게 되었다.
쟁반에 올린 다기를 내 앞에 내려놓으며 유니폼을 입고 있던 직원이 차분한 어조로 차를 마시는 법을 설명해 줬다. 차노유(茶の湯)는 형식과 격식이 중요하니 그녀의 말을 귀담아 들었다. 잘 우려낸 차와 잘 어울리는 음성이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늘어지지 않지만 절제되고 또박또박한 단어들의 발음에서 그녀가 얼마나 예와 식을 중시하는지 추측할 수 있었다.
그리고 문득 찬합에 담긴 세 종류의 과자 중 어떤 것을 고를지 말해달라고 했다.(사실 차가 나오기 전, 과자를 먼저 골랐고 초빼이가 선택한 과자는 차와 함께 나왔다) 낙인 자국이 있는 흰색 만쥬를 골랐다. 꽤나 더웠던 교토의 날씨는 내게 너무 많은 에너지를 강탈해 갔다. 적절한 당분을 지쳐있는 내 몸에 제공해주고 싶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잇포도 차호는 화과자를 만들지 않는다고 한다. 이곳에서 손님에게 내는 화과자는 교토의 화과자 노포에서 당일 오전 공수해 온 생과자라고 한다. 그래서 메뉴판에 고정된 이름이 없다. '그날의 정해진 이름(銘)'으로 부르고 매일 바뀐다. 특히 교토의 과자는 형태보다는 '계절의 시어(詩語)'를 이름으로 붙인다고 한다. 얼마나 매력적인가? '계절의 시어(詩語)'라니. 고풍스러우며 고급스러운, 교토의 일면이 아닐까 싶다.
초빼이가 선택한 과자에 이름을 붙이자면 '너무 일찍 찾아온, 한 여름의 몽니'라 하고 싶었다. 너무나 더웠던 초봄이었다. 매끈한 표면과 과하지 않은 색상을 쓰며 한 입 크기로 만들어내는 다실용 생과자의 전형적인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디저트라기보다는 차를 위한 데코 또는 곁들임이라는 느낌마저 든다.
프리미엄 센차의 쓰고 떫떠름한 맛은 꽤나 인상적이었다. 맛이 쓴 차에는 꽤 익숙했는데도 이 집에서 낸 차는 초빼이의 예상보다 조금 더 썼다. 그래서 화과자의 단맛은 살짝 덤덤했던 것 같다. 봄 햇빛이 가끔 심술을 부릴 때 '그러지 말라'라고 말리는 선선한 봄바람 같았다. 순식간에 스치고 지나는 바람이어서 그랬을까? 과자의 흔적은 금세 입안에서 사라졌다. 그러면서도 센차의 향은 입에 남겨 놓았다. 굉장히 신기한 경험이었다. 말차를 주문했다면 더욱 달고 선명한 색상의 화과자가 나오지 않았을까? 말차의 진한 연둣빛과 조화를 맞춰야 하니 말이다.
화과자를 탐닉했지만 남은 것은 차의 향기였다. 두 번째 모금의 차는 그나마 추억으로 남아있던 화과자의 흔적을 모두 지웠다. 어쩌면 초빼이는 이 집에 화과자를 먹으러 온 것이 아니라 '차를 제대로 마시기 위해' 찾은 것이리라. 이 집에서의 화과자는 그냥 스쳐 지나는, 그런 인연이었다. 오직 차의 기억만이 남았다. 어쩌면 그것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 집은 이름 그대로 '차호(茶舗)', 즉 찻집이기 때문이다.
[추가 팁]
1. 매장명 : 잇포도차호 교토혼(一保堂茶舗 京都本店)
2. 주소 : Kyoto, Nakagyo Ward, Tokiwagicho, 52-52
3. 영업시간 : 월~일 10:00~17:00
4. 주차장 : 자체 주차장 유(매장 뒤편)
5. 참고
- 예산 : 1인당 1,000~2,000엔 (신용카드 가능)
- 문의 : 81-75-211-4018
6. 이용 시 팁
- 교토고쇼나 카모강을 걷다 갈증이 일었다면 이곳을 찾을 것.
- 다양한 차를 마실 수 있으며, 입구에서 찻잎도 구매할 수 있다.
- 안쪽 중정이 보이는 자리는 경쟁이 심하다. 혼자 찾은 손님은 카운터석으로 안내한다.
https://maps.app.goo.gl/f1u1chtR7uAiUR4Y6
[교토 츠루야 요시노부(鶴屋吉信 本店)]
츠루야 요시노부는 츠루야 이베이(鶴屋伊兵衛)가 1803년 교토에서 창업한 화과자 집이다. 앞에서 소개한 잇포도 차호 교토혼텐이 차와 차구를 팔던 곳으로 시작했던 것과는 달리 츠루야 요시노부는 시작부터 '화과자'를 위해 태어난 곳이었다. 그런 DNA를 몸속에 품고 있기에 이 집은 일본의, 아니 교토의 화과자가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지고 어떻게 예술로 승화되는지를 현대의 사람들이 직접 보고 느낄 수 있는 집이기도 하다.
이들이 메이지 시대에 내놓은 유즈모찌(柚餅)와 교칸세(京観世, 1920)는 츠루야 요시노부와 교토를 대표하는 기념품(お土産)으로도 유명하다. 교토고쇼의 북쪽 끝에서 서쪽, 교토의 옛 정취가 많이 남은 오래된 동네 니시진 쪽으로 10여분을 걸어가다 보면 시라미네 신궁을 만난다. 신사를 지나자마자 만나는 큰 사거리의 한편에 츠루야 오시노부가 자리하고 있다. 번잡한 사거리지만 굳이 찾으려고 애쓸 필요도 없다. 일본식 정원과 그 정원의 나무들이 일본 전통 건물과 잘 어울려 유난히 눈에 띄는 곳이 바로 츠루야 요시노부의 본점(鶴屋吉信 本店)이다. 이 정원과 건물로 쿄토부 도시경관상의 최고상인 '시장상(市長賞)'을 수상하기도 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초빼이는 화과자에 대해 관심이 많거나 교토에서만 얻을 수 있는 독특한 체험을 하고 싶은 분들에게는 이 집을 추천해주고 싶다. 츠루야 요시노부의 본점(2층의 카유자와(菓遊茶屋))에서는 미리 예약을 하거나 시간대를 잘 맞춰 찾으면 장인이 눈앞에서 생과자를 직접 만들어주는 퍼포먼스를 펼쳐준다. 어떤 재료를 사용하고 어떤 도구를 쓰며 어떤 색들을 배합하여 예술품과 같은 화과자를 만드는지 직접 볼 수 있다는 것.(아쉽게도 초빼이는 그 시간을 맞추지 못했다)
초빼이가 이 집을 찾은 것이 5월 초였다. 봄의 기운이 점점 무르익어 가는 시기.
이곳은 화과자를 위해 창업한 곳이니 이들이 표현하는 봄을 보고 싶었다. 그래서 이 집의 메인 상품인 교칸세도 패스. 생과자 두 종과 차를 주문했다. 2층이었지만 일본식 정원을 축소해 놓은 듯한 중정이 통창 밖으로 시선을 끌었다. 중정을 바라보며 차와 화과자를 즐기는 것이 좋을 것 같아 그 앞으로 자리를 잡았다.
잔잔히 흐르는 음악과 눈앞에 펼쳐지는 정원의 풍경이 마치 작은 산속에 들어온 느낌을 주었다. 커다란 통창을 뚫고 눈앞의 정원으로 들어가 걷고 싶은 욕망도 끓어올랐다. 화과자와 차를 내오는 시간이 예상보다 길어졌다. 시간을 맞추지 못해 눈앞에서 펼쳐지는 시연을 볼 순 없었지만, 주문이 들어오면 작업실에서 화과자의 장인(匠人) 직접 만들어 낸다는 말이 무게를 더했다. 음악과 풍경이 만들어 낸 평온함을 뚫고 직원의 발소리가 들어왔다. 봄이 내 앞으로 찾아와 그 모습을 드러냈다.
'사츠키 하나(皐月花)'는 철쭉이다. '사츠키(皐月)'는 음력 5월, 즉 5월의 중하순에서 6월 초를 가리키고, '하나(花)'는 꽃이라는 의미. 즉 '5월의 꽃'이라는 의미로 정확하게는 '봄이 여름으로 넘어가기 직전의 꽃'이라는 뜻이다. 철쭉이라는 말을 굳이 사용하지 않고 '꽃'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초여름에 피는 꽃' 전부를 상징한다고 한다. 게다가 철쭉의 꽃잎은 만개하기 직전. 봄이라는 계절의 절정은 아직 멀었고, 만개한 후 다가올 '여름'의 문턱에 서 있다. 꽃을 품고 있는 나무접시와 대나무 꽂이마저 꽃의 가지를 나타낸다. 한 접시의 화과자에 봄의 절정과 여름의 시작, 그리고 집안 '화단에 피어있는 철쭉나무'의 이미지까지 담았다. 봄이라는 계절에서 여름이라는 계절로 바뀌기 전, '순간의 정적'이 꽃잎 안에 담겨있다. 초빼이는 그런 의미를 담은 과자를 먹는 것이다.
'이와네츠츠지(岩根躑躅)'는 바위의 뿌리나 바위틈을 뜻하는 '이와네(岩根)'와 철쭉을 나타내는 '츠츠지(躑躅)'를 더해 '바위틈에 피는 철쭉'이라는 뜻이다. 5월 중순 전후, 산과 바위가 있는 야생에서 가장 먼저 여름을 맞는 꽃을 뜻한다. 우리나라와 같이 일본의 산에는 야생철쭉이 많이 자생하는데 그 꽃을 모티프로 했다. 선명한 분홍색 꽃잎과 초록색의 거친 바탕은 이끼나 숲으로 읽을 수 있다. '사츠키 하나'는 정원에서 자란 철쭉이지만 '이와네츠츠지'는 자연 속에서 스스로 피어난 꽃이다. 작고 고요하지만 강인한 생명력이 느껴진다. 정원에서 보호받는 화초가 아닌 바위와 바람을 견디는 꽃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를 표현하는 초록색과 분홍색의 대비가 선명하다. '초여름 자연의 강인한 생명력'을 먹는다.
작은 화과자 접시 하나에 굉장히 많은 의미가 담겼다. 교토의 화과자는 같은 철쭉을 두고도 '언제, 어디서 피었는가?'를 나눠 이름을 붙이고 거기에 다른 계절과 의미를 붙인다. 초빼이가 이날 접한 츠루야 요시노부의 화과자는 미각의 차이보다는 시간과 공간의 인식에 대한 차이가 담겨 있었다. 그 접시를 앞에 두고 2층의 중정이 펼쳐져 있다. 마치 '사츠키 하나'가 피어날 것 같은 공간이다. 과자가 표현하는 의미에 대한 설명 한 줄도 없었다. 이 양반들은 이렇게 말을 아낀다. "네가 알아서 의미를 파악하고 느껴봐라"하는 듯, 불교식 화두(話頭) 하나를 툭 던져 놓는다.
이날 접한 화과자의 의미를 곰곰이 헤아려 보았다. '어떤 의미일까?'보다는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야 할까?'라는 생각이 더 짙었다. 문득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라는 시가 떠 올랐다. 교토의 화과자는 프로스트의 시와 다를 바 없었다.
"꽃은 똑같은 철쭉이지만, 하나는 사람의 손길이 닿은 정원에서 피고, 하나는 거센 비바람을 뚫고 바위틈에서 자랐다. 교토의 화과자는 그 차이를 굳이 구분해 이름을 불렀다. 그리고 그 이름을 통해 초빼이에게 어느 쪽의 시간을 택할지 묻는 듯했다"
그러고 보니, 이 집의 화과자에 심취해 있는 동안, 차(茶)는 무슨 맛이었는지 잊었다.
점점 나이가 들어가니 멀티가 되지 않는다. 차의 맛을 기준으로 화과자를 선택해야 하는데, 정신을 홀랑 화과자의 모습과 의미에 빼앗겨 버렸다. 이래서 내가 일본의 차노유(茶の湯)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듯하다. 하지만 예술적인 공예의 수준으로 격상되어 버린 화과자의 생생한 모습을 보게 되어 굉장히 의미 있는 자리였다. 아쉬움을 가득 안은 체 노포를 나오며 1층의 전시실을 둘러보며 마음을 조금 달랜다.
[추가 팁]
1. 매장명 : 츠루야 요시노부 본점(鶴屋吉信 本店)
2. 주소 : Kyoto, Kamigyo Ward, Nishifunahashicho, 340-1 1階
3. 영업시간 : 목~화 09:00~18:00
4. 주차장 : 자체 주차장 유
5. 참고
- 예산 : 1인당 1,000~2,000엔 (신용카드 가능)
- 문의 : 81-75-441-0105
6. 이용 시 팁
- 웹사이트나 SNS를 통해 화과자 실연 시간을 확인할 것. 초빼이는 다음 교토 방문에 꼭 찾을 예정
- 여유가 있다면, 이 집의 시그니쳐 메뉴인 교칸세도 경험해 보실 것.
- 심하게 떠들거나 소란스러울 경우 제재를 받을 수 있음.
https://maps.app.goo.gl/sWcX4MZysJASsk5a9
[토라야카료 교토 이치죠점(虎屋菓寮 京都一条店)]
토라야는 무로마치 시대(16세기)에 창업하여 5세기를 넘게 영업하고 있는 유서 깊은 노포 화과자점이다. 창업 후 몇 년이 흐르지 않아 고요세이(後陽成, 1586~1611) 천황에게 납품을 하기 시작하며 그들의 실력을 증명하기도 한 곳. 교토고쇼(京都御所) 바로 옆에 매장과 갤러리를 운영 중인데, 현재의 위치에서 영업을 시작한 것이 1628년 이전이라는 기록까지 남겨져 있을 정도로 옛시대부터 유명했던 화과자점이다.
일본의 다도문화는 센 리큐(千利休, 1522~1591)에 의해 만개했다. 다도(茶道)의 유행은 다도를 왕족과 승려의 전유물에서 벗어나 귀족과 무사 계급까지 즐기는 문화로 확대시켰는데, 바로 이 시기 황실에 화과자를 납품하던 토라야(虎屋)는 자신들의 첫 번째 전성기를 맞이했다. 일본의 지배자이자 신의 후손이라 여겨지는 천황에게 화과자를 납품하는 교토의 화과자점은 다도에 입문한 귀족과 무사들에겐 선망의 대상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왕실 진상품'에 대해서는 호의적인 것과 다르지 않았다. 토라야는 이후 메이지 정부의 도쿄 천도(1869)에 맞춰 교토고쇼의 점포를 남겨둔 채 도쿄로 본점을 옮기게 된다. 그 이후 줄곧 도쿄와 교토에서 황실 납품 화과자점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초빼이의 발걸음은 토라야 카료 교토 이치조점으로 향했다. 화과자점과 찻집을 주로 돌아보는 날이라 이미 두세 곳의 화과자점을 들렀지만 이 집을 빼놓을 순 없었다. 교토(京都)가 일본의 수도로 있던 시절부터 도쿄(東京)가 일본의 새로운 중심지로 자리 잡은 시절까지 일본 황실에 화과자를 납품했던 집이니 그 상징성을 도저히 외면할 수 없었다고 할까? 게다가 교토 이치조점이 원래 이 집의 본점이었으니 그 시작점을 찾아가는 것이 이상할 것도 없었다.
나지막이 내려앉은 일본식 기와와 지붕이 가로로 길게 뻗어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곳은 다른 화과자점에 비해 더욱 차분하고 정적인 공간임을 첫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창문을 열어 놓았지만 매장 안에서 들려오는 소음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반대편 창문도 열어놓아 바람의 길을 만들었고, 그것을 즐길 수 있도록 설계했다. 매장 안으로 들어가자 가장 먼저 눈길을 잡은 것은 건물 반대편에 자리 잡은 정원이었다. 그리고 그 앞을 가로지르며 공간을 구분하고 있는 인공 냇물(물길)이 인상적이었다.
넓게 퍼진 잔디밭과 그 맞은 편의 화강암 건물은 더욱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오랜 세월, 한 층 씩 켜켜이 쌓여 올려진 시간의 벽을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가끔은 공간을 나누는 물길이 이승과 저승을 구분하는 경계처럼 보이기도 했다. 신사인지 제당인지 모를 오래된 건물의 분위기가 특이했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했는지도 모른다. 정원을 바라보며 눈앞으로 흐르는 물소리를 듣고, 바람에 흩날리는 버드나무 이파리의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듣고 있자니 이름 모를 선경(仙境)에 발을 들인 듯한 느낌이다.
토라야의 시그니쳐는 양갱(羊羹)이다. 양갱의 원산지인 중국에서는 양고기 국물을 뜻했던 말이다. 하지만 양갱이 일본으로 들어오며(중국으로 유학을 떠난 선종 계통의 승려들에 의해) 그 모습에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선종은 육식을 금하는 계율이 강했기 때문에 양고기 대신 팥이나 밀가루 등의 식물성 재료를 사용하여 '고기'를 흉내 내는 방식을 취하게 되었다. 에도시대 전반까지는 반죽을 찌는 형식의 증양갱(蒸羊羹)이 주류를 이뤘지만 에도시대 중기(18세기 중반)부터는 한천을 사용한 수양갱, 연양갱(煉羊羹)이 유행했다. 시간이 지나며 '양갱=연양갱', 즉 한천을 사용하여 응고시키는 것으로 그 형태가 자리 잡았다.
양갱의 명소를 찾았으니, 당연히 양갱을 주문했다. 양갱의 명가답게 계절의 양갱(季節の羊羹)이 갖춰져 있었다. 이들 또한 '차노유(茶の湯)'의 전통을 따르고 있었다. 이 집의 양갱은 시간의 단면을 색상과 단층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한천을 굳혀 양갱을 만들 듯, 각각의 색상과 재료를 통해 계절과 시간의 흐름을 멈춰 세워 양갱에 담아낸다고 할까? 4월 초부터 5월 초까지 내는 양갱은 '아이리스가 가득한 양갱(영문명)'이다. '붓꽃의 겹침(菖蒲あわせ, 쇼부아와세, 일본명)'을 통해 봄에서 초여름으로 가는 계절의 변화를 보여준다. 붓꽃이 물가에서 겹쳐 보이는 장면을 상징한다.
일본의 4~5월은 꽃이 절정을 이루고 봄을 맞은 궁정에서는 새 봄을 맞은 의례가 진행되며, 매해 새로 나온 차(茶)가 나오는 시기다. 풍요롭고 화려하고 모든 것이 만족스러운 계절이기도 하다. 일본에서 붓꽃은 음력 5월 5일 단오(端午)를 상징하기도 한다. 단오는 무사(武家)의 시간이자 남자아이의 건강한 성장과 액막이를 나타낸다. 그러면서도 층층이 겹을 이루고 있는 색들의 구분은 봄과 여름이 아직은 섞이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경계가 아직 분명한 계절의 마지막 순간이랄까?
4~5월의 양갱은 다른 시기의 양갱에 비해 사용하는 색이 다양하다. 가장 많은 색을 써서 양갱을 만든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가장 절제된 양갱의 단맛을 보여준다. 화려하지만 절제된 일본 특유의 미학을 양갱 한 덩어리에서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다. 계절의 상징인 붓꽃과 새로 돋아난 찻잎을 더 도드라지게 만들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초빼이는 이 양갱에 곁들일 차를 아이스 호지차로 정했다. 앞서 들렸던 집들에서 이미 따뜻한 차는 너무 많이 마셨고, 여름을 의미하는 차를 선택하여 초빼이 나름의 차노유(茶の湯)를 한번 구현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여행 중에는 보통 정신을 놓는 적이 없었지만, 토라야의 양갱과 정원을 앞에 두고 '갱멍'을 때렸다. 하루 종일 찾아다닌 화과자와 찻집에서의 경험들이 머릿속에서 순식간에 엉켜버렸다. 눈과 마음의 휴식이 오히려 신체의 활기를 북돋웠다. 가뜩이나 부족한 감수성으로 화과자의 이름과 그 속에 들어있는 의미를 파악해보고자 했던 것이 오히려 너무나 빠른 번아웃을 불러일으킨 듯했다. 건물의 입구 쪽 창을 통해 들어온 바람이 반대편 정원 쪽으로 흐르며 흐트러진 내 마음을 추켜세웠다. 이 집에서, 이 자리에서, 그리고 방금 시원한 바람이 스쳐간 이 순간을 영원히 놓치고 싶지 않다는 욕심이 생겼다. 정신의 수양은 하찮은 욕심으로 인해 이미 물 건너가버렸다. 그럼에도 무거운 몸뚱이를 의자에서 일으켜 세우는 것이 너무나 힘겨웠다.
계산을 하고 나오는 길에 토라야에서 운영하는 전시관을 들렀다. 문고와 전시관을 운영하며 일본의 고서와 전통 예술품을 수집하고 있는 토라야의 노력을 볼 수 있는 장소이기도 했다. 게다가 이때 진행 중인 전시 작품 중 몇몇은 초빼이가 한때 공부했던 '겐지노모노가타리'와 관련된 유물이었기에 꽤 흥미가 동했다. 이곳을 찾으실 분이 있다면 전시관과 문고도 놓치지 말고 관람하실 것을 추천한다. 물론 무료다. 참고로 일본에 처음으로 소바와 우동, 만두(만쥬)를 들여온 '쇼이치 국사'가 찻집인 요시에몬에게 만두의 제조법을 가르쳐 주면서 직접 써 준 '어만두소(御饅頭所)' 간판도 토리야에서 소장 중이다. 쇼이치 국사의 소바, 우동, 만두 발상지 비석은 후쿠오카에 있다.
[추가 팁]
1. 매장명 : 토라야카료 교토 이치죠(虎屋菓寮 京都一条店)
2. 주소 : Kyoto, Kamigyo Ward, Hirohashidonocho, 400
3. 영업시간 : 월~일 10:00~18:00
4. 주차장 : 자체 주차장 유
5. 참고
- 예산 : 1인당 1,000~2,000엔 (신용카드 가능)
- 문의 : 81-75-441-3113
6. 이용 시 팁
- 토라야 카료에서는 무조건 양갱이다.
- 날씨가 좋다면 물가 앞 바깥쪽 자리를 추천한다.
- 매장 내의 문고에 있는 자료들과 입구의 옆의 전시관을 꼭 들려볼 것. 규모는 작으나 전시의 내용은 좋다.
https://maps.app.goo.gl/KSXD5baEWVGrsqF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