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렌을 넘어서자 펼쳐진, 또 다른 차원의 세상.

192. 교토 나카교구 혼케 오와리야 혼텐(本家尾張屋 本店)

by 초빼이

치밀하게 만들어진 계획도시, 교토(京都)


교토의 지도를 펼쳤다. 아니, 엄지와 약지를 모으며 대로가 보일 정도의 크기로 줄여 보았다. 노포를 찾아 우리나라 전국과 일본 전역을 떠돌아다니며 생긴 버릇 중 하나다. 노포의 정확한 위치를 찾기 위해 스크린에 엄지와 약지를 대고 바깥쪽으로 넓히기도 하지만, 내가 가고자 하는 지역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 도시는 어떤 모습으로 형성되었는지를 살펴보기 위해 손가락을 모으기도 한다.


교토라는 곳의 모습을 보기 위해 손가락을 오므리며 본 것만 수 십 차례. 도시를 가르는 큰 대로를 인지할 수 있는 사이즈로 줄여보면 교토가 얼마나 잘 계획된 도시인지를 알 수 있다. 교토의 중심이라는 교토역과 교토 고쇼 사이를 가로와 세로로 가로지르는 길과 그 길들로 잘 나누어진 땅에서, 조금은 부러운, 일본인들의 계획성과 철저함도 엿보게 된다. 이 오래된 도시 교토의 큰길을 그대로 활용하여 현재의 교토도 길을 만들고 도시를 다듬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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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헤이안 시대 교토 지도_사진출처_구글재팬 나무위키(노란색 원은 현재 교토고쇼가 있는 교토교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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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막부시대 말기 교토 고지도_출처_구글재팬_나무위키 / 4. 교토고지도_출처_웹사이트 KYOTOMAP360

교토의 이곳저곳을 다니다 보니, 교토라는 도시는 여행객들이 걸어 다니기 좋은 도시였다. 잘 뻗은 도로와 알기 쉽게 나뉜 지역들은 길을 찾는데 용이했고 어지간해서는 길을 잃을 염려를 하지 않아도 되는 곳이었다. 좌우와 북쪽을 둘러싼 산들엔 교토를 대표하는 절과 신사가 자리하고 있고, 그 속에 교토의 황궁이 자리 잡고 있으며 남쪽으로는 강이 흐른다. 전형적인 배산임수(背山臨水)의 배치(위 네 번째 사진에서 확실하게 보인다.) 거기에 또 하나의 매력은 교토의 골목골목이 가진 매력들이다. 몇 걸음을 옮기다 보면 언제 나타날지 모를 다양한 노포들과 세련된 가게들, 힙한 바(bar)나 카페(Cafe)가 곳곳에 숨어있다가 길을 걷는 여행자들을 심쿵하게 만든다.


대로변 바로 옆의 골목에 들어서면 언제 그랬냐는 듯, 적막함과 고즈넉함이 길 곳곳에 풍경처럼 내리 앉았다. 단 몇 발자국만 움직이면 번잡한 도시에서 고즈넉한 고도(古都)로 단숨에 타임슬립을 한다. 현대와 고대의 모습이 한 공간에 공존하는 것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다. 오래된 고택이 근대의 벽돌 건물과 세련된 현대의 빌딩에 자연스레 녹아든다. 시간의 속도보다는 시간의 단계(층위)가 더욱 도드라지는 곳이 교토의 골목이다.

그 한가운데 '혼케오와리야 혼텐(本家尾張屋 本店)'이 서 있다.


옛 황궁이 있는 교토교엔(京都御苑)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으니, 주변은 고위 관료들의 거주지와 일본의 황궁에 납품하는 어용상인(御用商人)들의 가게들이 밀집해 있다. 화과자를 납품하던 츠루야 요시노부(鶴屋吉信 本店), 토라야카료 이치조(虎屋菓寮 京都一条店), 귀족들의 기호품인 향을 판매하는 쇼에이도 교토 혼텐(香老舗 松栄堂 京都本店)등이 지척에 있고 간판보다 더 오랜 역사를 가진 전통 종이와 붓 등의 문방사우(文房四友)를 판매하는 오래된 가게들은 거리 곳곳에서 눈에 띈다. 서민들의 삶을 책임지던 니시키시장(錦市場)은 한두 블록 더 내려가야 한다. 계층에 따른 공간의 의도적인 '물리적 구분'이 눈에 보인다. 이 또한 층위를 보여주는 교토의 골목이 가진 본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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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교토의 거리와 골목 / 3. 니시키 시장


교토의 소바(京蕎麦), 간토의 소바와 다른 의미.


"간사이는 우동(うどん), 간토는 소바(そば)"라는 말이 있다.

밀과 제분기술이 들어오던 루트였던 간사이 지방은 이를 활용한 우동이 발달하였고, 메밀의 재배가 적절했던 간토(關東) 지방은 소바를 주로 먹는다는 의미다. 그렇다고 간사이와 간토의 경계를 정확히 나눠 간사이는 우동만 먹고 간토는 소바만 먹은 것은 아니었다. 간사이 지방에서도 소바를 만드는 집들이 있었으나 소바를 대하는 태도가 달랐고, '소바(そば)'가 가진 의미 또한 차이가 있었다.


소바는 처음엔 면의 형태가 아니었다. 메밀이라는 작물이 척박한 환경에서 잘 자라는 식물이라 '쌀'과 같은 곡물을 구하기 힘든 곳에선 '탄수화물'원이자 '구황작물'로서 기능이 더 컸다. 그런 이유로 소바의 초기 형태는 떡(蕎麦がき)이나 죽 또는 알곡 형태에 더 가까웠다. '면'으로서 소바가 만들어진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일본에 제분기술(연자방아)을 전해준 것은 고구려의 승려 담징(曇徵, 610년 경으로 추)이었지만, 오늘날의 소바면으로 만든 시기는 꽤 많은 시간이 흐른 뒤였다. 문헌상으로는 16세기에 처음 등장하나 일반에 본격적으로 보급된 것은 18세기 경이라고 한다.


초기의 소바는 잘 끊어지는 면이었다고 한다. 메밀 자체가 글루텐 함유량이 적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요즘은 메밀함량 100%의 소바를 내는 곳도 많지만 '툭툭' 끊어지는 식감이 사실 그리 좋은 느낌은 아니다. 이런 특성으로 인해 한동안 물에 삶는 소바보다 '증기로 찌는 소바(蒸しそば, 무시소바)'가 유행하기도 했다. 여기서 더 발전한 것이 '니하치(二八) 소바'다. 밀가루와 메밀을 섞어 소바면에 탄력과 식감을 더했다. 이때가 18세기 무렵이었다고 하니 오늘날의 소바가 탄생되기까지 꽤 오랜 시간과 노력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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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바가키(蕎麦がき) 덴라쿠(田楽) / 2. 소바키리(蕎麦切り)_사진출처_웹사이트 소바키리와타나베(sobakiri-watanabe.com)

'전통'이라는 단어를 떠 올리면,

우리는 보통 '쉽게 범접할 수 없는 처음부터 완성된, 완전 무결한 상태'일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노포나 노포가 내는 음식을 면밀히 관찰하다 보면 실제로 전통은 '불편한 것을 고치고, 불필요한 것들을 버려온 과정의 기록'이 아닐까 싶다. 불완전한 상태를 완전한 상태에 근접하게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그래서 전통은 한 곳에 고착된 것이 아닌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이다.


간토지방의 소바를 이야기하자면 가장 먼저 떠 오르는 것은 '강력한 힘'이다. 쯔유의 색이 짙고 향이 무척 강하다. 일반적으로 가쓰오부시의 향이 가장 먼저 치고 올라오고 그 향을 떠 받쳐 주는 것은 간토에서 주로 사용하는 진간장(濃口)이다. 반대로 간사이의 소바는 부드럽다. 간사이 지방에서는 츠유를 '다시(おだし)'라고 부르기도 한다. 간사이 지방의 소바 츠유는 가쓰오부시와 다시마가 감칠맛을 맡고 연간장(薄口)을 사용한다. 그래서 간토와 간사이의 츠유는 간장의 종류도 다르고 맛이나 색도 다르다. 두 곳 모두 카에시(かえし, 간장, 설탕, 미림을 섞어 숙성시키는 소스)라 부르는 소스를 첨가하는데 간토는 카에시를 진하게 잡는 편이고 간사이는 감칠맛을 살리는데 더 치중한다.


간사이에서 소바는 승려와 궁중의 역사와 함께 한다. 승려들이 메밀로 직접 만들던 메밀의 제분과 제면이 과자점으로 넘어오고 소바 전문점에 주문을 하는 방식으로 바뀐다. 승려들과 궁정의 사람들은 간단한 점심으로 차와 화과자를 먹거나 소바를 즐기는 것으로 점심(點心)을 먹었다. 선종의 승려들은 소바를 심신을 건전하게 기르는 음식으로 여겼고, 명상이나 수행을 할 때 메밀가루는 빼놓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배경이 있기에 교토에서 소바를 먹을 땐 다시의 맛까지 음미하는 것이 아닐까 추측한다. 교요리(京料理)는 '계절과 재료의 맛, 그리고 식감을 가장 잘 나타내는 방법'의 또 다른 단어가 아니었던가? 한 끼의 식사로, 빠르게 먹을 수 있는 음식으로 소바를 소비했던 간토 지방과는 접근하는 방식이 다르다.


그래서 간토의 소바는 소바의 끝만 쯔유에 찍어 먹으며 메밀의 향과 식감, 목 넘김을 즐기지만, 간사이의 소바는 쯔유마저도 다시(だし)로 생각해 음미하고 즐기는 소바가 되었다.



켜켜이 쌓인 시간의 흔적이 들여다 보이는 곳, 혼케오와리야 혼텐(本家尾張屋 本店)


혼케오와리야 혼텐은 1465년 창업한 소바 노포로 초빼이가 방문했던 2025년을 기준으로 560년의 역사를 가진 곳이다. 500년을 한 국가의 라이프 사이클로 보는 우리나라의 사정에 비춰볼 때, 한 국가의 탄생과 몰락, 그리고 새로운 나라의 탄생을 함께 한 시간 동안 영업을 지속해 왔다. 200년 이상 영업하지 않으면 '노포(老鋪)'로 보지 않는다는 교토 사람들도 이 집은 굉장한 노포로 인정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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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혼케오와리야 입구 / 4. 어용교맥사 포럼

혼케오와리야의 첫 시작은 소바집이 아니었다. 오와리(尾張, 오늘의 나고야 일대)에서 교토로 올라와 과자를 만들기 시작했다. 교토에서 과자는 단순한 디저트가 아니라 제례와 의식, 다도 그리고 접대 문화의 핵심 요소 중 하나였다. 과자를 반죽하고, 늘리고, 모양을 내고, 색을 입히고, 질감을 만들어 내는 그들의 손기술이 오늘날 소바를 만들어 내는 원천이 되었다. 황궁과 선종 사찰에서 소바 주문을 받으며 1702년에 '과자와 함께 소바집을 개업했다.' 이후 이들은 궁에 납품하는 '황궁납품처(御用蕎麦司)'로 선정되었다.


초빼이의 첫 교토 방문 시에는 시간을 맞추지 못해 찾지 못했지만 이번 취재에는 그야말로 '칼을 갈았'던 터라 반드시 이 집을 취재하고 싶었다. 혼케오와리야 혼텐은 현대식 빌딩들이 가득한 대로변에서 바로 몇 걸음만 걸어 들어오면 만날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그들의 건물은 눈으로 보는 것에서 그 분위기가 남다르다. 옛 일본식 가옥(메이지 시기 초기 건물)의 고풍스러움과 '보(寶, 보배 또는 보물)'자를 크게 써 놓은 '노렌(のれん, 布簾 )' 그리고 아담하지만 오래된 나무가 서 있는 정원 자체까지 모두 교토라는 도시를 한 눈으로 보여주는 '교과서'와 같다. 전통적인 외향을 가진 일본식 노포들이 많은 교토에서도 손꼽히는 정통의 비주얼이라고 할까?


무릇 노포의 권위를 내세우며 경직될 수도 있지만 초빼이는 이 가게의 모습에서 '시간의 흐름이 켜켜이 쌓여 일상이 된' 모습을 본다. 삐걱거리는 대문은 영업시간이 되면 활짝 열어놓고 그 위로 만든 지 오래되지 않은 노렌을 걸었다. 입장을 기다리는 사람과 음식을 먹고 나오는 사람의 동선이 겹치지 않게 오래된 나무 대문을 나눠 차단봉을 세워 놓았다. 옛 등은 이젠 호롱불을 쓰지 않고 전구로 바뀌었다. 옛 것들과 현대의 것들이 서로 섞여 제 역할을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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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미닫이 문을 열고 들어가 직원의 안내를 받아 자리로 향했다. 옛 시대에 지어진 건물답게 복도는 좁았고 천장도 꽤 낮은 편이었다. 2층으로 오르는 계단은 '이젠 늙어서 이 짓도 못하겠다'는 듯 앓는 소리를 내며 무거운 객의 무게를 받아들였다. 식사 시간도 지났지만 30여분 넘게 웨이팅을 하다 들어온지라 몸은 이미 피로에 절여져 있었다. 교토의 유서 깊은 메밀집에 소바를 맛보러 왔으니 당연히 격식과 예를 지켜 소바마에(そば前)를 따랐다. 이타와사(가마보코에 와사비를 곁들인 것)나 소바미소(볶은 메밀을 섞은 된장), 누키(면없이 국물과 건더기만 나오는 요리), 다마고야키(소바 다시를 넣어 만든 계란말이)가 흔히들 선택하는 안주지만 초빼이는 좀 더 전통적인 '소바마키(そば巻き)'를 택했다. 거기에 맥주 한 잔. 너무나 더웠던 늦은 봄날이었다.


따뜻한 차로 몸을 진정시키고 잠시 기다리고 있자 이윽고 소바마키와 맥주가 나왔다. 혼케오와리야 혼텐은 소바마키를 찍어 먹을 수 있도록 자체적인 소스를 낸다. 추측건대 소바용 쯔유에 약간의 변화를 줘 만든 것이 아닐까 싶은 소스. 다른 곳에선 간장이나 와사비 등을 내주는 다른 곳과 차별된 소스, 이 또한 혼케오와리야의 마음일 게다. 둥글게 말은 소바면의 중심엔 계란과 우엉, 그리고 녹색 채소가 자리 잡았다. 하얀색 소바면을 배경으로 하니 이들이 더욱 돋보인다. 점성이 있는지 없는지 판단하기 애매할 정도의 소스에 소바마키를 찍는 순간 이미 이 집의 '명물'은 완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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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소바면과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던, 젊었던 시절의 어느 날이 떠 올랐다. 누군가를 더욱 빛나게 해 주는 능력을 가진 사람, 앞으로 도드라지지 않지만 자신만의 매력을 굳건하게 지킬 수 있는 사람. 그런 모습들이 하얀색 소바면에 투영되었다. 소바면은 그 역할에 너무나 충실했다. 입구에서 보았던 '명물 소바스시(名物 蕎麦寿司)'란 글귀가 떠 올랐다. '아 소바마키(스시)도 이 집의 시그니쳐구나'라고 뒤늦게야 깨닫는다. 소스에 소바마키를 찍어 입안으로 넣는다. 다양한 맛들이 한 번에 폭발하지만 결국 마지막까지 남는 것은 소소하지만 끈질긴, 소바의 향이다. 입 안 곳곳에 숨어 메밀의 여운을 진하게 피워 올린다.


'좋다!'라는 말이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왔다. 주변 테이블에 있던 사람들이 이방인이 내뱉은 낯선 단어에 순간적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다시 그들의 말을 이어간다. 하지만 그들의 입가에 맺힌 보일 듯 말듯한 미소를 초빼이는 놓치지 않았다. 약간의 비웃음일까? 그렇지 않으면 그들이 소중히 여기는 '미세한 맛'에 한 발 더 다가간 듯 보이는 이방인에게 보내는 친근감의 표현일까? 그런 것들을 자세히 고민하고 싶지 않았다. 이 자리에서 소바마키를 내 방식대로 즐기고 있는 내가 더 소중했다. 점점 초빼이의 계획은 무르익어 가고 있었다. 맥주 한 모금을 마시며 몸을 정갈히 했다.


일본의 소바, 특히 자루소바를 보면 그 담음새가 너무 성의 없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었다.

자루(ざる, 竹箸)라는 단어 자체가 소바를 올리는 그릇 또는 대나무 판을 의미하니 자루소바는 '대나무 판 위에 올린 소바'라는 뜻이다(지역에 따라 사투리로 '완코(わんこ)'라고 쓰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소바집에서는 어떻게 해서든 약간의 모양이라도 잡으려고 노력하는데 비해 일본의 소바집은 전혀 그런 부분을 신경 쓰지 않는 듯 자루 위에 '툭'하고 올린다. 갑자기 이마저도 자연과 자연스러움을 표현하려는 '의도된 담음새'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들에게 '소바'는 격식 있는 점심의 메뉴였으니 이런 가설도 가능하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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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혼케오와리야의 자루소바

쯔유를 그릇에 붓는다. 그리고 원래의 상태로 한 모금 맛을 본다. 간토의 소바가 아니라 간사이의 소바이기에 가능한 시도다. 사실 비교의 대상이 바로 옆에 없기에 그 맛의 차이를 잘 느끼지 못하겠다. 하지만 일본에서 경험한 다른 지역의 쯔유에 비해 조금은 부드럽다는 느낌은 들었다. 이런 차이가 '다시(だし)'의 역할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오래전 느꼈던 맛을 어찌 기억할 수 있으랴? 기억한다는 것은 그때의 분위기일진대. 쯔유에 파와 와사비를 넣고 소바를 맞을 준비를 끝냈다.


혼케오와리야의 소바는 그야말로 최상의 재료들로 만들어진 어벤저스와 같다.

일본에서 가장 비싼 다시마를 생산하는 홋카이도 리시리(利尻島) 섬의 다시마를 주 재료로 사용하고, 메밀은 홋카이도 오토이네푸(音威子府)산 메밀을 계약 재배하여 확보한다. 부시(생선조각)는 소다 다랑어와 눈정강이 정어리 그리고 고등어를 사용하는데 이 재료들은 규슈지역에서 공수하여 사용한다고 한다. 소바를 찍어먹는 쯔유를 직접 만들어 내는 것도 감지덕지한데, 이를 만드는 재료는 일본에서 가장 비싼 식재료들을 사용하니 초빼이의 눈에 한없이 숭고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근본이 되는 물은 교토의 물이다. 본점 건물 아래로 흐르는 지하수를 직접 끌어올려 사용하는데 이 물은 '연수(Soft Water)'로서 메밀의 맛을 부드럽게 살려주고 쯔유의 감칠맛을 끌어올리는데 최적이라고 한다.


소바는 에도식으로 소바면의 끝만 찍어 먹었다. '나 소바 좀 먹어본 사람이야'라고 말하고 싶었나 보다. 입에 넣은 소바면의 첫 부분은 아무것도 가미하지 않아 식감이 꽤 텁텁하다. 하지만 메밀의 향은 강하다. 조금은 꾸덕한 느낌의 소바면을 조금씩 입안으로 끌어당긴다. 쯔유를 묻힌 부분까지 입안에 넣자 비로소 소바맛은 완성되었다. 수분을 머금어 조금은 움직임이 윤택해졌고, 쯔유의 강한 맛과 향이 처음 느꼈던 메밀의 향을 덮어버리는 듯했지만, 메밀의 맛과 향은 그리 수월하게 자리를 내주지 않았다. 몇 번의 저작질이 이뤄진 뒤 식도로 넘겼다. 미세한 감칠맛이 저항군들의 마지막 발악처럼 입 안에 남았지만 내 입 속을 지배한 것은 끈질긴 메밀의 맛과 향이었다.


전투는 그렇게 끝났다. 똑같은 패턴이 반복되고 되풀이되었다.

어쩌면 소바는 첫 젓가락 질로 모든 맛이 결정되는 음식일지도 모르겠다. 반복되는 똑같은 과정을 통해 메밀의 향이 입안에 중첩되고 중첩된다. 마치 크루아상이나 밀푀유같이 한 번씩 입에 넣을 때마다 층층이 중첩되는 메밀의 맛과 향을 즐기는 음식인 듯하다. 자루의 밑바닥이 보일 때 즈음, 내 입속엔 맑은 바다에 접해있는 작은 메밀밭이 완성되었다. 이래서 소바를 메밀의 맛과 향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음식이라 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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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소바유

한편에 밀어뒀던 빨간색 주전자를 앞으로 끌어당겼다. 일본인들은 '유다메(湯溜め)'라 부르는 것으로 소바유(そば湯, 소바를 삶은 물, 메밀면수)를 담은 주전자다. 소바를 찍어먹던 쯔유가 담긴 용기에 소바유를 부었다. 보통 쯔유보다 2~3배 정도의 양을 부어주면 얼추 입에 맞는 맛이 만들어진다. 야쿠미(파나 와사비 등)들이 조금씩 떠 다녀도 상관없다. 우리나라 스님들이 발우공양(鉢盂供養)하듯, 남은 것 하나 없이 깨끗하게 먹는다고 생각하면 된다. 어차피 소바도 선종 승려들이 즐기던 음식이었으니 비슷한 의미를 부여해도 나쁘지 않을 듯싶었다.


아침과 저녁, 두 끼니의 사이에 간단히 먹던 점심으로 먹던 '소바'지만 소바를 먹을 때도 따라야 할 격식과 예법이 있다. 소바마에로 적당히 몸의 긴장을 풀고 마무리로 소바를 먹은 후, 소바유로 점심의 모든 자리를 정리한다. 사실 소바유를 마시는 과정은 에도시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생겨난 풍습이지만, 자연스럽게 소바유를 마시는 과정까지 연결된다. 소바라는 음식을 먹고 즐기는 일련의 과정들에 우리가 쉽게 인지하지 못하는 격식과 예법이 깃들어 있다. 가벼운 음식 하나 먹는 것에도 이렇게 격식과 방법이 있음을 알게 되었으니, 혼케오와리야의 소바를 맛보며 깨닫는 것이 솔찬하다.


초빼이는 사실 13년 전 교토를 찾았을 때 이곳을 경험하지 못했던 것이 너무 아쉬워, 나름 세밀한 계획을 세워 다시 찾았다. 이 집은 총 두 번을 찾을 계획이다. 이번 방문과 다음번 교토 방문 때 한번 더 찾을 예정. 이번엔 혼케오와리야의 가장 기본적인 메뉴 통해 그들이 추구하는 맛의 본질을 경험할 계획이고 다음번 방문엔 이곳에서 가장 '화려한', 호라이 소바(宝来そば)와 창업 당시부터 만들어 온 소바가시(蕎麦菓子, 소바과자)를 맛볼 예정이다. 언제일지 모를 다음번 교토 방문이 벌써 기다려진다.

뭐 또 집을 떠나겠다는 이야기다.


[추가 팁]

1. 매장명 : 혼케오와리야 혼텐(本家尾張屋 本店)

2. 주소 : Kyoto, Nakagyo Ward, Niomontsukinukecho, 322

3. 영업시간 : 월~일 10:00~14:00

4. 주차장 : 인근 유료주차장 이용.

5. 참고

- 예산 : 1인당 2,000~3,000엔 (신용카드 가능)

- 문의 : 81-75-231-3446

6. 이용 시 팁

- 자루소바, 소바가시, 호라이 소바가 시그니쳐. 소바마키가 정말 맛있었다.

- 교토고쇼를 둘러보고 이곳에 들러 식사를 한 후, 인근의 잇포도차호에서 차 한잔 그리고 쇼에이도 교토를 들러 향쇼핑까지 하나의 코스로 꾸민다면 연인이나 배우자님께서 정말 만족할만하다.

- 초빼이가 들렸던 2025년 5월에 비해 지금은 영업시간이 더 짧아졌다. 영업시간 확인 필수

https://maps.app.goo.gl/2WAPKu1TtGnYtwXc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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