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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빼이 Feb 23. 2023

초빼이의 노포 일기 [인천 차이나타운 중화방]

이 집의 고기튀김 한 접시는 탕수육 열 접시와도 바꾸지 않겠다

중국음식이라는 장르가 인천을 통해 한국에 들어와 자리를 잡은 지 어언 100년이 넘었다. 

1882년 8월 임오군란을 계기로 조선과 청나라 간의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이 체결됨에 따라 인천과 서울에는 많은 수의 중국인들이 본격적으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이와 함께 중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숙소(호텔, 객잔 등)등이 생기면서 중국음식의 도입도 급물살을 타게 되었다. 특히 1884년 인천 차이나타운에 생긴 '이태잔(스튜워드 호텔)'과 식사와 숙박을 함께 제공하는 '객잔(중국에서는 현재도 호텔에 '객잔'이라는 이름을 자주 붙인다.)'들어서면서 그 속도는 빨라지기 시작했다.


중화방 고기튀김(덴뿌라)

우리나라의 음식사에서 중화 요리점(중국 요리점)이라는 말은 1940년대 이후에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우리가 일상에서 쓰는 '중국집'이라는 말은 사실 '중국요리점'의 줄인 말로 사용되던 단어라고 볼 수 있다. 당시 화교들이 경영하던 중국음식점의 수는 2,774개(1930년 10월 기준)에 달할 정도로 중국음식점은 호황을 누리게 되었고, 처음에는 인천과 서울을 중심으로 생겨나다 전국의 중소도시로 퍼져나가게 되었다. 

(참고. 경인신문 '한국 중국집의 역사' 2002.04.04)


전국 최고이자 최대 규모의 차이나타운이 세워진 인천에는 이런 역사적인 배경을 계승하여 화교(華僑)들이 운영하는 오래된 노포 중국 음식점이 꽤 있는 편. 초빼이의 노포 일기의 첫 글이었던 [인천 차이나타운 연경대반점]과 같은 집들도 이런 차이나타운의 노포 중국집 중 하나이다.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곳은 '연경 대반점'처럼 거대한 '중국 요리점'이 아닌, 작은 규모의 '중국 음식점'인 

[중화방]. 

이 작은 중국집을 소개하는 이유는, 이곳에는 중국음식을 좋아하는 전국의 모든 초빼이들이 100% 유혹에 빠질 수밖에 없는 한 가지 음식이 존재하기 때문인데 그 정체는 바로 고기튀김(덴뿌라)이다.    


'고기튀김'이라는 음식은 탕수육이나 깐풍기처럼 우리가 그리 쉽게 만날 수 있는 음식은 아니다. 그래서 고기튀김이라는 명칭이 꽤 낯설다고 느끼는 분들이 많을 듯하다. 그러나 어린 시절 부모님을 따라 중국집에 가서 메뉴판을 한 번이라도 자세히 들여다본 경험이 있는 분이라면 '덴뿌라'라는 음식을 떠 올릴 수 있을 듯하다. 그 '덴뿌라'가 사실은 '고기튀김'의 일본어식 음식명이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한국의 '중국 음식점'들은 일제 강점기부터 굉장히 성업하면서 고급 음식점의 이미지를 구축해 나갔는데, 이런 이유로 고관대작들이나 부유한 계층들이 자주 찾는 곳이었다. 그러다 보니 요리명도 일본어식 표현을 많이 쓰게 되었고 이런 것들이 고착화되면서 지속적으로 사용하게 되었기 때문.(예를 들면 우동, 짬뽕 등등). 심지어 경상도에서는 예전에 '덴뿌라'를 '오뎅(어묵)'과 혼용해서 쓰기도 했다. 


고기튀김은 만드는 과정이나 모양새를 보면 탕수육과 별반 차이를 찾기 힘들다. 

'손가락' 하나 정도 길이로 썬 고기에 옷을 입혀 튀긴다는 큰 틀에서는 탕수육과 고기튀김은 비슷한 음식이라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탕수육은 전분을 입혀 튀겨내고 그 위에 '달고 새콤한 소스(탕추(糖醋) 소스)'를 뿌려내는 '탕추'요리의 한 가지인 반면, 고기튀김은 적절히 간을 한 튀김옷(전분 또는 밀가루 등)을 입혀 튀긴 후 그냥 내는고기를 튀긴 요리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또한 탕수육은 탕추(糖醋) 소스를 뿌려 별도의 소스를 찍어 먹을 필요가 없는 반면(음식의 기원을 따져보면 그 유명한 '찍먹 또는 부먹 논란'이 얼마나 의미 없는 것인지 알게 된다. 게다가 흔히들 말하는 '찍먹'스타일은 중국 음식이 배달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시기와 맞물려 배달로 인한 음식의 형태 및 식감 변형을 막기 위해 고안된 방법이라는 설이 있다.) 고기튀김은 일반적으로 찍어먹는 별도의 소스가 존재한다. 


1. 고기튀김  /  2. 쯔란을 섞은 소금.  / 3. 중국 상인들에게 '상업의 신'으로 추앙받는 관우상의 공물로 고기튀김이 놓였다


주문한 고기튀김이 테이블에 오르자마자 젓가락은 손가락 사이에서만 맴돌기 시작한다. 

부드럽고 촉촉한 식감의 고기튀김은 온기를 잃어버리면 그 맛이 반감되기 때문에 가급적 따뜻할 때 먹는 것이 좋다. 이 집에서는 고기 튀김용으로 두 가지의 소스를 내는데, 탕수육을 찍어먹는 간장에 고춧가루를 잔뜩 푼 간장소스와 양꼬치를 먹을 때 자주 접했던 '쯔란'과 소금을 섞은 소스. 개인적으로는 후자가 훨씬 좋은데 고기튀김이 쯔란을 만나면 그 풍미가 삼십만 배 정도 폭증하는 것을 생생히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훌륭한 고기튀김을 만났는데 맹물만 마시며 먹는다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우리는 엄연히 전 세계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동방예의지국'의 후손들이 아닌가? 


튀김류에는 사실 만국 공통으로 시원하고 깔끔한 '맥주'가 어울리는데, 이 집의 고기튀김처럼 식감과 맛이 좋고 육즙을 잘 살린 요리라면 사실 조금 높은 도수의 중국술도 궁합이 나쁘지 않다. 오늘은 무조건 소주나 연태고량으로 기름기를 달래기 시작. 


부드러운 표피로 육즙 가득한 돼지고기를 품은 튀김이 입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녹아내리기 시작한다. 이윽고 순식간에 강렬한 쯔란의 향이 찰나의 공백을 채우며 고기의 풍미를 추켜세우기 시작할 바로 그때, 

입안으로 연태고량 한 잔을 슬며시 털어 넣으면 이곳이 바로 상하이 와이탄 뒷골목의 허름한 노포 음식점으로 변하는 듯하다.


아마도 누군가 내게 고기튀김과 탕수육 중 하나를 선택하라 한다면, 아마도 난 고기튀김을 선택할 듯하다. 이 음식은 재료가 가진 자체의 향과 맛을 극대화시켜 요리로 만들어 냈기 때문. 아마도 탕수육 10그릇을 가져다줘도 고기튀김 한 그릇과는 바꾸지 않을 듯하다. 

  

연태고량은 백주라 부르기에는 너무 알코올도수를 낮춘 술이라 그렇게 마음에 흡족하진 않지만 중국 요리를 먹을 때는 부담이 없어 쉽게 찾을 수 있는 술이기도 하다. 한 조각씩 아껴 먹는데도 불구하고 어느새 접시는 바닥을 드러냈다.  


음식과 안주는 끊기면 안 되니 다른 메뉴를 고민하기 시작. 

메뉴에는 없지만 아는 사람들만 찾는다는 '물만두 튀김'과 전통적으로 중화방에서 강력한 존재감을 가지고 있는 '깐풍꽃게' 사이에서 갈팡질팡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때마침 깐풍꽃게가 재료 소진으로 주문이 불가하여 '깐풍새우'로 동행과 타협 완료. 


이 집의 깐풍새우는 꽤 두꺼운 옷을 입고 있지만 퍽퍽하거나 하는 식감은 절대 찾을 수 없다. 튀김옷에 잘 스며든 깐풍양념이 꽤 매력적으로 혀를 자극한다. 게다가 자극적이고 강렬한 맛과 향을 내세우는 '약간은 폭력적인(?)' 다른 중국 음식점의 그것과는 달리 슴슴한 수준으로 간이 맞춰져 있어 굉장히 매력적이다. 깐풍 새우도 금세 바닥을 드러냈다.    



마지막 히든카드는 이 집의 또 하나의 시그니쳐인 볶음밥. 

적절히 취기가 오르기 시작한 시간, 마법의 주문과 같은 웍질로 향기로운 불향을 제대로 입힌 볶음밥은 또 하나의 좋은 안주거리가 된다. 게다가 미리 팬에 구워둔 계란 프라이가 아니라 웍에서 기름에 '제대로 튀긴 계란 프라이'는 일순 단조로워질 수 있는 볶음밥의 비주얼에 방점을 찍는 요소가 된다. 


보슬보슬한 밥알이 한 톨씩 분리되어 기름과 불향을 먹으면 그 풍미는 이미 저 세상의 텐션. 특히 이 집의 볶음밥은 잡다한 짜장 소스 따위의 도움이 필요 없을 정도로 홀로 오롯이 빛날 수 서 있을 만큼 완성도가 높다. 

그야말로 중국 본토 식당에서 만날 수 있는 '차오판'을 연상케 하는 그런 비주얼. 


자고로 술자리는 탄수화물로 마무리를 지을 때 비로소 완성된다는 것은 전 세계인이 아는 사실. 

탄수화물을 가득 품은 밥이 얼마나 좋은 안주가 되는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이미 고기튀김과 깐풍새우에 포만감을 느낀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한편에 고이 접어둔 탄수화물용 위장을 꺼내야 할 시간이다. 

여성들이 디저트를 위한 또 다른 소화기관을 몰래 숨겨둔 것과 다를 바 없는 이치. 

이 집의 간짜장도 그리 나쁘지는 않지만, 내 생각에는 볶음밥이 더 완성도가 높다고 본다. 


1. 중화방의 볶음밥  /   2. 간짜장  /  3. 튀긴물만두


참고 - 3달전 메뉴판인데, 지난 주 방문했더니 가격이 조금 올랐다. 요즘 물가를 반영한 듯. 참고하시길 

[메뉴추천]

1. 1인 : 볶음밥 또는 고기튀김 + 주류(소주, 맥주, 연태고량)

2. 2인 이상 : 볶음밥 1 + 고기튀김 + 물만두 튀김 + 깐풍육 또는 깐풍꽃게 등

* 개인의 취향에 의한 추천이니 절대적인 것은 아님. 적어도 사람 수만큼은 주문해야 도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만.


[추가 팁]

1. 주차장은 별도로 없다. 또한 가게 앞 길이 일방통행 길이라 좁아 주차가 힘들다.

2. 매장 앞에 1대 정도 주차를 할 공간은 있으나, 자리를 잡기 어렵고 단속당할 위험도 있다. 

    인근 공영주차장이나 민간주차장을 이용하면 편리하다. 주차비도 저렴한 편이다.

3. 매주 수요일 휴무. 영업시간이 저녁 8시까지라 일찍 찾아야 한다. 

4. 얼마 전 부평 십정동에 분점이 생겼다. 

5. 여행 및 관광 정보 

    - 인천차이나타운 내에 이 가게가 있다. 차이나타운 산책이 가능

    - 1일 여행코스로 지하철 1호선 인천역에서 내려 차이나타운 구경 후 방문도 가능. 주변에 일제강점기 

      시대의 건물들은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 

    - 도보로 신포국제시장, 답동성당, 인천내리교회 등 다양한 근대유산을 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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