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카에서 가장 오래된 180년 오뎅(간토우니)집의 고래오뎅.
오뎅이라는 음식이 한국에서 보편적인 먹거리로 자리 잡은 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오뎅(お田)은 생선살을 다지거나 뭉친 후 열을 가해 굽거나 찌거나 튀기는 방식으로 만드는 음식을 통칭하는 말이다. 일본이 원산지로 알려진 이유는 오뎅을 만드는 방식 중 생선살을 기름에 튀겨 만드는 방식이 널리 알려졌기 때문.
일본에는 덴가쿠(田樂)라는 놀이가 있었다. 농경사회의 풍년을 기원하는 놀이와 같은 것이다.
이 행사 중 들판에 불을 놓아 나무 꼬챙이에 두부, 곤약, 은어, 토란 등을 끼워 미소를 발라 구운 음식이 있었는데 이 음식을 덴가쿠(田樂)라 불렀다 한다. 이 음식이 시간이 흘러 '오뎅(お田)'이 되었다는 것이 정설.
한국에서는 오뎅이라는 명칭이 일본과는 조금 다른 의미로 쓰인다. 일본에서는 오뎅이라는 말이 '(국물을 포함한) 음식 자체'를 이르는 말이지만 한국에서의 오뎅은 생선살을 으깨어 튀긴 후 꼬치에 끼워 놓은 '어묵'만을 일컫는 말이기 때문. 그런 의미에서 요즘 우리가 먹는 오뎅은 일본의 '간토다키(関東炊き, かんとうたき)’가 원형이다. 간장으로 맛을 낸 국물에 꼬지에 끼운 재료를 넣어 먹는 오뎅이 바로 간토다키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오뎅의 주원료는 두부였으나 다이쇼 시대(大正時代, 1912~1926)에 들어서야 가마보코 형태의 어묵을 사용하면서 오늘날의 오뎅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참조 : 푸드 칼럼니스트 박상현 선생 '가마보코' 수업 및 국제신문 2021.2.23 [박상현의 끼니] 어묵의 별칭 '간또' 중)
오사카를 중심으로 하는 관서지방에서는 처음엔 간토다키가 그리 환영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관서 사람들의 관동 지방에 대한 정서도 한몫을 했을 거라 추측되고, 덴카쿠라는 음식의 원형에 대한 변형이라 자연스레 발생한 반발 정도였던 듯. 그러나 수도가 도쿄로 옮겨가며 관동지방이 일본의 중심이 되자 간토다키가 표준처럼 굳어져 버렸다.
오사카의 중심가이자 대표적인 관광명소인 도톤보리의 끄트머리에는 오사카에서 가장 오래된 오뎅집이 자리하고 있다.(일본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설도 있으나 확인되지 않아 표기하지 않음)
바로 타코우메 본점(たこ梅 本店)이 오늘 소개할 집.
1844년 개업하여 영업을 시작했으니 무려 179년이나 된 노포 중의 노포 인 셈(2023년 기준).
지난 출장에 드디어 이 집을 찾게 되었다.
박찬일 셰프의 '오사카는 기꺼이 서서 마신다'라는 책을 읽으며 꼭 방문하고 싶었던 오사카의 노포 리스트의 가장 윗줄에 올렸던 집이다. 공교롭게도 출장기간 바로 전 '오사카에 사는 사람들(오사사)'의 '마츠다 부장'과 한국 가수 '성시경'씨가 이곳을 찾아 방송하는 바람에 널리 알려져 버렸다.
이 집은 고래를 사용한 오뎅과 생선요리로 유명한 집이다. 특히 고래의 혀와 힘줄 그리고 껍질 등으로 만든 오뎅이 유명하고 현지인들도 많이 찾는 편. 참고로 전 세계적으로 포경을 허용하는 국가가 몇몇 국가가 있는데 그중 대표적인 국가 중 하나가 일본(과학적 조사 목적이라고 표명)이니 고래고기에 대한 거부감은 우리보다는 덜한 것 같다. (일본의 고래고기 소비량은 1960년대까지 연간 약 23만 톤에 육박했으나 최근엔 연간 5천 톤 수준으로 줄어들고 있는 실정이라고 한다.)
도톤보리에 사람들이 끊임없이 흘러넘치던 시간, 혼자 호텔에서 나와 이 집으로 향했다.
코로나로 인한 해외여행 규제가 풀린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때라 굉장히 많은 관광객들이 도톤보리와 난바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특히 도톤보리의 긴류라멘 근처는 여기가 한국인지 일본인지 구분이 안될 정도로 많은 한국인들이 메우고 있어 오히려 일본인들을 찾기가 더욱 힘들 정도였다. 그리고 간간이 들리는 경남과 경북 사투리에 실없는 웃음마저 흘리게 되더라.(경남과 경북 사투리는 차이가 있다)
타코우메의 문을 여니 바로 다찌가 보인다. 다찌를 둘러싸고 앉은 사람들의 등을 보고 있으니 가게의 주인이 몇 명이 왔는지 물어보고 안쪽에 있는 대기석을 가리키며 그곳에서 기다리라고 한다. 10여분을 기다렸을까 금세 다찌로 안내를 받았다. 세팅된 자리에는 츠키다시로 고사리 나물이 올려져 있다.
아시는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일본의 음식점이나 술집은 오토오시(お通し)가 있다.(한 끼만을 위한 식당에서는 일반적으로 오토오시가 없다) 주문한 음식이나 안주가 나오기 전까지 술 한잔하면서 간단히 먹을 수 있는 애피타이저 같은 음식을 제공하고 자릿세를 포함하는 것. 식당이나 술집에서 기본 안주를 무료로 제공하는 문화에 익숙한 한국인들은 일본의 이 '오토오시'가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이 또한 일본 현지의 문화이니 여행객으로 따르는 것도 당연할 터.
참고로 오토오시는 '손님이 자리에 앉았다'라는 의미와 '주방에서 주문을 받았다'라는 신호라고 한다. 직원들은 오토오시가 올려져 있으면 '이 손님은 주문을 한 상태'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고. 또한 본 안주가 나오기 전빈 속에 술을 들이켜는 것을 방지하는 효과도 있다고 하니 나름 합리적인 이유가 있는 셈. 관서지방에서는 오토오시라는 말 대신 우리가 횟집에서 잘 쓰는 '츠키다시(突き出し)'라는 말을 사용하는데 지금은 둘 다 같은 의미로 사용된다고 한다.
단어만 몇 개 외우는 수준의 일본어 실력으로 어렵게 이 집에서 유명하다는 '고래 혀'를 우선 주문했다.
기다리는 동안 내 준 이 날의 츠키다시는 한국의 식당에서 나오는 고사리 나물과는 조금 다른 맛에 식감도 달랐다. 조금 많이 삶은 느낌이랄까? 맥주 한 잔에 몇 번 집어 먹으니 그게 또 금세 익숙해진다.
고래고기는 한국에서도 아직 먹어보지 못했던 음식이라 일본까지 와서 처음 맛보게 되어 나름 의미가 있었다. 아무래도 '고래'라는 익숙지 않은 식재료에 마음이 와닿지 않은 건지 몇 번이나 젓가락으로 이리저리 돌리다가 코를 대고 몇 번이나 냄새까지 맡게 되더라.
고래고기 특유의 독특한 향이 코를 자극한다. 처음 맡아본 향이라 익숙지는 않은 편.
한 덩어리를 집어 입에 넣으니 식감은 더욱 낯설게 느껴졌다. 게다가 일반적인 고래의 살코기가 아닌 혀 부분이니 경험해보지 못한 이질적인 식감에 잠시 당황하기도 했지만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음식이었다. 함께 나온 겨자를 찍어 고래혀를 다 먹고 따뜻하게 데운 정종도 주문하여 입가심을 했다.
이왕 시작한 고래고기이니 한국의 울산이나 부산에 가면 유명한 고래 수육도 먹어보고 싶은 욕구도 생겼던.
곤약과 삶은 계란은 이미 익숙한 식재료라 크게 부담은 가지 않았다. 그런데 곤약의 식감이 한국의 그것보다는 조금 더 단단한 느낌이라 오히려 더 좋은 기억이었다. 게다가 주석용기에 담아주는 데운 정종은 계산표(아래 사진)와 함께 이 집의 트레이드 마크와 같은 것이어서 더욱 호감이 간다.
이 집 역시 관서지방의 오래된 가게임을 알 수 있는 특징을 영수증에서 발견하였다.(영수증마저 공부할 문헌이 되다니.)
위의 언급에서처럼 관서지방에서 오뎅을 부를 때 간토다키(関東炊き, かんとうたき) 또는 간토우니(関東煮, かんとうに)라 부르는데, 이 집의 계산서엔 간토우니로 표기되어 있다. 게다가 오토오시라는 말 대신 [츠키다시]라고 적혀 있던 것에서도 관서지방의 특색을 찾을 수 있게 해 준 단어. 영수증을 해석하며 마치 특정 지명을 보고 고지도의 제작연대를 추측하는 것과 같은 재미를 느꼈다고 할까?
영수증을 보면서 또 하나 알게 된 것은 가게 앞 오래된 나무 등(燈)이 이 집의 엠블럼으로 쓰였다는 것. 역시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닌 듯. 무엇이든 자세히 들여다보아야 한다.
전반적으로 오사카(일본)의 가장 오래된 오뎅집이라는 선입견 때문인지 이 집의 음식에 대해서 굉장히 호감이 갔다. 탄탄한 기본기와 자신만의 방식을 고수하는 듯한 매장의 운영도 좋은 느낌을 주었던. 더구나 5대에 걸쳐 대를 이어온 이 집의 업력에는 경외의 마음까지 가지게 되더라. 우리에게도 이런 노포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도 생겼다.
180여 년을 한자리를 지키며 영업을 이어 온 것만으로도 이 집은 존경받을만하다.
다음에 마눌님과 함께 오사카를 찾게 되면 다시 한번 들려보고 싶은 집이다. 이 소중한 경험을 꼭 함께 나누고 싶은 마음이랄까? 게다가 오뎅바를 좋아하는 마눌님의 성향상 이 집을 좋아하지 않을 수 없을 터.
오사카 도톤보리의 타코우메(たこ梅 本店) 본점이다.
* 시간이 조금 흘렀지만 지난 2월 오사카 출장 시 방문했던 노포의 기록입니다.
[메뉴추천]
1. 현지인들에게도 인기 있는 집이라 기본적으로 웨이팅을 한다고 생각해야 한다.
2. 최근 이 집을 갔다 온 사람들의 글을 보니 영어 메뉴를 친절하게 준비해 놓은 것 같다.
그리고 초빼이가 방문할 때는 없었던 세트 메뉴도 새로 구성한 듯.
3. 데운 정종과 고래 오뎅은 꼭 마셔보시길. 추천한다.
4. 주차장은 따로 갖추지 않았다.
4. 기본정보
- 상호 : たこ梅 本店
- 주소
영문주소 : 1 Chome-1-8 Dotonbori, Chuo Ward, Osaka, 542-0071 일본
일본어 주소 : 〒542-0071 大阪府大阪市中央区道頓堀1丁目1−8
- 전화문의 : +81662116201
- 영업시간 : 휴무는 없다. 매일 16:00~22:50까지 영업(라스트 오더는 22:30)
5. 현금 계산(카드도 가능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