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만 존재하는 독특한 사금융 주택 제도
전편에서는 전세의 의의, 요건, 역사 등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지금도 전세는 필요하고 유용한 제도일까? 최소한 아직까지는 그렇다. 먼저, 전세는 세입자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집에 거주할 수 있도록 한다. '서민 주거 안정'이라는 공익적 목표 달성을 위해서 국가가 전세자금을 지원해 주기 때문에 서민의 경우 전세자금 대출을 지원받아 저렴하게 주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26년 1월을 기준으로 6억 원을 신용대출로 빌리면 1년에 2,400만 원(금리 4%), 월 200만 원의 이자를 내야 하지만, 6억 원을 버팀목 전세자금으로 빌리면, 1년에 1,500만 원(금리 2.5%), 월 125만 원의 이자만 내도 된다. 서울의 아파트 전세 평균가격이 6.6억 원(`25.12월, kb부동산)인데 반해, 평균 월세는 보증금 2억 원에(신용대출 기준 이자가 월 96만 원) 월 148만 원(25.12월, kb부동산)을 내야 해서 월 250만 원 가까이 부담이 든다. 여러 가정들이 다르겠지만 단순화한 위의 예시만 보면, 전세를 통해 월의 주거비 지출 부담이 절반으로 줄어든다.
또한, 전세는 직장, 학교 등 이유로 거주하고 싶지만, 경제적 부담으로 살기 어려운 곳에서도 생활할 수 있게 해 준다. 예를 들어, 예산 10억 원으로 서울에서 살아야 하는 사람이 집을 사려면 도심이 아닌 주변 지역에서 살게 되지만, 이 10억 원을 전세 보증금으로 사용하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비싼 지역인 강남구 대치동에도 거주할 수 있다. 특히, '자녀 교육'에 목숨을 거는 한국인의 특성상 자녀가 중고등학생이 되면 학군이 좋은 지역, 좋은 학원가가 몰려있는 지역으로 어떤 대가를 지불해서라도 가려는 '맹모삼천지교' 심리가 강한데, 전세는 최소 계약기간 2년+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는 2년을 활용해서 4년 간 학군지에서 살 수 있게 해 준다. 이처럼 전세는 입지 좋은 곳에서의 거주를 가성비 있게 실현시켜 주는 제도이다.
한편, 집주인의 입장에서는 아파트는 레버러지(전세금)를 끼고 구매할 수 있는 고수익 저위험의 안정적인 투자처이다. 우리나라의 집값은 현재까지는 우상향 하고 있고, 특히 시중에 돈(유동성)이 많아지는 경우 부동산에 투자하는 한국인의 특성상 경제상황에 따라 집값이 폭등하는 경우가 많아서, 많은 사람들이 자산 증식을 위해 전세를 끼고 본인이 거주하지 않는 주택을 구매하는 소위 '갭투자'가 만연해 있다. 강남구의 34평 아파트를 예로 생각해 보자. (단순화를 위해 주택 수, 거주 기간 등에 따라 달라지는 세금은 제외한다.) `20년에 20억 원짜리 집을 전세 10억 원을 끼고, 10억 원을 투자해서 구매했다면, `25년에는 집값이 40억 원이 넘어서 20억 원이 넘는 시세차익을 누릴 수 있다. 또한, 월세를 받을 경우 소득세를 내야 하는데, 3 주택자 이상 다주택 소유자가 아닌 이상 전세를 받는 경우에는 소득세를 내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자금 투자에 대한 절세효과도 발생한다.
이를 좀 더 확장해서, 전세가 집값 증식을 통해 자산을 불려 나가기 위한 수단, 통칭 '주거사다리'로도 사용된다. 어느 부부가 부모님께 5억 원의 집을 물려받고 모은 돈과 은행으로부터 빌릴 수 있는 돈이 3억 원이라고 하면, 이 부부에게는 2가지 주거 옵션이 있다. (1번) 8억 원짜리 집을 구매해서 주거하는 방안, (2번) 5억 원 집을 3억 원에 전세 주고, 그간 저축해 놓은 현금과 대출을 '영혼까지 끌어 모은' 3억 원과 합쳐서, 학군 좋고 직장에서 가까운 10억 원짜리 집에 6억 원짜리 전세로 들어가는 방안이다. 몇 년 후에 물려받은 5억 원 집이 10억 원으로 가격이 올라 전세 보증금도 7억 원으로 늘어나면, 이 부부는 그동안 알뜰살뜰하게 모아 6억 원이 된 현금+대출과 합쳐서 거래가 20억 원짜리 집에 13억 원 전세로 들어가서 살 수 있게 된다. 집값 상승기에 이러한 옮겨 타기를 반복하며, 강남 3구의 30억-40억 원짜리 아파트를 가지게 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최근 정부가 대출 제한을 통해 이러한 전세 갈아타기를 제한하면서, 기성세대는 갈아타기를 통해 재산 증식을 해왔으면서 청년 세대에는 이러한 기회를 박탈한다는 '주거사다리 걷어차기'에 대한 비판이 발생하기도 했다.
반면에, 시간이 갈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전세의 부작용에 대해서 지적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앞서 살펴본 전세의 '자산증식 효과'를 우리나라 주택시장 불안정의 근본원인이라고 지적한다. 대출을 낀 갭투자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의 부동산 자산이 비정상으로 빠르게 상승하면서, 서울 집값의 중윗값이 10억 원을 돌파하고, 강남 아파트가 30억 원, 40억 원을 넘어가는 등 서민들이 집을 살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30억 원이라는 돈은 일반적으로, 서민들이 버는 모든 돈을 한 푼도 안 쓰고 평생 모아도 마련할 수 없는 금액이기 때문에, 필수재인 주택이 이러한 비정상적인 가격으로 거래되는 것은 누구도 바람직하다고 볼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그 원인의 하나인 전세에 대해서도 많은 사람들이 비판적 시각을 가지게 되었다.
또한, 근본적으로 전세는 목돈을 금융기관이 아닌 개인에게 맡기는 사금융제도이므로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위험성도 존재한다. 악의적인 집주인이 목돈의 전세보증금을 가지고 잠적하는 전세사기 피해건수(통계는 대차계약 종료 후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했던 세입자의 임차권등기명령건수)가 `23년 4만 5천 명, `24년 4만 7천 건이 넘어가고, 피해자들이 자살을 하는 등 엄청난 사회 문제를 발생하고 있다. 특히, 사회초년생인 청년들 입장에서는 전재산인 전세보증금을 사기당해서 돌려받지 못하게 되면, 주거가 불안정한 상황에서 금전적인 어려움이 가중되는 견디기 힘든 좌절을 겪게 된다. 전세 제도의 안정성을 보완하기 위해 정부와 공인중개사 등 모두가 노력해서 전세사기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다방면으로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 하지만, 전세 제도는 근본적으로, 공적인 금융기관을 거치지 않은 사금융 제도의 특성을 지니므로 높은 가성비만큼 위험도 존재하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아울러, 사기가 아니라고 할지라도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위험성도 존재하며, 특히 주택가격 하락기에 이런 현상은 심화된다. 집주인들은 받은 보증금을 예금하기보다는 더 비싼 주택 등 다른 곳에 거주 혹은 투자하는 용도로 사용하고, 전세기간 만료로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돌려줄 때는 다음 세입자로부터 보증금을 받아서 돌려주는 경우가 많다. 전세금 10억 원에 계약했으나, 2년 뒤 시세가 하락하여 7억 원이 되는 경우 다음 세입자로부터 7억 원 밖에 받을 수 없는 집주인은 전 세입자에게 3억 원을 돌려주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특히, A 아파트를 소유하지만 전세를 주고 직장 근처 B아파트에서 전세를 사는 사람, 그 B아파트를 소유하지만 전세를 주고 더 위치가 좋은 C아파트에서 전세를 사는 사람 등 계속해서 연결되는 전세금 레버러지의 연결고리 속에서 한 군데라도 보증금 반환이 불가능해지면 모두의 주거 및 금융 불안정이 발생하는 큰 리스크가 발생한다. 심지어, 주택임대차보호법의 강화(제6조의 2)로 인해서, 세입자는 갱신된 계약기간 중에는 언제든지 계약해지를 통보할 수 있기 때문에 집주인은 시장상황에 따라서 목돈을 급히 마련해야 하는 금융 리스크를 안고 있게 된다.
결론적으로, 전세는 서민 주거안정이라는 정책 목표 달성을 위해 아주 효과적인 제도이다. 하지만, 갭투자로 인해 전체적인 주택시장을 불안정하게 하면서, 전세는 내 집마련을 위한 서민의 꿈을 저해하는 가장 큰 요소로도 작용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미래에도 전세는 존재할까? 2026년 현재 전세 비중은 줄어들고 있다. 전세 또는 월세로 구성된 주택 임대차 시장에서 `20년 70.5%이던 전세 비중은 `24년에 46.4%로 급격히 줄었다(한국경제신문, `25. 2. 13).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으나, 서울 집값 상승과 함께 전세가격도 동반 상승하면서 보증금을 감당하기 어려워진 점과 정부가 '다주택자의 주택담보대출 제한, 무주택자도 대출한도 6억 원, LTV40% 이내 대출' 등 금융규제를 강화하여 전세자금 대출을 받기 어려워진 점이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된다. 이에 더해, 2020년 경부터 이슈가 된 전세사기 피해자 급증으로 인해 전세 제도에 대한 국민적 신뢰가 하락한 것도 기여했을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전세는 전편에서 살펴보았듯이 주택가격이 상승해야 유지될 수 있는 구조인데, 많은 사람들이 전 세계 최저의 출산율로 인한 인구의 급격한 감소와 기술의 발달로 인한 서울 거주 필요성 저하 등을 근거로 장기적인 주택가격 하락을 예견하고 있다. 주택가격이 하락하면, 많은 집주인이 보증금을 돌려줄 수 없어 전세제도는 자연스럽게 소멸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여전히 2026년 현재, 임대차 시장의 절반 정도(46.4%)는 '값싸고 편리한' 전세 제도를 활용하고 있고 부동산 가격은 상승하고 있어서, 전세 제도가 당장 없어질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금융규제와 전세자금 대출을 통해 전세 제도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정부 입장에서는 '서민 주거 안정'이라는 정책 목표에 전세 제도가 부응하는지 여부에 따라 금리 지원, 세제 등을 개편해서 전세 제도의 유지 또는 폐지에 대한 방침을 정할 것이다. 여기서 쟁점은 과연 어디까지를 '서민'으로 보느냐 하는 것이다. '주택을 사고자(buy)' 하는 사람들은 전세로 인한 주택가격의 상승으로 인해 주택 마련의 꿈이 멀어진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에 '주택에서 살고자(reside)' 하는 사람들은 전세로 인해 저렴하게 주택에 거주할 수 있으면 만족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정책 목표인 서민을 어디까지 보느냐에 따라서 전세제도를 지원의 정당성이 결정되는 것이다. 현재 많은 국민들은 주택에서 저렴하게 거주할 수 있는 것을 주거안정으로 인식하고 있어서, 전세 제도가 유지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전세 제도의 미래는 이미 결말이 정해진 소설이라기보다, 독자 참여형 연재물에 가깝다. 집값이 오르면 전세는 다시 숨을 고르고, 금리가 오르면 월세라는 다른 인물이 전면에 등장한다. 금융 제도가 바뀌면 전세는 옷을 갈아입고, 국민 인식이 달라지면 성격도 조금씩 변한다. 한국인은 주어진 제도에 순응하기보다, 상황에 맞게 접고 비틀고 자르고 늘리면서 써왔다. 전세 역시 제도 변화로 순식간에 사라질 운명이라기보다, 국면마다 모습을 바꾸며 살아남아 온 적응형 생물에 가깝다. 결국 전세의 미래는 법이나 숫자가 아니라,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해 온 한국 사회의 유연한 선택 속에서 앞으로도 변신하면서 살아나갈 것이라고 감히 예측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