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만 존재하는 독특한 사금융 주택 제도
전 세계에서 독특하게 한국에만 존재한다는 K-주거문화, 전세! 2010년 대 이후 우리나라 부동산정책의 총책임자였던 국토부 장관들 중 여러 명이 전세가 갭투자를 유발하고, 전세 사기 피해자를 유발하기 때문에 '전세는 수명이 다했다.'거나, '전세를 폐지해야 한다.'라고 주장해서 시장의 반향을 일으킨 바 있다. 반면, 김세직 서울대 교수는 현금 교환이 없이도 집주인은 집세를, 세입자는 이자를 받는 전세 제도야 말로, '우리나라 산업화 촉진의 비밀병기'라고 치켜세웠다. 외국인들과 전세 제도에 대해 이야기해 보면, 공식적인 금융기관인 은행에 돈을 빌려주거나 빌리는 것이 아니고, 원래는 알지 못하던 사람들 간에 몇 년 내지 몇십 년을 벌어야 벌 수 있는 큰돈을, 떼일 수도 있는 위험을 감수하고도 맡기는 한국인들의 주거 문화를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한국인에게는 정상이지만, 외국인들에게는 비정상'인 전세 제도에 대해서 살펴보자.
전세란 무엇일까? 최대한 어렵게 말해보면, 민법 제303조에 따라 '전세권자는 전세금을 지급하고 타인의 부동산을 점유하여 그 부동산의 용도에 좇아 사용ㆍ수익'할 수 있고, '그 부동산 전부에 대하여 후순위권리자 기타 채권자보다 전세금의 우선변제를 받을 권리'가 있다. 좀 더 쉽게 얘기하면, 집주인은 집을 빌려주는 대신 목돈을 빌리고, 임차인은 돈을 빌려주는 대신 집을 빌리는 거래이다. 일반적으로 상품 거래를 위해서, 특히 큰돈이 드는 거래를 위해서는 파는 사람의 신용이 필수적이다. 우리가 백화점이나 마트에서 물건을 살 때 물건의 품질을 의심하지 않고 사지만, 중고시장에서 거래를 하면 파는 사람이 믿을 만한지, 물건에 하자는 없는지를 꼼꼼하게 살펴보아야 한다. 대신 백화점이나 마트에서는 그러한 신용을 제공하는 만큼 마진(이율)을 붙여서 판다. 금융거래에서도 개인 간 거래는 돈을 떼일 염려가 있기 때문에, 신용을 제공하는 은행이 돈을 빌려주거나, 예금을 받아준다. 물론, 은행은 돈을 떼이지 않는다면 전혀 지출할 이유가 없는 신용의 대가로 높은 수수료를 챙긴다. 그런데, 전세는 이처럼 신용을 제공하면서 돈을 빌려주는 은행을 거치지 않고도, '주택'이라는 귀중한 물건과 목돈을 서로 거래할 수 있게 해 준다. 은행이 돈을 빌려줄 사람의 신용을 계속해서 확인하지 않아도, 임차인은 보증금을 지급한 집주인이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으면 안 나가고 집에서 버틸 수 있다. 반면, 임차인이 계약 기간 만료에도 나가지 않으면, 집주인이 보증금의 전부 또는 일부를 가질 수 있다. 이러한 담보를 통해 사인 간 목돈거래인 전세가 가능해진 것이다.
이렇게 전세 제도가 좋은 것이라면, 모든 상품을 전세로 매매할 수는 없을까? 전세가 성립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요건 2가지만 살펴보자. 예를 들어, 1억 원짜리 제네시스 신 차를 보증금 5천만 원에 4년 간 빌리는 것과, 10억 원짜리 서울 아파트를 전세금 5억 원에 4년 간 빌리는 것을 비교해 보자. 우선, 가격 측면에서 전세는 가격 상승에 대한 기대가 있고, 감가상각이 심하지 않은 물건이어야 한다. 집주인은 아파트 가격이 4년 뒤에 올라가서 13억 원이 되어, 보증금 5억 원을 갚아주고 세금을 다 내고도 2억 원이 넘는 이익을 볼 것이라 기대한다. 물론, 아파트는 4년이 지났다고 무너지거나 성능이 급감하지는 않는다. 반면에, 자동차 차주는 4년 뒤에 제네시스가 중고차가 되어 성능도 떨어지고 가격도 내려가기 때문에 보증금을 그대로 돌려주면서까지 다시 타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둘째, 주인이 물건에 대한 촘촘한 관리가 가능해야 한다. 집은 땅에 붙어있어 있고 원래 상태를 쉽게 확인할 수 있어서, 4년 뒤에 상태를 꼼꼼히 확인하고, 심지어 '원상복구'를 명령할 수 있다. 여러 세대가 붙어있는 아파트의 특성상 집의 벽을 무너뜨리는 등 안전을 저해하거나 자산가치를 떨어뜨리는 행위를 옆집도 감시하는 '공동 감시체계'도 갖추어져 있다. 당연히 집에 손상이 있으면, 보증금울 그만큼 제외하고 지불한다. 반면, 차를 빌려주는 경우 주차하다가 얼마나 긁었는지, 보험 처리하지 않은 사고는 없었는지, 심지어 침수가 되었는지 등을 확인하기가 어려워서, 보증금만 받고 4년 동안 수수료 없이 빌려주기는 쉽지 않다.
전세는 언제부터 도입되었을까? 여러 가지 가설들이 있지만, 한국민족문화 대백과 사전에 따르면 1876년 강화도 조약 이후 근대화 및 도시화로 서울 인구가 급증하면서 집값의 50%, 많게는 70~80%에 해당하는 전세를 받고 전세 계약관계를 맺는 행태가 널리 퍼지게 되었다고 한다. 전세제도가 메소포타미아 문명 누지, 나폴레옹 시대에서도 존재했다는 견해도 있지만, 대부분은 주택을 담보로 한 사금융의 형태로 존재했다. 현재 볼리비파 등 남아메리카에 존재하는 Anticrético 제도가 전세와 유사하게 세입자가 목돈의 담보를 지불하고, 집주인으로부터 계약기간 동안 별도 임대료 없이 사는 거주할 수 있는 제도이나, 이들의 비중은 높지는 않다.
왜 한국에만 전세 제도가 이렇게 보편화되었을까? 먼저, 대한민국은 유례가 없는 '급속한 도시화'를 경험하면서, 서울에 집중된 인구를 해소하기 위한 주거 제도가 필요했다. 서울시 인구는 1960년 245만 명, 1970년 543만 명, 1980년 836만 명, 1990년 1061만 명으로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였지만, 주택 공급은 부족하여 1990년대가 되어서야 주택보급률이 40%를 겨우 넘어서는 수준이었다(그림 1). 다시 말해, 90년대 이전까지 서울의 주택 수는 가구 수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기에 임대하여 주거할 수 있는 주택에 대한 수요가 넘쳐났다. 둘째, 집주인에게는 전세가 매월 돈을 받아야 하는 월세보다 '믿을만하고 편리한' 제도였다. 월세는 몇 달 치를 안 내다가 야반도주할 수도 있고, 안 내고 버틸 수도 있는 위험성이 있었기에 매월 월세를 내지는 않더라도 떼 먹힐 염려 없는 전세를 선호했다. 셋째, 금융기관이 발달하지 않아 은행으로부터 자금을 빌리거나 빌려주는 것보다 전세금을 받는 것이 '저렴한' 상황이었다. 동아일보 기사(2009.9.19)에 따르면 1960년대 정기예금 금리만 해도 30%에 달했고 1970년대에도 대출금리는 20%가 넘어갔기에, 금융기관으로부터 돈을 빌려서 집을 사거나, 다른 부동산에 투자하는 것은 어려운 상황이었다. 마지막이자 최근 가장 주목받는 이유로서, 집주인 입장에서 임대료를 받지 않아도 다른 집 등 수익률 좋은 '투자상품'(?)에 목돈을 투자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수익률 높은' 제도이기 때문이다. 임차인으로부터 목돈을 받아 다른 주택에 투자하는 것이 고수익 저위험으로 돈을 버는 길이었다. 가파르게 상승해 온 서울의 주택가격 증가(그림 2) 상황에서, 일정한 월세를 받는 것보다 전세보증금으로 다른 곳에 투자를 해서 집을 사고, 전세 만기 시점에 다음 세입자로부터 더 높은 전세보증금을 받아 돌려주는 형태가 보편화되었다. 한국인의 빠른 습득 능력과 여러 재테크 책들은 이러한 갭투자를 통한 자산증식을 확산시킴으로써, 서울 주택시장은 전세를 중심으로 거래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다음 편에 이어서, 전세의 장단점과 미래 전망에 대해서 같이 고민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