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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ro Jun 19. 2023

건조체 글쟁이의 삐딱한 세상-꼴통

34. 기립하시기 바랍니다

  과연 인간은 완벽할 수 있을까요. 저는 유신론자는 아니지만 신이 아닌 이상 아마 인간이 그럴 수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참으로 다양한 인간, 다양한 인생들이 존재합니다. 그 많은 인간군상과 삶들 속에서 각자의 실수와 오류들은 뜻하지 않게 얽히고설켜 우리가 살아가는 하루하루는 언제나 힘겨운 고난의 길입니다.


  이렇게 인종과 나라, 생존과 직업이라는 조건으로 서로가 부딪히고 살아가는 세상이다 보니 요즘 우리 주변에는 오해와 불신으로 사람 대 사람 간의 송사가 자주 벌어집니다.


   서로 간의 마찰로 불화가 생길 때면 가장 좋은 방법은 물론 상호 이해와 배려의 정신으로 서로 얼굴 붉힘 없이 각자 만족 할 만한 결론에 도달하는 것일 겁니다. 하지만 그러함은 생각처럼 그렇게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 보니 우리는 자력으로 결론지을 수 없는 그 문제들을 법치국가라는 명목하에 최종적으로 사법부에 맡겨 판사들의 판결에 의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국가 대 개인의 형사사건은 물론 원만한 합의를 이루지 못한 개인 대 개인의 민사 사건까지도 그 끝은 언제나 판사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럼 저는 이번 주제를 이야기하기에 앞서 먼저 이처럼 인간사의 중요한 결정권을 가진 판사들에 대해서 먼저 알아보겠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판사가 되는 방법은 예전 같은 경우에 사법고시를 합격해 사법연수원에서 법관의 자질을 교육받은 후 성적순으로 판사에 임명되었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사법시험이 폐지되고 로스쿨 제도가 생기면서 로스쿨에 입학해 3년간 수학한 후 변호사나 검사 경력을 쌓은 다음 법원 재판 연구관으로 활동하며 이 둘을 합하여 10여 년 정도 경력이 쌓이면 판사자격시험을 치르게 되고 이때 이 임용시험을 통과하면 판사로 임명된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나라에서 판사가 되는 방법은 오직 법전을 파고들어야 하는 공부뿐임을 알 수 있습니다. 판사라는 직업이 법에 의해 옳고 그름을 결정짓는 일이다 보니 법전을 들여다보고 공부해야 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죠. 그러나 저는 그와 더불어 인간에게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판단을 해야 하는 직업이니만큼 법전에는 나오지 않는 복잡한 세상만사를 읽는 혜안 또한 법전 못지않게 중요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서른도 채 되지 않은 나이에 학교와 공부 외에는 특별한 인생경험도 없는 판사가 수십 년 간 얽혀온 한 인간의 굴곡진 인생을 다루고 판단한다는 것이 과연 옳은가라는 생각 때문에 말입니다.

 

  물론 인생경험이 많다고 모두 지혜로운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래도 얽히고설킨 복잡한 세상을  이해하고 판단하는 대에 있어서는 최소한 그 경험이 없는 것보다는 조금이라도 있는 것이 났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이러한 것들을 생각해 볼 때 미국의 판사 임명 방식을 한 번 살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우선 미국은 각 주와 연방이 여러기지 방식을 이용해 판사를 임명한다고 합니다. 미국은 정당에 의한 공천과 상원에 의한 추천으로 대통령이 임명하는 방법이 있는 가 하면 각 주에서 선거를 치뤄 뽑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 보니 특별한 사회 경험 없이 사법시험의 합격이나 로스쿨을 졸업해서 법 기술자로 곧장 판사가 되는 우리와는 달리 변호사나 검사가 아니더라도 다양한 직업과 다양한 사회적 경험을 가진 사람이 판사가 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물론 미국의 방식이 일방적으로 옳은 것만도 아니고 우리의 방식 또한 일방적으로 잘 못 됐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미국과 비교했을 때, 수년 전 우리나라 법원에서 마치 옛날 양반집 어린 꼬맹이가 나이 지긋한 머슴을 나무라듯 일흔이 넘은 노인을 젊은 판사가 훈계하고 나무라 큰 이슈가 됐던 일을 돌이켜 보면 우리나라 판사 임용방식에 깊은 고민을 안겨 주는 것이 사실입니다.


  저는 앞에서 말한 젊은 판사의 훈계 사건에서 판사가 내린 법률에 따른 법적 판단의 훈계라면 마땅히 존중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이유야 어떻든 국가에서 그러한 일을 하라고 판사에게 판결의 자격을 부여해준 국민적 약속이니 말입니다. 하지만 인생경험이 일천한 젊은 판사가 무엇을 바탕으로 법적 문제가 아닌 인생의 삶에 대해 칠십 년을 넘게 산 노인에게 단지 자신이 판사라는 이유로 마치 어린애 대하듯 이래라저래라 훈계를 한다는 말입니까. 이것은 자신이 비록 판사라고해도 조금 지나친 처사가 아닙니까.


  아마 판사의 이러함에는 그 기저에 우월의식이 깔려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자신들은 마치 전근대의 왕이나 귀족들처럼 일반인들보다 뭔가 다르게 태어난, 절대자로부터 선택받았다는 선민의식 같은 거 말입니다. 그 하나의 예가 바로 법정에서 판사들이 들어올 때와 최종 판결을 할 때 피의자나 방청객들을 기립시키는 것입니다.


  모든 국민은 법 앞에 평등합니다. 이는 헌법 11조에 보장된 대한민국 시민의 당연한 권리이며 인간의 당연한 권리입니다. 그런데  이런 평등사상이 어찌해서 판사 앞에서는 예외가 되어야 한단 말입니까.


  판사도 오류 투성이의 그저 한 인간일 뿐입니다. 그들은 법리를 따져 유무죄를 판단하면 되는 법 기술자일 뿐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그들이 뭐라고 우리들이 기립까지 해서 맞아야 하고 판결문을 들어야 하는 것입니까.


  판사들이 형사사건과 민사사건을 다루는 우리의 사법체계는 적지 않은 시간을 이어왔습니다. 그 시간 동안 판사들은 인간 위에 군림하는 우월한 존재처럼 살아왔다고 해도 빈말은 아닙니다. 그렇다 보니 법정에서 판사들 앞에 기립하지 않으면 법정 모독행위라고 난리를 치는 것이고요. 이는 한 낱 인간에게 법을 좀 안다고 신의 영역이라 할 수 있는 인간 심판의 권한을 부여하니 벌어지는 일입니다. 자신들이 마치 신이 나 된 것처럼  오만해지는 것이죠.


  민주주의의 최고 이념은 평등입니다. 모든 인간은 상호 평등해야 한다는 이 말은 두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도 법정에서 판사들이 들어오면 모두 일어나 그들에게 공손함을 보여야 합니다. 과연 이것은 법의 공정함에 대한 공손입니까 아니면 일개 판사에 대한 공손입니까. 제 눈에는 법의 공정에 대한 공손보다 판사 개인에 대한 공손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저는 21세기를 살아가는 한 인간으로서 또 동등한 자격을 가진 인간이라는 생명체로써 아직까지 행해지는 이와 같은 구시대적 행태가 하루빨리 바뀌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2021. 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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