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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ro Jun 20. 2023

건조체 글쟁이의 삐딱한 세상-꼴통

Zero 연대기 4-청

 고등학교 시절 몇 개의 꿈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영화배우가 되어 영화감독이 되는 것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체육대학 입학이나 특수부대 입대가 그것이었었습니다. 영화감독의 꿈은 어릴 적부터 영화를 좋아했던 것의 연장이었고 체육대학과 특수부대 입대는 몸이 유약했던 소싯적 육체의 강인함에 대한 동경이었습니다.


  고3시절 모의고사를 칠 때면 언제나 동국대 연극 영화과와 한국 체육대학을 지망했습니다. 그 두 곳이 각 분야에서는 당시 제일 유명했기 때문입니다. 연극영화과를 졸업해 배우의 경력을 쌓은 다음 감독으로 진출해 멋진 영화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때는 연기자와 감독이 다른 분야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실력 있는 감독이 되기 위해선 우선 배우가 되어 연기가 무엇인지를 알고 난 후 감독이 되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엘리트 스포츠가 그렇듯 선수로 일선에서 뛰어 본 적 없는 사람이 감독이 된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대입 시험이 가까워질 무렵. 담임이 교무실로 저를 불렀습니다. 저는 무슨 이유인지 알 수 없어 긴장한 채로 교무실에 갔습니다. 담임은 제가 들어오자 책상에 편지봉투 하나를 던지며 이것이 무엇이냐고 따져 물었습니다. 저는 그 편지가 무엇이길래 담임이 저토록 역정을 내는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담임의 책상에 놓인 편지를 곁눈질로 살펴봤습니다.


  편지는 연기학원에서 온 것이었습니다. 연극영화과 지원생들에게 연기 실습을 위해 자신들의 학원에 등록하라는 홍보 편지였던 것입니다. 담임은 체육대학에 갈 거라며 보충수업시간에 운동장에서 체육 실기 시험을 준비하는 너에게 왜 이런 것이 온 거냐며 화를 냈던 것입니다.


  사실 저는 내성적인 성격이라 진짜 제 속 마음을 담임에게 말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가고 싶은 곳은 원래 연극영화과라고 말입니다. 하지만 워낙 숫기가  없던 터라 부모는 물론 친한 친구에게 조차 이야기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아무튼 화가 난 담임은 연극영화과에 지망할 것이면 원서를 써주지 않겠다고 저에게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순진해 담임이 그렇게 한다면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나 부모님이 찾아가 따지면 원서를 안 써 줄 수 없는 것일 텐데 말이죠.  


 담임으로부터 그러한 말을 들은 저도 오기가 있는 터라 그렇다면 지금부터 보충수업이나 야간 자율 학습을 나에게 강요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사실 또 가능성도 없었지만 혹여 하나 운 좋게 합격한다 해도 등록금을 감당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어릴 적부터 항상 저희 형제들에게 대학은 엄두도 낼 수 없다, 그저 고등학교까지만 어떻게 해주겠다고 입에 못이 박히도록 말씀하셨구요 . 그래서 그런지 사실 저는 일찍부터 공부에 손을 놓았었습니다.


   담임은 저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3학년 내내 정규 수업시간 공부는 하지 않은 체 소설이나 산문집 같은 문학 책과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대입시험 원서 한 번 쓰지 않고 고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졸업식날 저는 졸업장을 받아 들고 곧바로 옷가지 몇 개를 챙겨 취업반 친구 몇 명이 자리 잡고 있던 구미공단의 대기업 3차 협력업체의 한 공장으로 들어가 사회생활을 시작했습니다.


2021. 3.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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