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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ro Jun 21. 2023

건조체 글쟁이의 삐딱한 세상-꼴통

30. 디아크

대구의 서쪽에 위치한 달성군 강정마을에는 4대 강 사업의 하나인 강정고령보가 들어서 있습니다 마을 앞으로 태백에서 발원한 영남의 젖줄 낙동강이 흘러 그곳에 보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보가 자리한 강정은 예로부터 나루터이자 유원지로서 시민들의 휴식 장소로 유명했습니다. 하지만 세월에 풍화되어 사람의 발길이 끊겨 생명만 유지했었는데 이렇게 보가 건설되어 주변이 공원화되면서 다시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옛날의 명성을 되찾게 된 것입니다.



  풋풋한 사랑이 묻어나는 젊은 연인과 부모의 손을 잡고 걸음마를 뽐내는 아이의 아장거림, 그리고 인생의 황혼이 짙게 물든 어르신들의 모습이 어우러진 이곳의 요즘 풍경은 다채롭기 그지없습니다. 그 다채로움의 시작은 늘, 강정고령보와 함께 보 옆 낙동강의 상징물로 만든 “디아크”광장에서 펼쳐집니다.



  강정 고령보 옆에 자리하고 있는 디아크는 우리나라의 강에 담긴 문화와 정신을 상징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건축물입니다. 그래서 강정고령보를 구경 오는 사람들은 이 “디아크”를 제일 먼저 보게 됩니다. 보 이외에는 특별한 구조물이 없는 곳으로 초입에서부터 그 웅장한 모습을 뽐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린아이를 비롯한 많은 이들이 그 외형을 돌고래로 연상하는 이 건축물 “디아크”는 바야흐로 강정고령보의 주요 상징물이 된 것입니다.



   제가 태어난 고향은 이 디아크가 있는 강정의 옆 마을입니다. 저는 지금도 제가 태어난 그 고향에서 살고 있고 삶의 한 방편으로 밥벌이하는 직장 또한 디아크와  불과 몇 백 미터 떨어진 곳입니다. 그렇다 보니 출퇴근할 때면 자의든 타의든 늘 이 디아크를 볼 수밖에 없고요.



  자전거 길을 끼고 있어 봄날 아침이면 라이더들의 소란함에 잠을 깨는 디아크. 그 앞 너른 광장에서는 휴식을 즐기는 사람들의 소란함과 다양한 행사가 어우러지며 복합문화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하며 이제 대구 전체의 상징물로 어엿하게 자리 잡게 된 것입니다.



  평소 역사와 문화에 관심이 많던 저는 수년 전 대구관광협회에서 주관하는 문화해설사 양성교육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저희가 교육받은 해설 지역이 바로 이곳 달성군이다 보니 강정고령보와 디아크에 대해서도 교육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저는 해설사를 통해 이 디아크라는 건축물의 내력을 들으며 적잖은 실망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디아크를 설계한 사람이 세계적 건축가로 이름이 높은 이집트 출신의 “하니 라쉬드”라는 사람이라는 것 때문에 말입니다. 하니 라쉬드. 그는 디아크의 형상을, 물고기가 물에서 튀어 오르는 역동적인 모습과 어릴 적 강물에 돌을 던지며 놀던 물수제비 놀이, 그리고 조선 백자의 세련된 맵시에 영감을 받아 현재의 디아크의 외형을 설계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디아크에 실망한 지점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디아크를 설계한 사람이 외국인 건축가라는 점 말입니다.



  하니 라쉬드는 이집트 출신의 세계적인 건축가입니다. 물론 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치는 사람이니 만큼 그 실력은 두 말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나일강, 미시시피강, 아마존 강과 같은 외국의 강을 어릴 적부터 보고 자란 사람이 그 강들과는 질적으로 다른 우리 한국의 강에 대해 얼마나 많은 이해력을 가지고 있겠습니까.  줄기줄기 서려 있는 우리 민족의 강에 얽힌 애환과 얼을 과연 백만분의 일이라도 짐작이나 할 수 있을 까요.



  강물에서 튀어 오르는 물고기, 물수제비 놀이, 조선의 백자. 물론 외국에도 튀어 오르는 물고기를 볼 수 있고 물수제비 놀이도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당연히 박물관에서 조선의 백자 또한 직접 봤을 것이고 말이죠. 그러니 그러함들을 건축물에 표현하기는 어렵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분명 어디까지나 외국인의 시선과 감정이 얽힌 이방인의 정서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지 않겠습니까.



  저는 세계화된 세상에 한 시대를 대표할 중요한 상징물이니 만큼 실력 있는 사람을 골라 최고의 건축물을 만들겠다는 마음에는 어느 정도 공감을 가집니다. 그렇지만 한국의 강을 기념하기 위해 만드는 건축물에 꼭 외국인 건축가이어야 했는가에 대한 질문은 던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설사 우리나라 건축가의 실력이 조금 모자라 그런 것이었다면 모자란 대로 그중 최고를 뽑아하면 될 것이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는 이유로 꼭 외국인 건축가를 선택해 우리의 강을 표현해야 했는지 말입니다. 그래서 저의 짧은 소견을 말해보자면, 요즘 같이 한국의 문화가 세계적으로 뻗어나가 큰 영향역을 미치고 있는 모습을 생각할 때 이러한 문화 사대주의 같은 발상은 다시 한번 심사숙고되어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2020. 1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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