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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ro Jun 22. 2023

건조체 글쟁이의 삐딱한 세상-꼴통

14. 오심도 경기의 일부

2020년 11월 26일. 아르헨티나 출신 세계적 축구 스타 디에고 마라도나가 심장마비로 사망했습니다. 1968년부터 선수 생활을 한 그는 현역시절 수많은 상을 휩쓴 것은 물론 국가대표 A매치 91경기에 34골을 기록하며 전 세계 축구팬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1986년 멕시코 월드컵 8강전 잉글랜드와의 경기에서 왼손으로 쳐 넣은 공이 골로 인정되며 신의 손이라는 조롱 또한 만만치 않게 받아야 했었던 선수이기도 했습니다.



마라도나의 신의 손 경기는 스포츠 역사에 있어 숨길 수 없는 명백한 오심경기였습니다. 그날 상대팀은 주심에게 강력하게 항의했지만 한 번 내려진 결정은 번복되지 않았습니다. 물론 찰나에 벌어지는 일이라 심판의 착오는 충분히 인정할만했습니다. 그때는 요즘과 같이 비디오 판독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으니 말이죠.



   우리 인간들은 신이 아니기에 결코 완벽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마라도나의 경우처럼 스포츠 경기에 심판의 착오도 “오심도 경기의 일부”라는 말로 한 번 내려진 심판은 번복될 수 없다라며 그 실수들을 지금까지 정당화해 왔던 것이고요.



십여 년 전. 삶의 한 방편으로 합기도 도장을 몇 년 운영했었습니다. 합기도가 자신을 방어하는 무술로 격투기의 일종이다 보니 한 해에 적지 않은 겨루기 대회가 열립니다. 그럴 때면 자격을 갖춘 관장들이 대회 심판을 보게 되는데 그런 이유로 나 또한 적지 않은 심판을 봐야 했었습니다.



  대회 심판을 보는 날은 모든 경기가 끝나면 몸은 진액이 다 빠진 것처럼 심하게 지칩니다. 매 순간, 한순간의 실수와 판단착오로 경기의 승패가 뒤바뀌는 일이 일어나지 않게 모든 신경을 경기에만 집중시켜야 하기 때문에 말입니다.



  지역의 소규모 대회만 해도 이런데 이것이 올림픽이나 월드컵과 같은 세계적인 대회라면 어떻겠습니까. 출전 자체가 운동선수로서 최고의 영예인 그런 대회에서 오심으로 결과가 뒤바뀌어버린 면 그날의 순간을 위해 삶의 모든 걸 쏟아부은 선수의 피해는 어떤 식으로 보상이 될 수 있을까요.



  이처럼 심판의 한 순간 판단 실수는 선수의 운명을 심각하게 바꾸어 버립니다. 오로지 그날의 승리만을 위해 피땀 흘린 선수들의 노력이 일거에 물거품이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직접 선수로 뛰어본 적이 있거나 아니면 스포츠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심판의 판단이 경기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제가 이렇게 구구절절 설명하자 않아도 아마 잘들 알고 있으리라 짐작됩니다.



   우리나라는 외국처럼 클럽 스포츠가 아닌 엘리트체육으로 운영됩니다. 그렇다 보니 선수들은 운동이 곧 인생이고 일반인들이 취업에 모든 걸 바치듯 그들은 주요 대회에 자신의 삶을 모두 쏟아붓습니다. 그렇다 보니 그들에게 오심은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될 절대적인 그 무엇과도 같습니다.



   요즘은 장비와 기술의 발달로 여러 종목에서 심판의 오심을 줄이려고 비디오 판독을 채택해 시행하고 있습니다. 이는 아주 좋은 현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비록 경기 시간이 늘어나고 흐름이 끊기는 부작용이 있다고는 하나 선수와 팀의 운명이 달린 일이니 만큼 당연히 일찍부터 그렇게 했어야 되는 일이었던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스포츠 경기의 심판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신이 아닌 이상 인간이 완벽 한 심판을 본다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 한 일일 것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오심도 경기의 일부”라는 구태의연하고 무책임한 말로, 그동안 각고의 노력으로 그 자라에까지 올라온 선수들의 운명이 바뀌어 버리는 잘못된 관행이 더는 정당화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2020. 1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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