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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ro Jul 07. 2023

건조체 글쟁이의 삐딱한 세상-꼴통

42. 블랙컨슈머(누구의 책임인가?)

  요즘 갑을 관계라는 것이 큰 사회적 이슈입니다. 갑을 관계는 보통 계약서 작성이나 약정서 작성 시 관계의 편의를 위해 사용되던 용어인데 지금은 힘 있는 자와 힘없는 자의 상하 계급을 나누는 말로 널리 쓰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갑을 관계는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수시로 갑을의 위치 변화를 겪게 되는 것입니다. 사회 구성원으로서 어느 일에서는 내가 갑일 수도 있고 또 어떤 자리에서는 을이 되는 상황을 겪게 된다는 말이죠.



   우리나라는 기나긴 왕조의 시대를 겪었습니다. 근대 이전의 봉건 사회는 왕과 귀족들의 절대권력이 최상위의 갑이었습니다. 그 갑의 신분은 그 누구도 반박이 불가한 신성불가침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영원히 을로서 핍박받아야 했던 민초들은 왕과 귀족 같은 갑의 위치가 되어보는 것이 평생의 소원이었습니다.


 


   그렇게 수 천년의 지난한 시간을 견뎌온 을의 고달픔 때문인지 우리는 언제나 갑을 꿈꿉니다. 그리고 그 발현이 비록 장사의 수단이었다고는 하나 “손님은 왕”이라는 말로, 힘 있는 자들에게 억눌렸던 을들의 감정을 폭발시키며 상거래에 있어 바야흐로 파는 자와 사는 자 간의 갑을 전쟁이 시작된 것이고 말입니다.



   사실 우리 같은 평범한 시민들은 갑으로서의 생활보다 는 을로서의 시간을 더 많이 보내게 됩니다. 그렇다 보니 늘 감정은 약자로서 무언가에 억눌려 있는데 그러한 을로서의 입장을 유일하게 갑으로 바꿀 수 있는 순간이 바로 자본사회라는 이름아래 물건을 구입하고 값을 지불하는 손님으로 돈을 쓸 때입니다. 소비자로서 돈을 지불하며 무엇을 구입하거나 이용할 때 을에서 갑으로의 입장 바꿈이 일어나니까 말입니다.



   블랙컨슈머는 바로 그런 갑으로 변한 우리들의 행태를 지적한 말입니다. 손님으로서 정당하게 갑의 대우를 받는 것은 좋은데 그 정도가 도를 지나쳐 상식에 어긋나는 행동을 했을 때 그들을 지칭하는 용어로 말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주머니를 털어 대가를 지불하며 특정인의 수익을 창출해 주는 주체로서 당연히 고객 응대를 잘못하는 상대에 대해 이의제기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권리는 보편적인 상식선에 한 한 것이지 그 이상을 넘으면 곤란합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그 기본적 상식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는 악의적인 사람들이 적지 않게 존재합니다. 그렇다 보니 소비자를 대상으로 제화를 제공하는 업체들은 유선전화나 대면 방식의 고객센터를 운영하며 그들의 불만족을 해결해 주려 하는 것이고요. 하지만 블랙컨슈머로 통하는 그들은 고객센터 직원을 상대로 폭언과 욕설은 물론 심지어는 폭행까지도 서슴지 않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이런 비 상식적인 일이 발생해도 고객센터를 운영하는 업체는 자신들의 회사 이미지와 영리를 위한 반작용을 우려해 어찌했던 그들의 요구를 해결해 준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요즘 고객의 컴플레인을 담당하는 이 고객센터 업무 종사자를 감정노동자라 부릅니다. 이 말은 사람을 응대해야 하는 고객센터 업무가 그만큼 인간의 감정에 크게 좌우된다는 말일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을 비상식적으로 대하는 블랙컨슈머들에게 그들도 엄연한 인격체로 최소한의 인간적 대우를 하라고 외치는 것이고요



   그런데 저는 이 감정노동자를 힘들게 하는 블랙컨슈머에 대해 한 가지 의문이 있습니다. 그것은 과연 소비자가 블랙컨슈머로 변하는 게 누구의 탓이냐 하는 것입니다. 저의 이 말을 듣는 여러분은 지금 저 사람이 도대체 무슨 말도 안 되는 황당한 소리를 지껄이느냐고 의아해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블랙컨슈머는 당연히 그 사람의 인성문제라고 생각할 것이기 때문에 말입니다. 물론 저도 당연히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입니다. 하지만 제가 겪은 사례를 들어 왜 제가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된 것인지 그것에 대해 부족하나마 한 번 설명해 볼까 합니다



   몇 년 전의 일입니다. 저는 인터넷으로 의자 하나를 구입했습니다. 그런데 그 물건이 2주가 지나도 도착을 하지 않았습니다. 분명 배송조회에서는 구입 당일 정상 발송이 되었는데 무슨 이유인지 그 많은 날이 지나도록 도착하지 않은 것입니다. 저는 택배사에 전화를 걸어 사정을 알아보려다 며칠 정도는 여유가 있는 일이라 조금 더 기다려 보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며칠이 지나도 역시 택배는 감감무소식이었습니다. 저는 더 이상은 기다릴 수 없어 곧 택배사 고객센터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저의 전화를 받은 고객센터 직원은 우선 고객 정보를 알아야 한다며 저의 주소와 이름, 전화번호 그리고 물건 구입 날짜 등을 물었습니다. 저는 직원의 물음에 또박또박 답변을 하고 제가 왜 전화를 걸었는지 그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저의 고객정보와 컴플레인 내용을 확인한 직원은 10분 내로 연락을 주겠다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하지만 10분이 넘도록 고객센터로부터 연락은 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몇 시간이 지나도 연락은 오지 않았습니다. 끝내 그날은 그렇게 아무런 연락도 받지 못한 채 하루가 지나갔습니다.


  


   다음날 저는, 전날은 사정이 있어 연락이 안 왔거나 하며 다시 연락을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오후가 되도록 택배회사 고객센터로부터는 아무런 소식이 없었습니다. 저는 참다못해 다시 고객센터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러자 어제와는 다른 직원이 상담자로 나와 다시 어제와 똑같은 고객정보 확인 절차를 거치고 컴플레인 내용을 확인했습니다. 그러고 이번 직원 역시 즉시 알아보고 연락을 드릴 테니 기다려 달라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러나 그날 역시도 고객센터로부터는 아무런 연락도 오지 않았습니다.



   화가 난 저는 다음날 영업시간에 맞춰 곧바로 고객센터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전화를 받은 직원은 전과 같이 또다시 고객정보 확인 운운했습니다. 화가 치민 저는 언성을 높여 며칠 동안 고객센터와 벌어진 일을 따지며 성질을 부렸습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채 5분도 되지 않아 확인 연락이 오고 일은 일사천리로 해결되었습니다. 이틀 동안 해결되지 않던 일이 화를 내고 소리를 한 번 지르자 곧바로 해결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저는 그 일을 겪고 나서 늘 그들의 편에 서고자 했던 저의 생각에 큰 회의를 느꼈다. 왜냐하면 화를 내고 큰소리를 쳐야 우선순위로 문제를 해결해 주고 점잖게 고분고분하면 만만하게 여겨 후순위로 미루어 버리는 그들의 행태 때문에 말입니다. 똥이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라는 업체측의 자기 의식 합리화 방식에 더욱 화가 치밀었고 말입니다. 저는 그 일을 계기로 과연 블랙컨슈머는 누가 만드는 것인가라는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물론 천성적으로 나쁜 고객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소리를 질러야 우선 처리해 주는 그들의 영업방식에는 이무런 문제가 없는 것일까요. 처음부터 안 되는 일이라면 어떠한 이유에서라도 안되어야 하는 것이고 일처리의 순서 또한 어떠한 이유로던 공정하게 지켜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언성을 높이고 화를 낸다고 해서 불가능한 일이 가능해져 버리고 순서도 우선처리 되어버리니 누군들 소리 한 번 질러서라도 먼저 일을 해결하고 싶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과연 이 블랙컨슈머로 불리는 나쁜 고객을 진정 누가 양산하고 있는 것입니까. 보편적인 상식에 어긋나는 블랙컨슈머는 당연히 그 당사자가 문제인 게 맞습니다. 저는 그 객관적인 사실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우리나라의 블랙컨슈머 양산에 업체 측 또한 적지 않은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의 논리가 비약적일 수 있지만 감정노동지가 일방적인 을 또 블랙컨슈머가 일방적인 갑이라는 현실적 인식에서 과연 그 문제의 갑이 왜 생겨나는 것인지 그 생성의 원인에 대해서 다시 한번 되짚어 보고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2021. 4.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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