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
아니! 이제 와서 이러면 어쩌자는 겁니까! 제가 라면을 무척 좋아하는데 몸에 좋지 않다고, 그래서 먹지 말하고 해서 안 먹었고, 커피 믹스 정말 좋아하는데 당뇨에 좋지 않다고, 그래서 마시지 말라고 해서 안 마셨고, 고기 엄청 좋아하는데 대장암 발병 위험과 지방간, 고지혈증 발병률이 높아진다고, 웬만하면 육식을 자제해라 해서 안 먹었고, 술도 좋아하는데 치매 발병률이 금주자들에 비해 몇 배나 높아진다고, 그래서 가급적 마시지 마라 해서 안 마셨고, 치킨에 맥주 역시 여름에 그만한 게 없는데 튀긴 음식이 콜레스테롤 수치를 높인다고 안 먹는 게 몸에 이로울 것이라고 해서 안 먹었고, 회와 초밥도 꽤 좋아하는데 날 것을 그대로 먹으면 몸에 좋지 않을 수도 있다고 해서 안 먹었고, 거기다 빵도 정말 좋아하는데 밀가루에 설탕이 많이 들어 고혈압이나 중성지방에 좋지 않다고 해서 안 먹었고 달고 짜고 화학조미료로 감칫맛을 제대로 낸 다른 맛있는 것들도 먹고 싶은 게 엄청 많았는데 몸에 안 좋을 수 있다고, 그래서 먹지 말라고 해서 안 먹었는데, 이렇게 불치병에 걸려 더 이상 살 가망이 없으니 맛있는 것 많이 잡수라니요. 선생님! 이제 와서 이러면 어쩌자는 겁니까!
사실 수명이라는 게 그렇잖아요. 정해져 있는 게 아니잖아요. 제가 라면을 안 먹었다고 수명이 3년 늘었다. 치킨을 안 먹었다고 수명이 2년 늘었다. 또는 밀가루 음식이나 고기를 먹지 않았다고 수명이 1년 늘었다는 걸 확인할 수가 있는 게 아니잖아요. 그냥 몇 살이 되었던 죽는 날이 재 수명인 것이죠. 다시 말해 앞에서 말한 저런 음식을 젊었을 때 자제했다고 제가 재 수명보다 더 살았는지 덜 살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는거죠. 그런데 젊을 때는 건강에 좋지 않다고 그렇게 먹지 말라고 자제하라고 했는데 불치의 병에 걸리니 드시고 싶은 거, 맛있는 거 많이 드시라는 거예요. 제가 보모님을모시고 병원에 갔을 때, 또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시한부가 판정되었을 때 의사들이 제일 먼저 그리고 제일 많이하는 말이 하나같이 좋은데 구경 많이 다니고 맛있는거 많이 잡수시라는 말. 바로 그말이라는 거예요. 젊을 때는 맛있는 거 먹고 싶은 거 먹지 말라고 해서 제대로 못 먹었는데 말이죠. 그런데 시한부로 죽을 날짜 받아 놓으니 맛있는 거 많이 먹으라면 도대체 어쩌자는 거예요. 저희들이 맛있어하는 음식이 대부분 의사들이 먹지말라거나 자제하라고한 음식들이 대부분인데요. 최후의 만찬도 아니고 죽음을 며칠 앞두고 먹는 그런 맛있는 음식이 맛있게 느껴지겠어요? 이쪽이나 저쪽이나 그저 참 답답할 노릇인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