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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ro Aug 15. 2023

건조체 글쟁이의 삐딱한 세상-꼴통

112. 숫자에 불과

나는 대구에 산다. 이곳은 여름이면 타 지역보다 유난히 무더운 걸로 유명하다. 언제부터인가 대구는 그런 극심한 더위 탓인지 지구촌 더위의 메카라 할 수 있는 아프리카의 더위와 맞먹는다는 의미에서 ” 대프리카”라고 불려지기 시작했다. 그렇다. 대구의 더위는 바로 그런 것이다.

  

  며칠 전 차를 타고 볼 일을 보러 집을 나섰다. 장마 기간이지만 비는 한 방울도 오지 않았다. 하늘은 곧 세상을 녹일 기세의 태양만이 작렬했다. 주민센터에서는 폭염경보 발령 방송을 시시각각 틀고 있었다. 주 내용은 폭염으로 노약자 안전이 우려되니 되도록이면 외출을 자제해 달라는 당부였다.


  내가 주민센터 폭염경보 방송을 들으며 길을 나선 지 몇 분. 차가 신호등에 걸리자 차창밖 횡단보도를 걸어가시는 동네 어르신 한 분이 보였다. 그분은 내 친구의 아버지로 무더운 날씨, 아스팔트의 복사열에도 아랑곳없이 긴소매와 긴 바지 차림으로 어디론지 바삐 걸어가고 있었다.


  나는 강열한 햇볕을 온전히 받으며 길을 재촉하는 어르신을 보자 퍼뜩 드는 한 가지 생각이 있었다. 그것은 왜 우리나라 어른들은 나이가 들면 반바지를 입지 않는 것인가이다. 미국 같은 경우 지긋한 나이에도 가볍게 반바지 차림으로 다니는 모습들을 볼 수 있는데 우리나라는 왜 그렇지 못하고 이 타는 땡볕에도 저렇게 긴 바지를 입고 다나는 가 이 말이다.


  우리나라 사람은 나이에 따른 제약 의식을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유독 많이 가지고 있는 듯 보인다. 그 이유는 아마 조선시대 오 백 년 동안 이어져온 유교의 예 사상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서 그런 나이에 대한 속박 의식 때문인지 우리 사회에 한 때 어른들 사이에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이 한 창 유행했었던 적이 있다.


  그런데 나는 어른들의 이 외침을 들을 때마다 그 말에 호응이 되지 않고 안쓰러운 마음이 먼저 일었다. 내가 “숫자는 나이일 뿐이다”라고 부르짖는 사람들에게 드는 이 연민의 이유는, 결코 나이가 숫자일 뿐만이 아닌. 그 숫자가 엄청 중요하다는 현실의 지엄함 때문이다.


  나는, 나이가 들어서, 보다 어린 생각을 가지고 뒷방 늙은이가 아닌 한 사회의 주체적 역량을 가진 사람으로 적극적인 삶을 살아가자는 어른들의 긍정적 의식을 문제 삼자는 게 아니다. 늦은 나이에 IT기기를 다루고 은퇴 후 세계 오지 여행을 하고 gym에서는 젊은 이도 감당하기 힘든 중량의 바벨과 덤벨을 들며 몸을 가꾸는 모습. 이는 분명 나이를 잊게 만드는 보기 좋은 모습이다. 하지만 그건 그것이고 나이라는 숫자는 분명 현실의 중요한 부분이다. 나는 그 나이라는 숫자. 그 숫자라는 기호의 상징성에 주목하고 그것을 따지고 싶을 뿐이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외침이 젊고 주체적으로 살고자 생각하는 어른들에게는 분명 자기 위안이 될 수 있다. 분명 숫자에 비해 마음이 젊은 것도 맞고 유행가 가사처럼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이도 맞기 때문에. 하지만 현실에서는 앞에서도 밝혔듯 그 숫자가 매우 중요하다. 그것은 거부하고 싶다고 해서 거부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고 해서 연령제한이 있는 회사에 지원서를 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하나 둘 나타나는 질병과 육체의 노화를 믹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 인간이 살아가는 사회의 나이라는 숫자애 대한 엄정한 현실인 것이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부르짖음. 이 말을 달리 생각하면 나이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반증일 뿐이다. 나이가 들어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할 뿐이라고 외치면 외칠수록 이 행위는 결국 나이라는 숫자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자기 인식의 반발이기에 어찌 생각하면, 젊은 사람들에게 꺼지기 전의 마지막 초불처럼 자신의 늙은 나이를 괜스레 각인시키는 것 같아 더 안타깝고 초라하게 보이도록 만들어 버리는 꼴이 되어 버린다.


  내 나이도 벌써 오십이 다 되었다. 나는 애써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항변을 떠들썩하게 외치고 싶지 않다. 나는 나이라는 숫자의 중요함을 인정한다. 그리고 그것을 받아들이며 작은 것부터 조용하게 바꾸어 나간다. 현실을 거부하려고 하지 않고 현실로 받아들이며 타인의 눈에 스스로 초라해지는 것을 만들지 않겠다는 것이다. 나는 지금도 더운 날 외출 할 때면 반바지를 입고 다닌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일흔이 되고 여든이 되어도 변함없을 것이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지만 그 숫자가 엄청 중요하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말이다.


2022. 7.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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