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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ro Aug 16. 2023

건조체 글쟁이의 삐딱한 세상-꼴통

45. 올림픽과 엘리트 체육

 86 아시안 게임과 88년 올림픽의 감동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제가 중학생이었던 때의 일입니다. 그때 저는 가족과 함께 tv앞에 앉아 유도와 양궁등 한국 선수의 금메달을 향한 투지에 얼마나 마음 졸였던지요. 당시의 감동 때문인지 저는, 훗날 자식을 낳으면 꼭 국가대표 선수로 만들어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게 하겠다는 다짐을 하곤 했었습니다.



이 편에서는 앞에서 운동 경기에 대해 이야기했으니 한 번만 더 운동에 대해 따져 볼까 합니다. 그것은 바로 올림픽과 우리나라의 엘리트 체육에 관해서 말입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대는 4년마다 큰 스포츠 경기가 열립니다. 그게 무엇인지는 누구나 다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올림픽이라 불리는 세계적 스포츠 제전이바로 그것이니까요. 전 세계 사람들은 모든 스포츠가 망리된 올림픽의 역동적인 매력애 빠져 그 시즌 자신들의 나라를 응원하며 자신이 가진 모든 에너지를 폭발시킵니다.



   저는 고등학생 시절 대입 모의고사 시험에 예체능 계열로 선택 과목이 체육이었습니다. 그렇다 보니 이론을 위해 체육 교과서를 달달 외우게 되다 시 피 했습니다. 그때 체육 교과서에 올림픽에 대한 상세한 내용이 기재되어 있었습니다. 그 내용 중 하나가, 올림픽은 고대 신을 모시던 제전 경기가 그 시초였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근대 올림픽은, 프랑스 출신의 피에르 드 쿠베르탱 남작이 영국 유학 중 영국의 청소년 교육 중심이 스포츠에 있는 것을 보고 감화를 받아 고대의 올림픽 부활을 꿈꾸며 IOC를 구성해 4년마다 개최하는 원칙을 세우게 됐었다는 것입니다.



  쿠베르탱은 올림픽을 부활시키며 “올림픽의 의의는 승리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참가하는 데 있으며,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성공보다 노력하는 것이다”라는 강령을 내세웠다고 합니다. 올림픽이 순수 아마추어 스포츠로서의 이념을 지켜가기를 천명하면서 말이죠.



  쿠베르탱의 이 올림픽 이념은, 1896년 그리스 아테네에서 열린 제1회 올림픽을 시작으로 2021년 7월에 개최되는 제32회 도쿄 올림픽까지 백 년이 훌쩍 넘는 사간동안 올림픽의 가치와 이념은 형식상으로는 아무 변함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20세기를 넘어서면서 올림픽은 순수 아마추어 스포츠로서의 순수성을 잃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순간 그 세계적인 스포츠축제는 강대국들의 국력과 경제력 과시의 장으로 변질되어 버린 것이죠. 그러함 들은 공정해야 할 심판 판정에서 종종 드러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모호한 상황에서 강대국 선수의 편을 들어주는 일이 자주 벌어지는 것은 물론 양궁 같은 경우 한국 선수들이 수 회에 걸쳐 일방적으로 금메달을 획득하자 반칙을 한 것도 아닌데 경기방식을 바꾸는 일까지 서슴지 않았으니까요.



  올림픽의 잃어버린 순수성은 비단 이런 심판 판정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우리나라 또한 엘리트 체육이라는 이름으로 그 변질되는 올림픽 정신에 일조하고 있다 할 수 있습니다. 클럽체육이 아닌 엘리트체육을 표방하는 우리나라는 올림픽에 출전을 해 오로지 1등을 해야만 한다는 강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야만 평생 운동만 해온 사람으로서 자신의 삶이 바뀌고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운동선수 출신으로 남은 인생을 보장받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말입니다.



   올림픽은 앞에서도 언급했듯 창시자 쿠베르탱이 순수아마추어 스포츠로서 그 목적이 승리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참가하는 데 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올림픽에 대한 인식은 그러한 정신과는 달리 오직 금메달을 따야 하는 행위라는 것에 함몰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금메달 획득자와 비획득자에 대한 국가의 사후 대우와 스포츠계 그리고 방송계의 행태를 보면 명확히 드러납니다. 포상금과 연금은 물론 사회적 명성과 남자 선수의 경우 병역면제까지 그 주어지는 혜택이 실로 엄청난 차이를 보이는 것이니까요.



   그렇다 보니 우리나라 선수들은 금메달을 따지 못한 채 은메달이나 동메달을 받고 시상대에 오르면 외국 선수들과는 달리 얼굴에서 기쁨의 표정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물론 올림픽에서 금메달은 메달 이상의 가치가 있음은 저도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운동선수로서 자신의 피땀 흘린 노력과 삶을 인증받는 최고의 순간이기 때문일 것이니까요. 하지만 포상금과 병역면제와 같은 경제적 보상과 여러 혜택을 바라는 것이 목적이 되어버리면 그 순간 아마추어 스포츠로서의 이념인, 참가하는데 의의가 있다는 올림픽 정신의 순수성은 사라져 버리는 것입니다. 운동선수들에게만 그런 혜택을 주는 것 또한 국민적 형평성에 맞다 할 수도 없는 것이고요. 그리고 진정 나라를 위한다는 마음이라면 그런 보상이 없어도 아무런 문제가 될 게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올람픽과 또 외국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우리나라 엘리트 체육의 산실인 태릉선수촌을 이제는 폐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올림픽의 정신은 변질되어 버린 지 오래고 외국처럼 클럽 체육으로 자신의 즐거움과 만족을 위해 올림픽에 출전해야지 언제까지 메달 획득만을 위해 선수들을 군대처럼 선수촌에 가둬 집체 훈련을 시키면서 올림픽을 준비해야 한단 말입니까. 예전에야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면 대외적으로 국가의 위상을 알리는 기회였다고 하지만 이제는 시대가 바뀌지 않았느냐 이 말입니다.



   선진국의 올림픽 출전 선수들 직업을 살펴보면 참으로 다양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의사가 있는가 하면 변호사도 있고 옥수수를 재배하는 농부는 물론 돼지 농장 일꾼까지. 그들은 클럽 스포츠를 즐기며 자신의 즐거움과 명예를 위해 올림픽에 출전합니다. 일부 사람들은 우리나라가 그렇게 하면 누가 올림픽에 나가겠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해도 외국처럼 자신의 만족을 위해 참가하려는 사람은 다 있게 마련입니다. 마라톤이나 철인 3종경기 또는 사막 극한 마라톤 같은 것을 한 번 보십시오. 평범한 사람 같으면 저 고통스럽고 돈도 안 되는 일을 왜 할까 싶지만 그 말도 안 될 것 같은 일에 참가비까지 내며 출전하는 사람들이 해마다 늘어나고 있지 않은가 이 말입니다.



  그리고 설령 출전 할 사람이 없으면 또 어떻습니까. 올림픽에 출전하는 선수가 없다고 해서 나라가 망하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래서 저는 일부는 이런 생각을 하는 저를 극단적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최초 올림픽 정신을 생각하며, 그 정신을 다시 찾지 않고 지금처럼 오로지 국력과 경제력의 과시 그리고 우승만이 목표라면 근래의 올림픽에 대한 폐지와 우리나라의 선수촌이라고 하는 엘리트체육 제도를 이제는 다시 한번 되짚어 봐야 할 때가 아닌가라고 생각되어 이렇게 이번 글을 쓰보게 되었습니다.


2021. 4.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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