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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ro Aug 29. 2023

건조체 글쟁이의 삐딱한 세상-꼴통

85.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젊은 시절의 고생은 장래 발전에 큰 밑거름이 되니 아프게만 여기지 말고 좋게 생각하라는 뜻에서 그런 것입니다.


  그렇다면 정말로 선인들의 말처럼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할 필요가 있을까요. 저는 혹여라도 누군가 저에게 이와 같이 물어온다면 “절대 아니요”라고 강하게 말해 줄 것입니다. 왜냐하면 제가 직접 경험해 본 결과 그게 결코 인생에 큰 도움이 안 되었다고 생각하니 말입니다.


  저는 궁벽한 시골, 지지리도 가난한 소작농의 자식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렇다 보니 아주 소싯적부터 농사일과 같은 노동을 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 노동의 대가는 늘 또 다른 가난이었습니다. (누군가는 가난해도 마음만 행복하면 되지 않느냐고 말들 하던데 가난해보니 결코 마음만 행복해지는 일은 없더군요.)


  딱히 별다른 기술과 경제적 기반이 없던 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도 곧장 공장으로 가 농사라는 노동과는 다른 또 다른 노동을 전전했습니다. 그리고 이런저런 사연으로 특전단에 입대해 고생하며 죽을 고비를 몇 번 넘기기도 했고 말입니다. 그때까지도 저는 제 처지를 긍정적으로 보며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라는 이 말을 인생의 철학으로 생각하며 살았었습니다. 그리고 그 말에 충실하고자 불평 없이, 아니 적극적으로 즐기며 힘든 노동도 기꺼이 받아들였었고 말입니다. 분명 이 고생이 훗날 나의 인생 밑거름이 될 것이라는 것을 믿으면서 말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저의 밑바닥 경험치로 볼 때, 인생을 쫒고 진리를 탐구하고자 자신의 정신과 육신을 험한 가시밭에 던져 스스로의 몸에 채찍을 가하는 구도자가 아니라면, 평범한 사람으로서 그저 현실을 그냥저냥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면 굳이 사서 고생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가난하게 살면서 자신의 가족들 조차 제대로 건사하지 못하면서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라는 어른들의 외침은 그저 성공하지 못한 자가 자신의 삶에 대한 실패를 가리기 위한 기만일 뿐입니다. 가족들을 충분히 건사할 수 있는 경제력이 풍부한 사람이 그런 말을 하면서 젊은 자식을 훈육하는 것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자식에게 그렇게 말하는 것은 질적으로 다릅니다. 전자는 정당성을 얻을 수 있지만 후자는 결코 정당성을 얻기 힘듭니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라는 말은 젊어서 고생한 사람이 훗날 그것을 바탕으로 좀 더 나은 삶을 사는 것이 확정되었을 때 성립 될 수 있는 말입니다. 젊어서 고생을 했는데 늙어서도 별다른 변화 없이 계속 고생하고 있다라면 그 말은 성립될 수 없는 것이지요.


  저는 어릴 때부터 쭉 고생해 왔고 지금도 그 삶이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크게 달라진 건 없습니다. 제가 젊어서 고생하며 얻은 것은 가버린 청춘과 육체의 병 그리고 정신적 외상이 전부입니다. 그런데 그러함 들은 누가 책임져 줍니까. 책임져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라고 그렇게 외치던 사람들이 책임져 줄 것입니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결론을 말하자면, 젊어서 고생은 굳이 사서 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남들은 잘 먹고 잘 살며 안락한 삶을 즐기는데 뭣 때문에 짧기만 한 인생 고생을 하며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까. 한평생 편하게 살 수 있으면 그렇게 살다 가야지요. 왜냐하면, 제가 지금 젊어 겪고 있는 고생이 훗날 그에 상응하는 보답을 안겨 준다는 보장이 있다면 모를까 그럴 가능성은 극히 희박할뿐더러 또 그 고생으로 입은 상처뿐인 삶을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말입니다.


  다시 말해, 여건이 어쩔 수 없어 다른 선택지가 없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굳이 젊어서 고생은 사서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게 지금 까지 고생하며 살아와 본 제가 해 줄 수 있는 유일 한 말입니다.


2022. 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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