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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ro Sep 17. 2023

건조체 글쟁이의 삐딱한 세상-꼴통

57. 고드름과 고양이

집 근처에 볼일을 보러 나갔습니다. 가까운 소방서 청사 외벽에 현수막 한 장이 걸려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운전 중이라 무슨 내용인지 제대로 볼 수는 없었지만 “근조”라는 단어와 “애도를 빕니다”라는 글자 만은 또렸했습니다. 흰색 바탕에 검은 글자로 새겨진 현수막인걸 보니 분명 어느 소방관 한 명이 또 순직한 것임은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사회 곳곳에는 늘 위험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 위험은 언제 누구에게 닥칠지 모를 불분명한 위험들입니다. 세상이 복잡해지고 기후변화를 비롯 건물, 자동차 같은 구조물들이 늘어나며 우리 주변은 언제나 위험으로 가득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시민들의 불특정 한 위험 속에 항상 소방관이 존재합니다. 자신들의 생명을 담보로 불을 끄고 인명을 구해주는, 우리의 안전을 지켜주기 위해 노력하는 소방관 말입니다.



저도 취업 준비생시절 한때 119 구조대 시험을 치른 적이 있습니다. 물론 능력이 부족해 최종 관문에서 고배를 마셔야 했지만 어쨌든 당시 저는 공적인 자격으로 사람의 생명을 구해 줄 수 있다는 매력과 공무원이라는 신분의 안정성 그리고 구조 직렬 같은 경우 특수부대 출신자에 한 한 제한경쟁이다 보니 경쟁률에 유리한 점도 있어 도전을 했었던 것입니다.



아무튼 앞에서 언급했듯 소방관은 공무원입니다. 그렇다 보니 업무를 수행하다 사망을 하면 순직으로 인정됩니다. 순직은 계급이 있는 직업의 경우 특진을 하거나 국가 유공자로 지정되고 국립 현충원에 안장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이들이 불행하게 업무 수행 중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면 유족 측과 해당기관 간에 순직인정과 유공자 지정 그리고 현충원 안장이라는 사안을 두고 잦은 마찰이 일어나는 것이지요.



  소방관을 비롯 공적인 업무수행 중 안타깝게 사망한 이들에 대한 유족의 순직 및 국가유공자 인정 요구는 단순히 특진이나 현충원 안장의 자격을 획득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들이 바라는 순직인정은 국가유공자 자격과 현충원 안장 그 이상의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아들, 딸, 또는 남편이자 아내 그리고 엄마이자 아버지인 자신의 가족에 대한 공적인 죽음의 정당성과 순수성. 바로 그것을 인정해 달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공무수행을 하며 유명을 달리한 자신의 피부치에 대한 순직 인정을 그처럼 애타게 요구하는 것이고요.



  그러나 안타깝게도 공무 중 사망이면 당연히 순직처리 되는 것 아니냐는 우리의 생각과는 달리 유족들이 바라는 이 순직요구는 생각처럼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분명 시민들을 위해 희생되었다고 생각되는 사건에서도 각 기관의 유권해석에 따라 순직 인정이 불가능한 일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2011년에 일어난 속초 고양이 구조 사건과 광주 고드름 제거 사건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사건을 되짚어보면 이렇습니다. 속초 소방서 소속의 소방관 A대원은 건물 난간에 고양이가 갇혀있다는 신고를 접수하고 즉시 출동. 로프로 건물에 매달려 고양이 구조 직전을 펼치다 옥상 처마에 설치되어 있던 날카로운 차양에 로프가 절단되며 추락 사망했습니다. 하지만 법원은, 소방공무원은 국립묘지법 당연 안장 대상인 “ 화재진압, 인명구조 및 구급 업무 수행 중 순직한 소방공무원”에 해당된다고 볼 수 없다는 판결을 내리게 됩니다. 이에 유족들은 국가 보훈처를 상대로 국립현충원 안장 신청을 냈지만 보훈처는 인명구조가 아닌 소방지원 활동에 불과할 뿐이라며 신청을 거절하고 맙니다.



또한 같은 해 광주광역시에서 사다리차를 이용해 고드름을 제거하던 소방공무원이 와이어가 끊어지며 추락해 사망하는 사고가 벌어졌는데 이 역시도 순직 인정을 두고 적지 않은 논란이 있었습니다.



이를 볼 때 소방공무원의 순직인정은 사망 당시의 활동이 직접적인 인명구조 활동이었냐 아니면 단순 소방활동 지원일뿐이었냐로 구분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제가 여기서 답답한 것은 직접 인명구조 활동이 아닌 단순소방활동이었냐가 무엇이 중요한가라는 것입니다.



지금은 법이 정비되어 문제가 없지만 당시에는 단순소방활동도 신고가 들어오면 의무적으로 무조건 출동을 해서 민원을 해결해 주어야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 위에서 언급한 고양이 구조나 고드름 제거 요청 같은 민원 신고가 접수되었을 때 소방관들이 거부할 수 있는 권리가 있었다면 모를까 어떤 신고든 의무적으로 출동해 사건을 해결해 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직접인명구조 활동이 아니라며 순직인정을 해 줄 수 없다는 것은 말 그대로 어처구니없는 행정이라고 밖에는 달리 생각할 길이 없습니다. 이는 필요할 때는 단물을 다 빨아먹고 그렇지 않을 때는 나 몰라라 버려버리는 것이니 어찌 이런 일을 정상적이라고 납득할 수 있겠습니까.



2020년 4월 1일부로 지방직이었던 소방공무원의 신분이 국가직으로 전면 전환되었습니다. 소방공무원은 지자체 소속으로 그동안 각 지자체의 예산에 의해 운영되다 보니 장비나 근무환경이 다른 국가직 공무원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번 소방관들의 국가직 전환이 단순히 장비와 복지만 개선되는, 무늬만 바뀌는 일에 그치지 않고 고양이와 고드름제거 같은 사건처럼 안타깝게 사망하는 소방공무원들의 순직처리 같은 일에 있어서도 폭넓은 처우개선이 이루어지고 뒤따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2021. 5.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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