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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ro Sep 21. 2023

건조체 글쟁이의 삐딱한 세상-꼴통

25. 금기 2(맛)

요즘 방송계는 먹방이 대세입니다. 먹방은 말 그대로 음식 먹는 것을 방송으로 시청자들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한국 전쟁을 겪은 후 헐벗은 시대 경제개발이 한창이던 부모 세대들에게는 먹는 것이 생존의 문제였다면 생활이 윤택해지고 경제적 여유가 생긴 요즘의 사람들에게는 맛집에서 입맛에 맞는 맛있는 음식을 먹는 행위 그 자체가 중요해진 것입니다. 그렇다 보니 그런 사람들의 시대변화에 맞춰 지상파와 케이블은 물론 개인 미디어 방송까지 온통 먹는 방송 일색인 것입니다.


  세상이 넓은 만큼 인간이 먹는 음식은 다양합니다. 해외여행의 보편화는 지금까지 우리가 접할 수 없었던 타국의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기회를 주었습니다. 자국의 음식에 한정되었던 우리의 미각은 국경을 벗어난 여행과 함께 점차 세계화되었고 이제는 나라 곳곳 또한 외국 음식점이 생겨나며 단조롭고 폐쇄적이었던 음식의 경계가 가감 없이 허물어지게 된 것이죠.


  여행을 다녀 본 사람들은 잘 알겠지만 해외여행이나 국내 여행 중 제일 큰 걱정은 바로 먹는 것입니다. 새로운 음식을 맛본다는 설렘만큼 그 지역의 낯선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고생하는 일이 잦기 때문에 말입니다. 식당 메뉴판에 올려진 먹음직스러운 음식 사진을 보고 주문했다가 정작 나온 음식은 입맛에 맞지 않아 다 먹지 못한 채 그대로 남겨둔 경험들을 한 두 번 이상은 아마 다들 가지고 있지 않을까요.


  아무튼 다시 이야기를 먹방으로 돌려, 나는 tv에 방영되는 먹방 프로그램을 보면서 기이한 현상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음식을 먹는 출연자들이 맛이 없다고 이야기하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이게 가능한 일일까요. 어떻게 해외와 국내 각 지역의 독특한 풍미와 향을 가진 그 다양한 음식들이 하나같이 다 맛있을 수가 있단 말입니까. 아무리 소문난 맛집의 음식이라 해도 개인의 취향과 식성에 따라 맛이 없는 것도 있어야 되는 게 확률적으로 정상적이지 않겠습니까. 물론 먹방에 출연하는 모든 방송인들이 우연찮게 음식을 가리지 않는 거침없는 식성이었을 수도 있겠지만 그게 현실적으로 얼마만한 가능성이 있겠는가 말입니다.


  저는 오늘날, 맛없다는 말이 절대 나오지 않는 우리의 먹방 현실을 보며 일본인 출신 방송인 사유리 씨의 유명한 일화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녀는 먹방 프로그램을 촬영하며 그날의 음식이 맛이 없자, 왜 이렇게 맛이 없냐며, 이래서 장사가 되겠느냐고 카메라 앞에서 식당 주인한테 자기의 심정을 솔직하게 털어놓아 버렸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그녀는 즉시 프로그램에서 하차를 당하고 더는 그 방송에 출연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방송의 생명은, 드라마와 예능 같은 픽션과 희극이 아닌 다음에야 사실을 제대로 알리는 데 존재의 이유가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런데 맛없는 음식을, 맛이 없다는 사실 그대로를 제대로 알리지 않고 정작 사실대로 말한 사람이 불이익을 받게 된다면 그것이 과연 신뢰를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방송으로서 시청자들에게 옳은 행위라 할 수 있을 까요.


   저는 가족들과 함께 연예인들이 방송에 출연해 맛집이라고 소개했던 음식점 몇 곳을 찾아가 본 적이 있습니다. 그들이 격찬했던 음식 중에는 제 입 맛에 맞는 곳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곳도 있었습니다. 사실 솔직히 말하면(이건 순전히 저의 기준입니다) 방송을 보며 가졌던 기대만큼 못 따라 준 곳이 더 많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저는 연예인 중 김구라를 제일 좋아합니다. 제가 그를 좋아하는 것은, 그는 인정에 얽매이지 않고 어떤 가식도 없이 자기감정에 솔직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음식이 되었던 무엇이 되었던 자기 취향에 맞지 않고 본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가감 없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지 못합니다. 앞에서도 이야기한 음식 방송에서의 연예인들처럼 행여라도 식당에서 맛없는 음식을 먹어도 인정상 주인 앞에서 맛없었다는 말을 하지 못합니다. 우리들 역시 비슷합니다. 맛없는 음식을 먹고 그 자리에서는 말 못 하고 그 식당을 벗어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안면을 바꿔 맛이 없었다며 불평의 뒷말을 주고받는 것입니다.


  이렇듯 우리나라 사람들은 면전에서 싫은 소리를 잘 못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인정상 자신의 감정과는 상관없이 타인의 감정을 배려해야 한다는 민족 특유의 독특한 정서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다 보니 원만한 인간관계를 위해서는 맛이 없어도 맛없다는 말을 못 하고 자신이 손해를 보더라도 속내와는 달리 두루뭉술하게 넘어가야 된다는 무언의 금기가 생겨버린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죠.


  하지만 이제는 시대가 변한 만큼  우리도 그 금기를 깨고 모든 걸 솔직하게 이야기해야 될 때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야만 소비자들이 잘 못된 정보에 손해 보는 일도 없고, 80%의 폐업률을 보이는 요식 업자들의 치열한 생존 경쟁에서 자신들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객관적 인식을 가질 수 있는 좋은 각성제가 되어 좀 더 발전된 성공의 길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말입니다.


2020. 12.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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