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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ero Sep 22. 2023

건조체 글쟁이의 삐딱한 세상-꼴통

90. 결벽증

일상의 모든 생활공간에 먼지 하나 있으면 안 되고 각자의 물건들은 항상 제자리에 바른 모습으로 정돈되어 있어야 한다는 생각. 위생과 청결에 지나치게 집착하며, 더러운 것과의 접촉으로 인한 감염, 질병에 대하여 과도한 불안과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결벽증 환자라고 이야기합니다.


  이런 성격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정돈 개념과 위생개념에 따라 일상의 무엇하나라도 틀어져 있으면 견디지를 못합니다. 항상 자기가 생각하는 기준에 철저히 맞아야 안심이 되고 기분이 편안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청결과 위생이라는 개인의 인체에 대한 과도한 자기 강박을 가진 사람 외에도 우리 주변에 이와 같은 결벽증 증상을 가진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단지 그 대상이 자동차라는 물건과 이혼이라는 법률행위로 전이되어 있다는 것뿐인 것이죠.


    우리나라 사람은 유난히 자동차라는 물건에 대한 결벽증이 심하고 이혼에 대해서도 만만찮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듯합니다. 차는 절대 수리한 흔적이 있어서는 안 되고 그나마 지금은 좀 달라졌다고는 하나 아직까지 남자건 여자건 이혼한 사람에 대해서는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는 실정이니 말입니다.


  도대체 우리나라 사람들의 이런 두 가지 사안에 대한 결벽증과도 같은 강박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차는 그냥 나의 이동을 좀 편하게 해주는 교통수단인 하나의 소모품일 뿐인데 왜 그렇게 늘 새 차와 같은 완벽한 모습을 유지해야는 가요. 그리고 또 사람이 비록 결혼은 했다. 하지만 살다가 서로 무엇이 맞지 않으면 이혼하는 것이 각자의 행복을 위해 좋은 일인데 왜 고통받아가며 억지로 같이 살아야 한다는 말인가요. 그런데 그런 이혼이 타인으로부터 비난받아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요.


    예전에, 탤런트 신구가 이혼을 신청한 부부에게 4주간의 조정기간을 줄 테니 다시 한번 이혼하려는 감정을 생각해 보라는 말로 유명했던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전 그 프로그램을 보면서 신구의 멘트가 도통 이해 되지 않았습니다. 이혼을 하겠다고 거기까지 온 부부가 신중하게 생각도 안 해보고 왔겠습니까. 그곳을 찾은 당사자들은 분명 오랜 시간 깊은 고민을 한 후 찾아온 사람들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그들에게 좀 더 생각해 보라니요. 제가 그 프로의 내용을 보면 저렇게 사느니 하루빨리 이혼하는 게 서로에게 득이 될 내용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왜 그렇게 한사코 이혼을 말리려 한단 말입니까.


  자동차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십 대 후반에 중고 자동차 매매 상사에서 일 년 정도 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중고차를 보러 온 사람들이 한사코 수리 흔적이 없는 무사고 차량만 찾는 것이었습니다. 중고차면 사고도 있을 수 있고 그런 이유로 수리 흔적도 있는 게 당연한 거 아니 겠습니까. 사고 차량을 무사고차 가격으로 구입한다면 분명 문제가 있겠지만 사고를 감안한 시세로 차를 구입한다면 정비와 수리가 다 끝나 운행에 아무 문제도 없는 사고 이력을 가진 차량이 문제가 될 게 무엇인가 말입니다. 아니면 새 차를 사야지요.


    우리의 이러함에는 차를 소모품이 아닌 부와 자기의 능력을 과시하는 재산으로, 그리고 어릴 때부터 줄곧 읽어온, 이몽룡을 위해서는 설사 목숨을 버릴지언정 변학도의 수청 드는 일은 있을 수 없다는 춘향이처럼 여자는 일부종사를 해야 된다는 전근대시대의 잔재가 아직도 우리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인생에서 쓰던 물건이 고장 나면 고쳐 쓰고 서로의 생각차이로 결혼 생활을 계속 유지하는 게 힘들다면 이혼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 행복하게 살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인생에서 제가 가진 물건이라는 것들이 영구불변하는 것도 아니고 이혼이 무슨 범죄도 아닌데 왜 그렇게 그런 것들에, 속된 말로 목을 매고 산다는 말입니까.


  우주여행이 현실이 되고 스마트폰 하나로 세상을 살아가는 시대가 열리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에 우리는 언제까지 옛날의 속박에 자신을 가두어 둬야 하는 것일까요. 이제 우리도 차는 사고 나서 수리되면 안 되고 이혼은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는 이런 강박에서 벗어나 좀 삶을 유연하게 대하고 생각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2022. 2.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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