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대국

군상(공원이야기)

by Zero

공원에 연못이 있어요. 그 주위로 일렬로 죽 앉을 수 있는 의가가 ㄱ자 모양으로 길게 만들어져 있고요. 한쪽 지역은 나무가 울창하게 자라있어 여름에는 시원한 그늘이 만들어지고 또 다른 쪽은 나무가 듬성해 겨울에 햇볕이 잘 들어요. 그랗다보니 이 지역은 특히 어르신들이 많이 머물러요. 거의 99.9퍼센트에 가까운 사람들이 다 노인반열에 들어계신 어른 들이예요. 그런데 이 어르신들이 바둑을 두며 무료한 시간을 보내시거든요. 바둑판과 장기판을 빌려주는 사람이 있어 오전 10시 쯤이 되면 한 두 명씩 바둑을 두기 시작해 11시가 좀 넘으면 그 긴 의자에 어르신들이 무슨 군무라도 하듯 쪼롬히 앉아 바둑을 둬요. 옆에서 보면 이세돌과 알파고 경기를 방불케 하는 진지함으로 대국을 펼치고 있죠. 그러다 옆에서 훈수라도 두면 욕설애 드잡이까지 하는 일도 벌어지고요. 그리고 더 우스운 건 여름과 겨울에 따라 그 위치가 바뀌어요. 여름에는 앞에서 말한 그늘이 드리워진 나무 밑 의자로 주르륵 앉아 있고 겨울이면 이쪽으로 나와 햇볕이 드는 의자로 주르륵 앉아 바둑을 둬요. 그 모습을 보면 참 웃겨요. 무슨 일이든 간에 나름대로 다 요령이 있구나 하는 생각에요. 아무튼 눈 오거나 비 오는 날을 제외한, 폭염과 한파에도 아랑곳 않고 어침부터 나와 저물녘까지 대국을 펼치는 어르신들을 보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 모습은 마치 중국에서 붓에 물을 묻혀 돌에 붓글씨 연습을 종일토록 하는 사람과 같아 그저 존경스럽다는 말 밖에 안 나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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