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담
아버지는 일 년 여의 투병생활을 한 후 돌아가셨다. 매주 병원을 오갔고 집과 병원을 오가는 시간은 두 시간 정도였다. 나는 좁은 차 안에 아버지와 긴 시간을 함께 하면서도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나의 침묵은 아버지가 평생을 가족에게 가한 주폭에 대한 반항이었다.
아버지의 주정은 집요했고 질겼다. 부모를 욕하고 아내를 욕하고 자식을 욕했다. 나는 아버지의 가족에 대한 적의가 어디서 시작됐는지 알 수 없었다. 왜 그가 가족에게 이처럼 큰 반감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 도무지 그 근원을 짐작할 수 없었다. 어린 마음에 어머니에게 물어보아도 몰랐고 형과 누나에게 물어보아도 알 수 없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친구들은 어느덧 아버지가 되었다. 요즘 그들과의 술자리에서는 아버지라는 화두가 주어지면 나는 늘 말을 감춘다. 자식에서 아버지로의 입장 변화한 그들은 행복해 보이지만 나는 그것이 행인지 불행인지 판단이 서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아마 내가 아버지와 제대로 된 부자의 관계를 가져 보지 못한 상처 때문일 것이다.
나는 어릴 적부터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절대 울지 않을 거라는 다짐을 수도 없이 했다. 그것이 나에게 가한 아버지의 폭력에 대한 복수였다.
아버지가 의식을 잃은 채 구급대원의 들것에 실려 나살때 마당에서는 참새 무리들이 날아올랐다. 설 전날이라 아버지를 받아주는 병원이 없었다. 사망진단읊 내릴 의사들이 명절 연휴로 다들 자리를 비워 아버지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한 시간 넘게 구급차에 실려 쉴 곳을 찾던 아버지는 구급대원의 노력으로 집 근처 호스피스 병동에 들어갔다. 구급대원은 설날은 넘기실 것 같다고 말했다. 나는 형에게 집에 가서 밥 먹고 이런 사실을 어머니와 여동생에게 알리라 했다. 그렇게 형이 집으로 가고 한 시간 여가 지났을 때 아버지는 의식 없는 상태에서 갑자기 기침을 해대기 시작했다. 간호사들이 급히 왔고 옆 배드와의 커튼을 치면서 여러 장치들을 아버지 몸에 붙였다. 그러면서 나에게 아버지가 가시는 길 같다고 했다. 그리고 당직의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버지가 몸이 들썩일 정도의 큰기침을 한 번토하고 잠잠해지자 의사가 들어왔다. 의사는 아버지의 동공을 플래시로 살피더니 이렇게 오분이 지나면 생물적으로 돌아가시는 것이니 가족에게 연락하라고 했다. 나는 형에게 전화를 걸었다. 가족이 오는 사이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의사가 내게 말했다. 그리고 가까이 다가와 아버지의 이마에 손을 얹어주라고 했다. 나는 의사가 시키는 대로 했다. 아버지의 이마에는 아직 체온이 남아있었다. 가족들이 도착했고 아버지의 죽음 앞에 다들 울음을 터뜨렸다. 나는 울지 않겠다고 그렇게 다짐했지만 정작 아버지가 숨을 거두고 몇 분이 지나자 눈에서 눈물이 한 방울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그후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아버지는 그렇게 자신을 제일 증오한 자식앞에서 세상을 뜨셨다. 나는 장례를 치르는 삼일 내내 울고 또 울었다. 그 울음의 의미를 나는 모른다.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연민인지,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남기지 않고 떠난 그에 대한 울분인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
아버지는 가난한 세월 부모 형제에게 사랑받지 못하고 힘들게 살아왔다. 나는 그러한 삶을 산 아버지에게 인간으로서의 연민은 가지나 ‘아버지’라는 역할의 존재에 대해선 아직도 용서를 하지 못한다. 주위 사람들은 그래도 아버지인데 이제 그만 마음을 풀라고 한다. 하지만 응어리진 마음을 그렇게 허물기에 둘 간의 마음에 얽힌 골은 너무나 깊고도 길다.
천진한 자식을 챙기는 젊은 아빠의 모습은 아름답다. 그들의 모습에서는 어떠한 장애물도 보이지 않는다. 잠깐이라도 소통이 되지 않을라치면 본능적으로 한쪽에서 그 벽을 허물고 그런 부자간의 모습에 주변인들은 즐거움을 느낀다. 그들의 앞날이 어떻게 변화할지 누구도 모르지만 아직까지는 자식을 응시하는 아빠의 눈빛은 곱고도 깊다.
작가노트-아버지는 평생을 주정으로 가족들을 힘들게 했습니다. 난 그러한 아버지를 늘 거부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투병 중 병원을 오갈 때나 입원하고 며칠을 함께 있을 때도 말 한마디 하지 않았습니다. 그 허물지 못한 벽을 누구의 잘못으로 탓해본들 지금에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냥 그때는 그랬고 지금은 또 이렇습니다. 그것이 언제가 허물 질 것인지 아닐 것인지는 아직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 벽이 존재했고 지금도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만 잘 알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