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조체 글쟁이의 삐딱한 세상-꼴통

10. 정당방위

by Zero

2014년이었습니다. 강원도 원주의 한 가정집입니다. 금품을 훔치려 집에 침입한 도둑이 뇌사상태에 빠지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재판부는 피고인인 집주인 아들 최 모 씨를 상해치사 혐의로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3년의 형을 확정했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당시 우리나라의 정당방위 기준에 대한 공론이 거세지며 시민들 사이에 여러 갑론을박이 벌어졌었습니다.


우리나라 형법에는 정당방위 요건이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첫째, 현재의 부당한 침해가 있을 것. 둘째,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을 방위하기 위하여 상당한 이유가 있을 것. 셋째, 방위행위는 상당한 이유가 있을 것. 이 세 가지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법 전문가가 아닌 우리 일반인들이 이해하기에는 그 문장들이 상당히 모호하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이 모호함을 좀 더 알기 쉽게 구체화시킨 경찰청의 기준을 한 번 살펴봐야겠습니다. 경찰청 기준은 총 여덟 가지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첫째. 방어행위여야 한다. 둘째. 상대에게 도발하지 말아야 한다. 셋째. 먼저 폭력을 행사하면 안 된다. 넷째. 가해자보다 더 심한 폭력은 안 된다. 다섯째. 흉기나 위험한 물건을 사용하면 안 된다. 여섯째. 상대가 때리는 것을 그친 뒤의 폭력은 안된다. 일곱째, 상대의 피해 정도가 본인보다 심하면 안 된다. 그리고 마지막 여덟 번째, 전치 3주 이상의 상해를 입히면 안 된다. 이상과 같이 경찰청은 2011년 정당방위 인정요건을 형법에 적시된 것보다 이렇게 좀 더 구체화시켜 놓았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세분화된 경찰청의 정당방위 요건을 보면 한 가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저 여덟 가지의 기준을 맞추려면 과연 범죄를 실행하고 있는 사람을 상대로 위기에 처한 선량한 시민이 정당방위를 인정받으며 자신을 지킬 수 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범죄자가 흉기로 저를 위협하고 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그러면 우선 저는 경찰청의 정당방위 기준에 의해 범죄자가 저에게 흉기로 먼저 공격을 하기 전에는 어떤 행동도 해서는 안 됩니다. 상대에게 도발을 하면 안 되니 제가 먼저 공격을 가해 선제적으로 제압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때 문제는, 범죄자가 저를 공격했을 시 다른 조건을 다 충족시켜 제압할 수 있다면 문제가 없지만 만약 범죄자의 첫 번째 공격을 제가 피하지 못하고 급소를 찔려 사망하면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그리고 앞의 원주에서 일어난 사례처럼, 도둑이 집에 침입해 범죄를 실행하고 있다면 그 도둑에게 제가 친절하게 “도둑님. 범죄를 실행하고 계시는군요. 제가 먼저 당신을 제압하면 정당방위가 성립되지 않을뿐더러 제가 되려 폭행범이 될 수 있으니 지금 경찰에 신고하겠습니다. 그러니 도둑님께서는 경찰이 올 때까지 얌전하게 조금 기다려 주세요”라고 이성적인 말로써 범죄를 중지시키면 도둑이 군소리 없이 경찰에 신고하도록 배려해 주고 경찰이 올 때까지 어린양처럼 순순히 따라 주기라도 한다는 말입니까. 그리고 혹여 상대와 몸싸움이라도 벌이게 되면 흉기를 든 범죄자에게 무기를 들면 안되고 상대의 상해 정도가 전치 3주 이상인지 또는 나보다 더 많이 맞고 있는 건 아닌지를 그 경황 중에 다 파악하면서 방어를 해야 된다는 것인데 이게 현실적으로 말이 되는 소리인가요.


저는 우리나라 사법부가, 법을 어기고 범죄를 실행하고 있는 자가, “이 사람이 비록 범죄를 저지르고는 있지만 그래도 사람에게 해를 가하지는 않을 것이다”라는 믿음이 도대체 어디에서 나오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법을 어기고 범죄를 실행하는 사람들에게 그러한 믿음이 생길 수가 있다는 말입니까. 정말 법치국가로서 시민들에게 법을 지키며 살아가라고 주문한다면 “ 범죄를 당하고 있는 “선량한 사람”이 최악의 경우 이 “범죄 실행자”에 의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라는 관점으로 정당방위 요건에 접근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억울하게 피해를 입고 인권 유린을 당하는 부작용을 막고자 하는 사법부의 취지는 충분히 이해하겠습니다. 하지만 그게 왜 하필 범죄를 당하고 있는 선량한 사람이 아닌 범죄를 행하는 자의 유리한 조건으로 작용하는 것입니까. 제 눈에만 그렇게 보이는 것입니까.


물론 앞에서 살펴본 원주의 도둑 뇌사 사건 같은 경우 주인집 아들이 도둑을 제압하고 난 후 과한 행동이 없지 않았던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내가 살고 있는 공간에 낯선 범죄자가 침입해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사실을 본다면 누구나 냉철한 이성을 유지하기는 힘들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그런 점을 감안해 미국의 비슷한 사건 하나를 살펴보는 게 좋겠습니다


-미국의 젊은 여성이 새벽에 911로 전화를 걸었다. 어떤 남자가 문 앞에 와 있다는 갓이었다. 그녀는 자신은 "아이와 단 둘이 있다"면서 경찰의 출동을 요청했다. 하지만 경찰이 바로 나타나지 않자 그 여성은 권총을 꺼낸 후 다시 911에 전화를 걸었다. 만약 남성이 문을 부수고 침입하면 총으로 쏴도 되는지를 물었다. 911 파견요원은 “제가 그렇게 하라고 허락할 순 없지만, 당신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어떤 것이든 해야 하겠죠”라는 말로 답변을 대신했다. 그 후, 이 여성은 실제 문을 부수고 들어온 남성 중 1명을 총으로 쏴 현장에서 사살했다. 함께 침입한 남성 1명은 도망 중 붙잡혀 검찰에 의해 "살아남은 남성이 함께 가택침입을 해서 친구가 사살당하게 된 책임이 있다"는 판단으로 1급 살인 혐의로 기소되었다. 이와 함께 총을 쏜 해당 여성에겐 정당방위가 인정되었다.-출처-네이버 위키백과-


미국의 이 사건을 우리나라 실정에 맞추어보면, 여자는 정당방위는 커녕, 도망간 남자는 주거침입 미수로 훈방이나 즉결 심판으로 가벼운 처벌을 받을 것이고 여자는 살인죄로 분명 기소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실형을 살았을 것이구요.


미국의 이 판결은 결과보다 원인에 무게를 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애초에 범죄자들이 범행을 실행하려 주택에 침입을 하지 않았다면 법을 준수하며 살아가는 선량한 집주인 여자가 총을 쏴서 살인을 저지르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판단 말입니다.


미국의 이와 같은 사례를 볼 때 우리나라의 정당방위 기준이 얼마나 가해자 입장에 서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일들을 종합해 이제는 우리도 지극히 가해자 위주였던 정당방위의 기준을 피해자 위주로 다시 한번 깊이 있게 짚고 넘어가야 할 때가 아닌가라고 생각해 봅니다.


2020. 11.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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