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수염
저는 요즘 큰맘 먹고 하나 하는 게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수염을 기르는 것입니다. 외국이나 국내 영화 속 유명 배우들처럼 멋스럽게 수염을 한 번 길러보고 싶어서 말입니다. 그런데 이 일이 생각처럼 쉽지가 않습니다. 회사와 주변인들의 시선이 영 곱지 않기 때문에 말입니다.
예로부터 우리나라는 “신체발부수지부모”라 했습니다. 이 말은 “효경”에 실린 공자의 가르침으로 “신체와 터럭과 살갗은 부모에게 받은 것”이라는 뜻입니다. 즉 부모에게 물려받은 몸이 효의 시작이니 소중히 여기라는 말인 것입니다.
우리 선조들은 이러한 유교정신을 바탕으로 머리카락과 수염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1895년 단발령이 내려지고 일본에 의해 왕이었던 고종이 먼저 머리를 깎으면서 백성들의 머리 또한 강제로 깎게 하여 우리가 그토록 오랜 시간 간직해 온 신체발부수지부모의 정신은 사실상 종말을 맞게 됩니다.
구한말 단발령이 선포되자 많은 사대부와 유학자들이 “손발을 자를지언정 두발은 자를 수 없다”는 의지를 보이며 단발령 시행에 강력 반발 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저항은 결국 시대의 변화를 이기지 못하고 21세기가 된 오늘 우리는 자유롭게 머리와 수염을 매만지며 자신의 미를 추구하는 세상을 살게 된 것입니다.
아무튼 제가 이번 글에 역사책에서나 볼 수 있는 지난날의 이 “단발령”까지 꺼낸 이유는 수염에 대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이해를 한 번 이야기해 볼까 해서입니다.
인간에게는 머리에 머리카락이 나고 얼굴에 수염이라는 것이 납니다. 특히 남자에게 수염은 두 말할 필요도 없고요. 이는 자연계의 지극히 당연한 현상인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인간의 머리에 머리카락이 나는 것과 남자의 얼굴에 수염이 나는 것은 개와 고양이 말등 짐승들의 몸에 털이 돋아 나는 것처럼 인간이라는 종의 생물에 있어 당연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단발령이 시행되기 전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고 수염 또한 길게 휘날리며 이 이치를 어기지 않았던 것이고요.
그런데 지금의 우리는 어떻습니까. 기성세대인 저희는 아직도 프리랜서나 예술계에 종사하는 일부 사람을 제외하고는 할아버지가 아닌 이상 누군가 수염을 기르면 이상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면서 일반 회사는 물론 공무원이나 군인 그리고 경찰들이 수염을 기르면 말도 안 되는 짓이라며 곱지 않은 시선을 던지고 말입니다.
하지만 외국인들의 수염에 대한 이해는 우리와 상당히 다릅니다. 그들은 수염을 인체의 당연한 현상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입니다. 미국만 하더라도 회사원은 물론 경찰, 소방관, 군인, 심지어 뉴스 아나운서까지 본인 의사에 따라 자유롭게 수염을 기릅니다. 유럽 또한 마찬가지구요.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업무를 보고 있는 각 나라의 대표인 외국 주한대사들까지도 수염을 기른 사람들이 부지기수고 말입니다. 그들은 남자에게 수염이 자라는 것은 자연계의 당연한 현상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수염에 있어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관대할 수 있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그에 비해 우리는 어떤지 한 번 생각해 볼까요. 우리나라 사람들의 수염에 대한 인식 말입니다.
하나의 예로 남자라는 인간의 얼굴에 수염이 자라는 것은 앞에서도 말했듯 우리 머리에 머리카락이 자라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런 머리카락이 머리에서 자란다고해서 위생이나 용모 단정을 이유로 스님들처럼 모두 민머리로 다니라고 한다면 어떻겠습니까. 물론 그렇게 한다고 그렇게 할 사람도 없겠지만 혹여 누군가 진짜로 그와 같은 요구를 한다면 우리는 정말 당황스럽지 않겠습니까. 이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는 것이지요.
다시 말해 이처럼 우리 사회에서 남자들에게 수염을 깎고 다니라고 강제 아닌 강제를 하는 것은 자연적으로 나는 머리카락을 스님들처럼 모두 밀고 그냥 민머리로 다니라는 황당한 말과 같은 뜻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제가 오늘 이와 같이 수염을 이야기하기 위해 그 옛날 단발령까지 끄집어낸 이유는 고리타분하게 옛 것을 지키고 따르자는 수구의 개념이 아닙니다. 머리카락과 수염을 인간에게 주어진 자연의 이치로 받아들였던 조상들의 사고를 한 번 짚어 보고 싶어서였습니다. 이제 우리도 외국인들처럼 수염에 좀 관대해 지자하고 말입니다.
비록 요즘 수염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많이 달라지고 있다고는 하나 아직도 우리는 위생과 용모를 이유로 남자라는 생물의 인체에 돋아 오르는 수염이라는 자연적 현상을 부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틀 속에 갇혀 스스로를 너무 옥죄고 있는 것이 현실이고 말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세상이 어느 정도 바뀌었으니 우리도 회사에서건 어디에서건 남자들의 이 수염을 기르는 것에 대한 인식 변화를 좀 가져보는 게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2020. 12.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