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조체 글쟁이의 삐딱한 세상-꼴통

35. 잔디를 밟지 마세요

by Zero

“잔디보호, 들어가지 마시오” 기성세대라면 누구나 잔디밭 앞에 설치되어있던 이 팻말을 한 두 번 이상은 보았을 것입니다. 잔디를 보호해야 된다는 명목으로 사람들의 출입을 금지시키던 시절. 우리는 지금도 잔디가 있는 곳이라면 그 앞에서는 본능적으로 들어가야 될지 말아야 될지를 갈등하며 유혹과 욕망 속에서 끊임없는 자신과의 싸움을 벌이고 있습니다.



황량한 흙바닥에서 뒹굴어야 했던 기성세대인 우리들의 가난했던 유년. 우리는 보잘것없던 그 가련한 시절 파릇파릇한 잔디가 깔린 탐스러운 운동장을 보며 얼마나 그곳에서 뛰어놀고 싶어 안달했던가요.



하지만 세상은 꼬맹이였던 제가 알 수 있는 그런 단순한 곳이 아니었고, 우리의 몸과 마음은 우리가 알 수 없는 어른들의 경제적 논리 앞에 늘 주저앉으며 들어가 볼 수 없는 잔디 앞에서 언제나 허물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세월은 흘렀습니다. 그 시간들 속에 저도 제법 머리가 굵어졌습니다. 저는 자라나는 신체에 커져가는 의식만큼 잔디가 있는 곳이라면 아직도 종종 보이는 저 팻말들에 한 가지 의문이 일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왜 잔디밭에 들어가서는 안 되느냐 하는 것. 바로 그것입니다.



일반 시민들이 이용하지도 못할 거라면 무엇 때문에 잔디를 심고 가꾸며 관리를 하고 있는 것일까요. 여기에 대한 의문의 답은 언제나 “돈”이었습니다. 잔디 값이 비싸 잔디가 훼손되면 유지 관리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는 경제적 이유 말입니다.



하지만 저는 여러 사람들이 내세우는 이 돈에 대한 논리를 들을 때면 잔디에 대한 의문은 더욱 커집니다. 그것은, 이처럼 돈이란 경제적 이유로 잔디를 사용하지 못하게 할 것이라면 애당초 무엇 때문에 잔디를 심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돈은 돈대로 들고 이용하지도 못할 이 황당한 일을 말입니다.



그렇다면 저는, 제가 잔디를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이일을 왜 의아해 하는지 여러분들의 이해 편의를 위해 하나의 가정법을 들어 설명해 보겠습니다.



우선 빈 공터가 있다고 한 번 가정해 봅시다. 그럼 그곳에 잔디를 심으면 우리는 그 즉시 그 공간을 사용할 수 없게 됩니다. 잔디를 심지 않았다면 하다 못해 아이들이 공이라도 차고 뛰어놀 수 있는 공간이 잔디가 심겨 짐으로 그것이 불가능해져 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잔디밭 맞은편에 볼일이라도 있을라 치면 둘러가지 않고 가로질러 시간도 줄이고 좀 덜 힘들게 갈 수도 있는데 잔디로 인해 그것 조차고 어려워지고 애써 둘러가야 하는 번거로움이 생겨 버리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것만이 아닙니다. 유지 관리에 돈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잔디밭을 사용할 수 없게 했습니다. 그런데 처음 그 잔디밭을 조성하기 위한 비용 또한 만만치 않게 들었다는 것입니다. 우선 부지를 매입하고 토목 공사에 따른 장비 대여와 인부들의 인건비는 물론 그 땅에 심을 잔디 구입비, 그리고 잔디밭을 사용할 수 없어 생기는 기회비용의 손실에다 이후, 최초의 이유였던 유지관리의 비싼 비용까지. 말 그대로 돈은 돈대로 다 들었는데 다시 돈 때문에 이용조차 하지 못하게 한다니 이것이 도대체 무슨 말도 안 되는 상황이란 말인가요. 그저 바라만 보게 하는 관상용의 목적이었다면 차리를 예쁜 꽃을 심어 놓던지요. 그게 더 낫고 유익하지 않겠습니까.



이처럼 앞에 열거한 일들을 볼 때 딱히 득은 없고 실만 생기는 이와 같은 일을 벌여놓고 정작 잔디 값이 비싸 유지관리 비용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그 공간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논리를 저는 도무지 납득 할 수 없습니다.



비싼 비용을 들여 잔디밭을 잘 가꾸어 놓고도 정작 유지 관리 비용 때문에 시민들은 사용하지 못하는 잔디밭. 그저 관상용 꽃을 바라보듯 감상만 하고 있어야 하는 우리의 잔디밭. 저는 잔디밭을 조성한 사람들이 최초 무슨 목적으로 그 일을 벌였는지는 모르겠지만 특정 공간에 잔디를 심어 놓음으로 해서 얻게 되는 득보다는 실이 확실히 많은 상황인데도 이 상황을 꿋꿋하게 유지하는 그들 관리자의 조치에 그저 할 말이 없다고 밖에는 달리 말할 길이 없습니다.



시민들이 잔디밭을 이용해 잔디가 훼손이 되고 그에 따라 유지보수 비용이 발생한다면 그것은 당연히 예산을 배정해 보수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해마다 수선이 필요한 인도의 보도블록을 정기적으로 교체하는 일과 같이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하는 일인 것이란 말입니다.



시민들이 내는 세금을 시민들이 사용하는 잔디밭 수선 비용으로 들어가는 게 무슨 잘못이란 밀입니까. 시민들이 내는 세금이 중요하다면서 불필요해 보이는 일들에는 예산을 잘도 집행해 사용하면서 정작 시민들이 당당히 누려야 하는 잔디밭은 잔디 값과 유지 관리 비용이 비싸다는 이유로 그 공간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이 말도 안 되는 상황, 저는 이제 더는 잔디밭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리고 이제는 누구나 떳떳하게 잔디밭을 이용하고 그곳에 들어갈 때 더 이상 기성세대들처럼 죄를 짓는 것 같은 죄책감에 시달리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 또한 말입니다.


2021. 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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