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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심지 May 06. 2021

뉴질랜드 입국심사 주의사항은?
과한 걱정!

 5월 28일, 한국에서 비행기를 탑승해 중국을 경유한 비행기는 태평양을 건너 29일, 뉴질랜드에 도착했다. 하루를 꼬박 비행기에 있으면서도 나의 시계는 거꾸로 돌아가고 있었다. 이제 공식적으로도, 내 마음속에서도 나는 29살, 이십 대가 되었다. 물론 직항을 탔으면 더 빨리 도착했겠지만 나는 회사 다닐 때도 이직에 익숙했던 사람이라 한 번의 환승은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취업 공백기를 생각해보면 어떤 목적지든 잠깐 쉬었다가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은 듯하다.

  오클랜드 공항에 비행기가 착륙을 했는데도 구름은 여전히 내 옆에 있는 듯 가까웠다. 한국에서 나를 괴롭혔던 인간들도 이런 평화로운 하늘 아래 같이 존재한다는 게 믿기 어려울 정도로 금세 마음이 평온해졌다.      


 마냥 설레던 순간도 잠시 뿐. 출국장에 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나를 현실에 바로 안착시키는 걱정거리 있었으니, 그 이름하여 바로 입국심사와 세관. 그러나 너무나 간소해서 서운했던 입국심사에 대해서 먼저 얘기해보겠다.  

  입국 심사에 필요한 필수 준비물은 여권이다. 워킹홀리데이 비자의 경우, 비자 승인 서류와 문 잔고 증명서가 추가로 요청되기도 한다. 물론 나는 모든 서류를 완벽히 준비했지만 편도 항공편만 가지고 있는 것이 내심 마음에 걸렸다. 본국이나 다른 나라로 갈 출국 항공권이 없으면 불법 체류를 할 수도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만약 까다로운 출입국심사관을 만나서 이것저것 캐물으면 뭐라고 영어로 답해야 할지 걱정이 됐다. 제발 착하고 게으른 -질문도 하기 싫어서 도장만 쾅 찍어주는- 사람이 배정되길 바라며 입국장에 들어섰다.

 입국심사 줄을 기다리면서 입국심사관한테 뭐라고 인사를 하고 어떤 질문에 뭐라고 답해야 할지 예상 답안을 머릿속으로 영작하고 있었다. 무제한으로 일을 해도 되고 거주지가 불분명해도 이해가 되는 워홀러이지만, 영국 히스로 공항에서 겪었던 까다로운 입국심사가 생각나서 더 긴장이 됐다. 비자 승인 서류는 무려 두 장씩이나 복사해갔고, 영문 잔고증명서와 여권도 한 번에 펼쳐볼 수 있게 착착 준비했다.     

 

 “(도장 쾅!) 다음!”

 그런데 이런 나의 준비성마저 귀찮다는 듯 이민관은 비자 번호를 가리는 승인 서류를 보지도 않고 내게 건네는 것이 아닌가. 그 흔한 인사, “Hi” 조차 건네지 않고 무심하게 입국도장만 팡 찍어주고 서둘러 다음 사람을 부른다. 분명 워킹홀리데이 비자 승인 레터에는 ‘당신은 사본을 복사해서 이것을 뉴질랜드에 들어올 때 세관원에게 보여줘야 합니다.(You must print a copy and present it to a Customs officer when you enter New Zealand)’라고 적혀있었건만. 나의 철저한 준비가 무색하게 너무나 쉽게 입국 심사를 통과했다.      

 내가 원했던 완벽한 게으르...음? 그래도 이건 좀……. 이봐요. 나 당신네 나라 비자 받을 라고 워킹홀리데이 신청일 날 3시간 동안 새로 고침을 얼마나 눌렀는지 알아요? 은행 문 닫히기 전에 헐레벌떡 뛰어가서 나 –일 안 시켜줘도- 돈 이만큼 한국에 있다고 영문 잔고증명서까지 받아왔는데 이 서류들 진짜 안 볼 거야? 내가 서류랑 사진 위조해서 온 테러리스트면 어쩌려고 이래!!

 그러나 이민관은 그런 것 따위는 전혀 안 궁금한 모양이다. 뭔가 아쉬운(?) 마음에 근처 이민성 직원에게 워킹홀리데이 비자 승인 서류를 보여주며 '나 정말 통과해도 되는 거니?'라고 굳이 서류를 보여주며 은근히 비자 자랑을 하기도 했다.      

 그러고 보면 입국 심사에 필요한 건 입국 거절 시나리오에 대한 과대망상 대신 새로운 여정에 발을 내딛는 순수한 설렘이 아닐까?

 사실 이렇게까지 유난스럽게 비자 자랑을 했던 이유는 그만큼 힘들게 이곳에 왔다는 걸 인정받고 싶은 심리였는지도 모르겠다. 한국에선 맘만 비우면 어디서든 일할 수 있지만 영주권이 없는 남의 나라에서 워크 비자를 받는다는 게 얼마나 큰 도전인가.

 물론 이렇게 도장 하나로 문을 열어준 뉴질랜드가 고맙기도 하다. 다만 그동안의 고생을 좀 더 열렬하게 인정받으며 입국장을 느껴보고 싶었을 뿐. 자랑스러운(?) 입국 심사에 대한 몸부림은 이렇게 허무하게 끝이 났다. 그러나 격한 관심병은 세관신고에서 쏙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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