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는 세관 심사가 까다로운 나라 중 하나라 짐을 쌀 때부터 조심스러웠다. 미국이 자국민의 안전을 위해 테러와 연관된 자그마한 실핀에도 신경을 곤두세우듯, 뉴질랜드는 자국의 환경을 대단히도 아끼는 나라이다. 국토의 50% 이상이 목초지인 뉴질랜드는 농업과 목축업 등 1차 산업 중심 국가다. 때문에 외부에서 들어오는 농수산물에 대한 제한이 엄격하다. 신발에 묻은 남의 나라 흙조차도 반입하길 꺼려하는 곳이다. 등산화나 골프화 같이 자연과 밀접되었던 신발은 미리 흙을 털어서 닦아 와야 한다고 하고, 반입 신고도 해야 한다.
어떤 이는 비행기 안에서 먹었던 사과를 무심코 가방에 넣어두고 음식물 반입신고를 하지 않아서 뉴질랜드 화폐 NZD로 400달러의 벌금을 냈다고 한다.
허무했던 입국심사가 끝나고 두 번째 난코스, 세관검사에서 다시 바짝 긴장 태세로 돌입했다. 한국을 출국하기 전, 짐과의 전쟁에서 패배한 나는 온갖 잡동사니를 꾹꾹 눌러 담고 오느라 내 짐 가방은 폭발 직전이었다. 한국에서 몇 년을 보내도 입지 않던 옷들은 내 미련 덕에 차출되어 짐 가방에서 잔뜩 성질이 나있는 상황. 만약 무작위로 세관검사에 당첨되어 그 움츠려져 있던 녀석들이 까꿍하고 나오는 순간, 모두의 입이 -더불어 캐리어의 지퍼도- 다물어지지 않을 것이다. 짐을 풀어보는 건 랜덤임에도 불구하고 비행기에서도 계속 걱정이 되었다. 또 그렇게 뉴질랜드에서의 새로운 시작에 대한 설렘은 한국에서 챙겨 온 짐 때문에 가려져 버렸다.
사실 내가 이렇게까지 세관심사에 긴장했던 이유는 몇 가지 맘에 걸리는 반입품 때문이었다. 당시 나는 장기 복용을 해야 하는 정신과 약과 담배, 음식물(고추장과 샐러드 소스, 라면)을 소지하고 있었다. 물론 반입품목에서 의약품 지참에 체크를 하고 영문 처방전도 준비해 왔다. 다만, 특수한 약인만큼 의사 소견서를 요구하며 저 성난 짐들을 풀어헤치는 상황이 올까 봐 걱정이 되었다.
이번에야말로 나의 걱정이 매우 쓸모 있게 세관심사는 줄이 길게 늘어서있었다. 덩치가 좋아 보이는 세관원과 수색견이 입국자들의 가방 주변을 킁킁 거리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잠든 짐 가방의 지퍼를 건드리는 일이 없길 바라고 또 바라며 세상 선량한 표정으로 세관원의 눈길을 자연스레 회피했다. 궁상맞게 바리바리 싸 온 한국 식품이 제발 수색견의 코를 자극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내가 다 숨을 쉴 수 없었다.
그런데 요 녀석 취향이 으흐흐... 앞에 계신 서양 아재의 중요부위에 코를 대고 킁킁거리는 것이 아닌가.
“이 개구쟁이 녀석이!Naughtyboy”
그 노티보이가 건장한 서양 아저씨를 성추행(?) 한 덕분에 세관장에 긴장은 잔잔한 웃음으로 피식피식 새어나갔다.
한 풀 꺾인 녀석의 수색 열의가 식어갈 때쯤, 드디어 내 차례가 다가왔다.
“김치? 고추장?”
헉. 세관원이 한국어로 김치와 고추장이 있냐고 묻는다. 한국 사람들이 얼마나 한국 식품을 많이 가져왔으면 아예 한국어로 자연스럽게 물어본다. 만약 가져온 음식물이 뭐냐고 물어보면 영어로 뭐라고 번역해야 하나 엄청 머리를 굴리고 있었는데, 먼저 여행 다녀간 분들 덕분에 음식물 반입은 별 탈 없이 넘어갔다.
그런데 온갖 잡동사니가 쑤셔 박힌 박스가 엑스레이 검사대에 멈춰 섰다. 세관원이 “노트Note?” 어쩌고 하면서 묻는다. 세관 심사와 공책이 무슨 연관이 있나 싶어서 내가 잘못 들은 줄 알고 계속 “미안해요.Sorry”만 연발했다. 아무리 부연설명을 들어도 도무지 이 상황에서 어울리는 단어가 들리지 않았다.
자백이라도 하듯 “이 상자 열어볼래요?”하고 물었다. 차라리 이 상자를 개봉해서라도 결백함을 주장하려는 과한 의욕을 내비치자 오히려 그는 내가 거짓말을 해서라도 이 물체가 무해하다는 답변을 해주길 바라는 눈치였다. 그래, 이 무거운 박스를 열면 당신도 나도 편치 않을 거야.
알고 보니 세관원이 말한 그 노트는 말 그대로 공책이었다. 공책에 달린 쇠 스프링이 엑스레이에 찍힌 모양이다. 대수롭지 않게 공책 있냐고 물어봤는데 식겁하고 그 큰 상자를 통째로 들이대니 그도 판도라의 상자(?)를 열고 싶지 않았겠지. 어쨌든 과하게 결백하려 애썼던 세관 검사까지 무사히 통과했다.
괜히 쫄았다. 마약을 소지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이게 다 ‘만약’부터 떠올리며 최악을 상상하는 버릇 때문이다. 걱정은 시작과 실행에 찬물을 끼얹는 불청객이다. 마약보다도 중독성이 강한 이 ‘만약’이라는 놈은 내가 무언가를 시작할 때마다 용기를 앗아간 장본이었다. 더 이상은 휘둘려서는 안 된다.
알고 보면 뉴질랜드는 그렇게 까칠한 녀석이 아닐지 모른다. 이 쓸데없는 걱정만 앞서지 않는다면 말이다. 아무튼 뉴질랜드야, 반갑다! 앞으로 잘 지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