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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심지 Apr 07. 2024

내일이 아닌   
매일 행복할 것

오클랜드 공항에서 숙소(YHA)로 이동하기

 오클랜드 공항에서 시티까지는 차로 30~40분 정도 거리다. 워킹홀리데이나 여행자들 숙소가 몰려있는 오클랜드의 시티는 브리토마트Brito mart에서 케이로드K-mart정도로 볼 수 있다. 이동수단은 스카이 버스Sky bus라고 하는 공항버스가 일반적이다. 스카이 버스는 24시간 365일 운행하고 브리토마트, 퀸 스트리트Queen street, YHA 숙소 근처 등 주요한 위치에 정거장이 있다. 또는 택시나 공항 앞에 대기 중인 봉고차를 방향이 비슷한 사람끼리 같이 타는 방법도 있다.

 돈보다 시간이 남아도는 내 예산 상태와 나를 혹사시키는데 익숙한 내 여행 습관을 토대로 한다면 나는 가장 저렴한 버스를 타고 숙소를 찾아 헤맸을 것이다. 그러나 침착하게 공항버스로 숙소를 이동하는 방법을 택하기엔 감당해야 할 짐이 너무 많았다. 팔은 두 개인데 짐 가방은 네 개. 게다가 수화물이 파손되는 바람에 보상 문제로 공항 안팎을 헤매다 보니 어느덧 6시가 넘어 있었다. 뉴질랜드의 날씨는 우리나라와 정 반대라서 내가 도착한 5월 말은 겨울에 접어드는 시기였다. 날은 금세 어둑해져 있었다.

 우선은 게이트를 빠져나와 공항카트가 허락하는 범위까지 이동했다. 버스표를 파는 매표소 앞에 서니 택시와 사설 승합차가 먼저 눈에 띈다. 사실 버스 정류장 바로 앞에 숙소 입구가 이어져있지 않는 한 이 짐들을 혼자서 옮길 자신이 없었다. 마침 근처에 대기 중인 승합차가 있었으나 방향이 맞질 않았다.

 포기할 수는 없다! 세부에 혼자 여행을 갔을 때도 -안전과 금전의 문제로- 처음 보는 여행객들과 공항에서 택시를 같이 타고 간 경험을 살려 직접 모객에 나섰다. 그런데 이게 웬걸. 뉴질랜드의 인구가 서울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더니. 넓은 땅덩어리에 비해 낮은 인구밀도를 단박에 체감할 수 있게 물어볼 사람조차 많지 않았다. 마침 근처에 계신 택시기사분이 한국분이라 넌지시 요금을 여쭈어보았으나 동포애(?)를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하는 수 없이 당초 계획대로 버스를 타기 위해 매표소로 다가갔다.

 그때, 또 다른 유혹의 손길이 다가왔다. 백마 탄, 아니 하얀색 승합차 기사 리치.

 “너 짐이 많아서 어차피 버스 기사가 안 태워줘. 내가 특별히 할인해 줄 테니까 이거 타고 가.”

 처음에는 그의 호객행위가 의심스러웠다. 나는 똥인지 된장인지 직접 찍어 먹어봐야 직성이 풀리는 편이다. 첫 번째 옷 가게가 마음에 들어도 다섯 번째 옷 가게까지 다 들어가 본다. 그리고 첫 번째 옷 가게가 역시 맞았다는 걸 확신하고 나서야 선택하는 성격이었다. 이십 대에는 그 확신을 얻기 위해 네 군데를 더 돌아다닐 만큼의 시간과 에너지가 충분할지 몰라도 이제는 아니다. 내게 남은 이십 대는 –뉴질랜드 도착일부터 만 30살 생일까지인- 165일뿐이고, 오늘 하루는 6시간도 안 남았다. 때로는 첫 번째 옷 가게에서 내게 맞는 옷을 찾았다면 다음 가게에 미련을 두지 않고 과감하게 지갑을 열 줄도 알아야 한다.

 어차피 버스를 타도 짐이 많아서 추가 요금을 내야 한다는 근거 없는 소문과 특별 할인이라는 뻔한 제안은 지친 내 몸을 달래기에 충분했다. 사실 공항버스 수화물 규정에 무게 제한은 없다. 하지만 그렇게 속아서라도 빨리 결정을 내리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저 무거운 짐들에 대한 고민이 금세 덜어졌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의 첫 뉴질랜드 화폐 30달러가 리치에게 건네졌다. 공항버스에 비하면 10달러 정도가 예산에서 벗어나긴 했지만, 짐으로부터 해방된 당시의 홀가분한 기분을 계산할 수는 없었다.     

 

 서너 명 정도의 승객이 더 탑승한 뒤 승합차는 시티가 있는 북쪽으로 향했다. 나는 제일 뒤 칸에 편하게 누워 긴장된 하루를 녹이고 있었다. MBTI에서 파워 J인 내 성향과는 반대로 이번 여행은 미리 계획해서 실천해 나가기보다 그때그때 좋은 방향으로 선택하기로 했다. 그래서 숙소도 이틀만 예약하고 어느 지역으로 이동할지도 정하지 않았다. 심지어는 버스에 내려서 숙소를 어떻게 찾아갈지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상태였다. 일주일 여행에도 시간대별로 이동 경로를 계획하는 나로선 엄청난 일탈이 아닐 수 없다. 전날 남반구에 위치한 한국에서는 ‘만약’, ‘혹시’하는 계획으로 가득 찬 짐들을 들고 왔던 나였다. 그러나 북반구에 위치한 뉴질랜드의 나는 정반대의 사람처럼 ‘계획? 그런 건 개나 줘버려.’ 하고 나답지 않은 모습을 하고 있다.     

 

 “YHA”

 리치가 차에서 내려 내가 예약한 숙소 이름을 외쳤다. 밖은 까맣게 어두워져 있었고, 불빛이라곤 거의 보이지 않는 어딘가에 차가 멈췄다. 리치가 차에서 짐을 꺼내는 동안 리셉션으로 가서 예약자명을 확인했는데 예약이 안 되어 있다고 한다. 알고 보니 YHA는 오클랜드에 두 개의 지점이 있는데 서로 멀지 않은 거리에 있었던 것. 내비게이션이 보편화되지 않은 뉴질랜드에서는 상호명이나 도로명을 말하는 게 보통이라 리치에게 숙소 이름만 말했더니 언덕 위의 있는 시티 지점에 내려준 것이다. 다행히 내가 예약한 인터내셔널 지점과 멀지 않아서 리치는 짐을 다시 옮기고 제 길로 들어섰다. 차가 있었으니 망정이지, 경사진 언덕을 혼자서 헤맸다고 생각하니 아찔하다. 리치 덕분에 공항에 묶여있던 나와 내 짐들은 무사히 숙소 리셉션 앞까지 놓여졌다. 그는 직업적 소명을 다한 것이지만 나를 계획에서 구해준 그에게 고마움이 느껴졌다. 그래서 사진도 찍고 사인까지 받아뒀다. 비록 기사와 승객에 불과한 인연일지 몰라도 사소한 것까지 기념하고 기억하고 싶었다.

 다시 이십 대로 살아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만큼 하루하루가 소중했다. 오늘은 어제의 결과이자 내일의 밑거름이 된다는 무거운 책임감 때문에 오늘을 희생하지는 말자. 그저 다시 돌아오지 않을 오늘에 집중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야 앞으로 남은 이십 대의 삶도 행복해질 것이다. 명심하자, 행복해야 할 사람은 내일의 내가 아니라 매일의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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