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나의 장래희망란은 해마다 다르게 채워졌다. 만화가, 미용사, 디자이너, 통역사, 선생님, 건축가까지.
변덕이 심하고 귀가 얇았나 싶지만, 되돌아보면 그저 되고 싶은 게 많았던 것뿐이었다. 그리고 노력만 하면 그게 무엇이든 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머리가 굵어지고 사회와 맞닿을수록 ‘꿈’은 ‘꿈’이라는 사실을 체감할 수 있었다.
아주 작은 것을 이루기 위해서도 능력과 노력, 그리고 운이 필요했다. 그래서 매 순간 주어진 것에 감사해야 했다. 그러한 삶이라도 이어나갈 수 있음에.
이따금 현실에 지쳐 감사함을 잃어갈 때면, 꿈들마저 어둡고 얄팍하게 말라갔다.
‘왜 나만 이렇게 힘든 걸까’, ‘왜 나만 이렇게 되는 일이 없을까’ 생각했다.
퇴사를 결심했을 때도 그랬다. 늪을 벗어나 다시 피어나고 싶었다. 지금의 뿌리를 버리고 온전히 다른 터에서 자리 잡고 싶었다. 그러면 또 다른 꿈을 먹고 달콤한 열매를 맺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시고 쓴 바람과 안개가 소리 없이 기다리고 있었다. 눈을 뜨기 힘들고 앞이 보이지 않았다. 지금 가고 있는 길이 맞는 건지, 어디쯤 와 있는 건지 가늠할 수 없었다. 희망을 바라보던 미래는 꽉 막힌 연기 속에 갇혀 있었다.
그때 문득, 모든 꿈을 태우고서 망망대해를 건너던 과거가 보이기 시작했다. 작은 아이는 파도와 풍랑을 헤쳐나가며 거칠고 두려운 항해를 포기하지 않았다. 자신에 대한 믿음을 꼭 쥔 채 주변 사람들의 응원을 받으며, 목적지를 향해 씩씩하게 바다를 건너갔다.
언제부터 이렇게 겁이 많고, 걱정이 커졌을까. 어떻게든 길은 있을 텐데.
비록 가장 빠른 길은 아니더라도 허락된 경로는 분명 존재한다. 그러니 잠시 돌아가더라도 시작된 여정을 멈추지 말자. 모든 꿈을 싣고 다시 한번 바다를 건너보자.
한 걸음씩, 작고, 소소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