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소소한] 오늘 퇴사했습니다만(4)-나의 정착기

by 지수

4월의 어느 봄날 상경 후, 예상치 못한 일들이 잇따라 일어났다.


이사한 다음 날 아침, 문 앞엔 쪽지가 붙어 있었다. 빽빽한 손글씨로 적힌 종이엔 아래층에 사는 자신의 불편함을 담은 내용들로 가득했다.

발소리 내지 마라, 중문 여닫는 소리가 시끄럽다, 가구 소리가 계속 난다 등등.


문득 어젯밤 잠들기 전, 소리를 마구 질러내던 여자의 목소리와 무언갈 쿵쿵 치는 소리가 떠올랐다. 정체를 알 수 없던 괴성이었지만, 쪽지를 통해 보복성 소음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베란다 창 앞으로 사다리차가 오가고, 약 한 달 동안 비워진 집에서 나는 소리이기에 이삿날임을 모를 리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다음날 바로 쪽지를 붙여 둔 걸 보면 층간소음에 꽤 예민한 사람인 것 같았다.


이후, 소심한 나는 최대한 소음을 내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행동 하나하나에 의식적으로 주의를 기울였다. 그리고 문 앞에 불편함이 있을 시 쪽지가 아닌 관리사무소로 연락해 달라고 붙여놓았다.


하지만 아래층 여자는 계속해서 소리를 지르고 고의적으로 쿵쿵거리는 소음을 만들어냈다. 문 앞의 쪽지도 주기적으로 이어졌다.

집순이인 나는 더 이상 집에서 안락함을 찾을 수 없었다. 결국 언니 부부와 함께 관리사무소를 찾아갔다.


관리사무소에서 아랫집에 연락을 넣었지만, 전화를 받은 건 입주자의 어머니였다. 그 어머니는 ‘걔는 연락이 잘 안 될 테니 할 말이 있으면 자신에게 연락하라’ 며 다급히 전화를 끊었다고 했다. 상황에 대한 이해도, 책임도 없는 반응이었다.


관리사무소는 아래층의 밑집에서도 비슷한 불편이 있는지 확인해 보았다. 그 집 역시 층간소음에 시달리고 있었고, 아래층 여자에게 직접 찾아가 보았지만 끝내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하는 수 없이 층간소음 증거를 수집하며 밤이면 이어 플러그를 끼고 지낸다고 하였다.

이쯤 되니 문제의 중심이 어디에 있는지 명확해 보였다.


그로부터 며칠 뒤, 새벽 한 시경. 가족이 보낸 카톡 진동 소리에 잠깐 잠이 깨었다. 이어 누군가 문 앞을 오가는 인기척이 들렸다. 아래층 여자가 일부로 진동 소리를 내는 게 아니냐며 항의글을 붙이고 간 것이었다.


그냥 지나갈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속적으로 타인의 집 앞을 찾아와 쪽지를 붙이고 가는 행위는 스토킹 범죄로도 처리될 수 있었다.

해당 당일 경찰 신고를 진지하게 고민하던 중, 달력 속 오늘의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용서하라‘ 는 내용이 담긴 글귀였다.

나는 ‘그래, 이번 딱 한 번만’ 하는 마음으로 흥분을 가라앉히고 신고를 미뤘다.


시간이 지나 다행히 소음이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아래층에서 불쑥 울려오는 괴성은 이따금 나의 일상을 침범했다.


애석하게도 이곳의 문제는 층간소음뿐만이 아니었다.

여름이 되자 ‘곰팡이’라는 새로운 적이 나타났다. 최상층인 데다 긴 장마가 겹치며 습기가 가득 찼다.

거의 매일 싱크대 위 천장을 닦았고, 집주인과 관리사무소에 연락해보았지만 대응은 소극적이었다. 집주인은 관리사무소로 책임을 돌리고, 관리사무소는 책임을 회피했다.


그 가운데 재취업 또한 쉽지 않았다.

끝없이 떨어지고 좌절했다. 취직이 되어야 이 환경에서 탈출할 수 있을 텐데, 그 길은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


쏟아진 문제들과 함께 막막함만이 남았다. 고향을 떠나 새로운 터에 자리를 잡는다는 것이 이토록 힘들 줄 몰랐다. 굿뉴스는 고사하고 베드뉴스만이 몰려들었다.


그래도 후회하거나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등가의 원칙에 따라 나쁜 운이 다하면 좋은 운이 찾아오길 바라며 그저 하루하루를 버텨냈다.


지금도 나는 주어진 난관을 완전히 헤쳐 나오지 못했다. 하지만 작은 희망을 놓지 않고 등가의 삶을 이어가고 있다.

새로운 정착을 꿈꾸는 이들에게 닥친 수많은 난관들이, 생의 또 다른 변수가 되어 길었던 터널의 끝으로 데려가주길 나지막이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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