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웨이', '디센던트'의 감독 알렉산더 페인이 연출하여 아카데미 5개부문 후보에 올랐던 화제작 <바튼 아카데미>는 외로운 사람들이 운명적으로 보내게 될 1970년 크리스마스 시즌의 이야기를 훈훈하고 코믹하게 그려낸 수작이다.
바튼 아카데미는 명문 기숙학교로 부유한 집안의 자제들이 많다. 하지만 그만큼 시건방지고 못된 녀석들도 있다는 것. 한편 크리스마스에 가족과 함께 보내지 못하고 학교에 처박히게 된 잔류자들(holdovers)이 있었다. 꼴통 역사선생 폴, 문제아 털리, 그리고 베트남전에서 아들을 잃은 주방장 메리가 그 주인공.
그래서 배경음악이 Swingle singers의 아카펠라를 비롯한 크리스마스 캐롤이다. 1970년대 미국을 경험하지 못했던 세대에게 그 시대의 숨결까지 고스란히 전달하는 감독의 섬세함이 돋보인다. 막연한 향수를 자극하는 삽입곡들도 한 몫한다. 우리로 따지면 '밀수'에서의 오동잎같은 노래들. 캣 스티븐스의 The Winds, 쇼킹블루의 Venus, 올맨 브라더스 밴드의 In memory of Elizabeth Leed, 아티 쇼의 When winter comes까지 다채롭다.
폴은 고대 문명사의 정통파답게 모든 현실을 그리스 로마시대의 사건으로 해석해내는데 학생들은 죽을 지경이다. 심한 사시로 어느 눈을 쳐다봐야할지 모르겠고, 몸에서는 이상한 냄새가 난다. 게다가 명문대에 진학하려는 학생들에게 F학점을 남발하자 총장까지 만류한다. 그 똘기 넘치는 선생님과 2주간의 성탄휴가를 보내야 하는 털리는 거의 지옥에 갇힌 듯한 괴로움을 호소한다.
영화를 보고나면 <죽은 시인의 사회>, <파인딩 포레스터>, <여인의 향기>, <올모스트 페이머스>의 느낌이 묻어난다. 하지만 학생과 선생 외에 한 명이 더 있는 게 다르다. 바로 주방장 메리다. 아들 커티스를 전장에서 잃은 마더 메리(Mary). 그래서 아들의 성이 어린 양 Lamb인 것인가. 명분없는 전쟁의 희생양. 메리의 음식이 맛없다고 투덜대며 그래도 안 짤리는게 아들이 죽어서라고 비아냥대는 학생에게 폴은 큰 소리로 야단친다.
"바튼 학생들은 베트남에 가지 않는 대신 예일, 다트머스, 코넬에 가니까 아픔을 모르는 거야."
영화속 1970년에 사망한 커티스는 조용필과 동갑인 1951년 생이다. 얼마나 오래된 설정인지 실감이 난다. 70년대의 특징으로 장발과 실내 흡연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 실제로 70년대엔 국내외를 막론하고 거실에 재떨이가 있고 실내에서 심지어 극장에서도 기내에서도 흡연을 했으니까.
계속 꼬이는 사건과 해결, 허둥대고 수습하던 그 긴 우여곡절 끝에 털리와 폴, 그리고 메리는 규칙을 어기고 보스턴으로 짧은 여행을 떠나게 된다. 여기서 흘러나오는 곡. Drive to Boston이 감미롭다.
한편 보스턴 박물관에서 폴은 털리에게 고대의 전시물 하나를 보여주며 설명한다.
"각 세대는 저마다 새로운 방탕과 반항, 그리고 고통을 발명했다고 주장하지만, 인간의 경험에서 새로운 건 없다. 모든 충동과 식탐이 여기 전시되어 있어. 그러니 뭔가 지루하고 상관없는 것으로 무시하지 말고 현재나 자신을 이해하고 싶으면 과거를 살펴야 한다."
드디어 지루한 역사샘의 강연이 학생에게 먹히는 순간이다. 그리고 해묵은 갈등의 물꼬가 터지기 시작한다.
데이빗 헤밍슨이 자신의 원작 소설을 다시 각본으로 만들어 스토리라인이 탄탄하다. 미국의 중년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70년대의 냄새가 향수를 자극하는 동시에 폴 지아마티의 신들린 연기가 마음을 녹여준다. 오스카 조연상을 수상한 더바인 조이 랜돌프의 감초연기도 대단하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사는 미합중국을 하나로 만드는 요소가 무엇인지 영화는 잘 설명한다. 그건 해마다 돌아오는 크리스마스다. 누군가에겐 하누카일 수도 있는 그 날. 그 시즌에는 기적이 일어난다. 선생의 혼란스런 안구처럼 오해가 넘쳐나는 세상이 잘못된 확증으로 굳어지더라도 그 모든 편견을 녹일 수 있는 건 진실이고 소통이었다. 그렇게 서로를 사랑하고 나면 그 외의 다른 것은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사람 사는게 다 거기서 거기니까. 비록 천근같은 고통과 뼛속깊은 외로움과 미래에 대한 불안이 우릴 잠식할지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