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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문 Apr 28. 2024

추락의 해부 - 치밀한 심리 스릴러


















산속에 있는 자택에서 문학을 전공하는 대학원생과 인터뷰하는 소설가 산드라. 하지만 3층에서 “Pimp”라는 음악을 크게 틀고 단열 작업을 하는 남편에 의해 인터뷰가 중단된다. 시각장애가 있는 아들 다니엘은 안내견 스눕과 산책에서 돌아오다가 3층에서 추락하여 사망한 아빠와 마주친다. 


쥐스틴 트리에 감독의 <추락의 해부>는 거의 포렌식에 가까운 사건의 재구성이다. 치밀한 인과론과 메마른 결백이 대결하는데 ‘수사란 이런 것이다’라는 정석을 보여주는 정교함이 우위에 선다. 집에 단 둘이 있었기에 용의자로 적시되는 산드라의 억울함을 풀어줄 사람은 변호인 뱅상 밖에 없다. 아 그리고 한 명 더. 아들 다니엘.


대학교수직이 버거웠던 남편 사뮈엘은 소설가가 되려고 알프스 산중으로 거처를 옮겼다. 독일 태생의 아내 산드라는 남편에게 맞춘다고 노력했지만 ‘그 사건’ 이후 둘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벽이 생겼다. 그렇다. 교통사고로 시력을 잃게 된 아들의 사고 말이다. 


남편은 죄책감에 못 이겨 괴로워하고 일상에서도 서서히 지쳐갔다. 반면, 산드라는 회복이 빠른 사람이었다. 가정을 지켜내야 했고 돈을 벌어야 했다. 그 와중에 몇 번의 일탈도 있었지만, 그저 일탈이었을 뿐이다. 


재판의 목적은 진실을 밝히려는 것이다. 그 와중에 강력한 혐의를 받는 산드라에게 프랑스 법정은 언어적으로 불리한 공간이었다. 그래서 법정에서 약자가 된다. 양성애자라는 팩트도 그녀에겐 걸림돌이었다. 그렇게 치열한 다툼이 2시간 여 지나고 관객은 유죄와 무죄 사이에서 긴장한다. 몰입감 최고의 심리 스릴러는 그렇게 뛰어난 연출로 칸 황금종려상을 거머쥐었다.


한편 프랑스 법정은 복장이 낭만적이고 미성년에 대한 배려도 세심했다. 어떤 나라의 경우처럼 짜맞추기 수사나 검사의 무리한 기소가 보이지 않아 안심이었다. 그런면에서 배심원 제도가 합리적이라고 느껴졌다. 


부부란 친밀한 경쟁자라고 한다. 삶이라는 게 사랑과 야망, 그리고 외로움으로 이뤄져 있다면 채워지지 않는 결핍은 의욕의 좌절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 배우자의 성공은 질투라는 단어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고통이 수반된다.


게다가 이 부부에겐 아들의 치료비로 소모된 비용도 막대했다. 돈이라도 풍족했더라면 이 비극을 막을 수 있었을까.



남편은 그렇게 큰 음악소리와 함께 세상을 떴다. 그리고 1년여 시간 남은 가족은 남편의 죽음을 설명하느라 너덜너덜해졌다. 유죄면 어떻고 무죄면 어떤가. 이미 휑하게 뚫린 마음속으로는 의심과 두려움의 바람이 불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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