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장교 루돌프 회스(크리스티안 프리델)의 가족이 사는 그들만의 꿈의 왕국 아우슈비츠. 아내 헤트비히(산드라 휠러)가 정성스럽게 가꾼 꽃이 만발한 정원에는 재잘거리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하다.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은 집. 과연 악마는 다른 세상을 사는가?
조나산 글레이저 감독의 <존 오브 인터레스트(Zone of Interest)>는 그간의 홀로코스트 영화와는 정반대의 시점에서 사건을 바라본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소각장 옆 담장 너머에는 인종청소의 혁혁한 공을 세우는 회스 중령의 사택이 있다. 평온하기 이를데 없는 한 가정의 일상이 펼쳐진다. 강에서 수영을 즐기는 장교의 부인 헤드비히는 많은 가정부의 도움을 받아 갓난아이와 정원을 돌본다. 그들의 집 담장 너머에서는 하루 오백명의 유태인이 소각되고 그 연기는 낮밤을 가리지 않고 뿜어져 나온다.
영화의 시작과 함께 꽤 오랜시간 검은 어둠으로 가득하다. 스크린이 고장났나 싶을 정도로. 중간에도 엔딩에서도 반복되는 이 어둠은 의도된 것이다. 극장을 찾은 관객에게 깊은 어둠의 심연으로 초청하는 시간이다. 그 어둠이 답답해 일종의 공황이 느껴질 만 할 때 1940년대의 폴란드 강변이 나타난다.
수용소와 사택을 오가는 유태인 노동자들은 장교의 집에 다양한 유태인 유류품을 가져온다. 거기엔 고급 밍크코트부터 여성들의 속옷까지 다채롭다. 부인은 아무런 죄의식 없이 그 물건을 사유화한다. 심지어 가정부까지 그녀에겐 완전한 소유물이다.
꽃을 키우고 아이를 키우는 엄마는 다만 담장 밖의 일에는 철저히 무관심하다. 이 부분이 가장 서늘한 지점인데 사람이 어떻게 하나의 마음으로 일체의 비극을 부정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인간 모순의 현재 진행형을 역설한다. 우리는 현재 지구촌, 아니 우리 주위의 작은 악과 싸우고 있는가. 악을 인지는 하고 있는가.
악은 어떤 형태로든 우리와 함께 공존한다. 누군가는 오늘도 억울하게 죽임을 당하고 고통을 당하지만 대다수는 모르거나 애써 무시한다.
37년 전에도 그랬다. 대한민국을 장악한 악의 세력은 젊은이들을 공격했다. 첨엔 인지하지 못하다가 점점 알려지면서 사건이 터지기 시작했고 일단 사실을 안 이상 사람들은 실천할 수 있었다. 그 희생을 담보로 한 실천이 우리나라 민주화의 한 획을 긋는 전기를 마련했다.
작은 불꽃 하나가 큰 불을 일으키는 법. 오늘 내 마음에 작은 촛불 하나 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