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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문 Oct 30. 2024

영화촉촉노가리(7)-하버드대학의 공부벌레들



<하버드 대학의 공부벌레들>의 원제목은 페이퍼 체이스(The Paper Chase).

1973년작으로 실버 에이지 클래식으로 분류되네. 햐. 내 나이 어쩔.


미네소타 대학을 졸업하고 하버드 법과 대학원에 입학한 제임스 하트는  첫시간부터 킹스필드 교수의 집요한 질문 세례를 받아. 탈탈 털리는 거지. 하지만 그날부터 하트의 마음 속에 킹스필드 교수는 두려움과 동시에 동경과 존경의 대상으로 자리잡고, 스터디 그룹에 가입해 킹스필드 교수의 수업을 받기 위한 준비에 만전을 기하기 시작해. 스터디 그룹 멤버는 아이큐 190의 포드를 포함해서 재력가의 아들, 포토그래픽 메모리 등 대단한 친구들이었어. 밤을 꼴딱 새고도 바로 등교하는 체력을 자랑했지. 



하트는 같은 캠퍼스에서 수잔이라는 여성을 알게 되고 가까워지지. 수잔역은 다름아닌 린제이 와그너가 맡았어. "특수공작원 소머즈"하면 기억하겠지. 우리가 어렸을 적 처음으로 만난 미녀배우.  소머즈의 원제는 Bionic woman이야. 성우는 주희가 맡았지. 



1978년 <하버드 대학의 공부벌레들>이 "학창시대"라는 TV시리즈로 KBS에서 방영이 되었는데 밤늦게 방영함에도 불구하고 부모님들이 시청을 허락한 이유는 대학생들이 공부를 열심히 한다니 너희들도 보고 배우라는 것이었지. 근데 공부를 저렇게 요란하게 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어. 암튼 그때 주인공 하트는 다른 배우가 맡았었지. 그래서 뒤늦게 오리지널 영화를 보았을때 약간 적응이 안됐어. 



원작 영화의 하트로 나온 배우는 내가 애정하는 티모시 보텀즈.




<라스트 픽쳐 쇼>, <새벽의 7인>에서 진한 인상을 남긴 연기파 배우인데 이후 부진을 겪었지. 구스 반 산트의 <엘리펀트>에서 단역을 출연하기도 했어. 우리 세대 중 어릴 때 영화 좀 본 친구들은 <새벽의 7인(1976)>의 광팬들이 많았어. 히틀러 독재시절 인간백정이라 불리는 히믈러를 처단하기 위해 영국에서 체코출신 특전대를 모집하는데 거기에 티모시 보텀즈가 뽑히고 프라하로 입성하지. 암살계획은 시간에 맞춰 찬찬히 진행되는데 손에 땀이 날 정도로 긴장돼. 처단에 성공하는 건 좋은 데 이들이 프라하를 탈출하기가 어려워졌어. 그물망을 치고 들어오는데 무시무시하게 촘촘하지. 숨고 도망가고 그러다가 마지막 장면은 오래도록 마음을 적셔주었지. 




킹스필드 교수역을 맡은 존 하우스만은 한번도 웃지 않은 엄격한 캐릭터인데 하트는 이 분에게 인정받기 위해 온 몸을 바치지. 문제는 자기가 교제하는 수잔이 킹스필드 교수의 딸이란 것을 나중에 알게 됐고 공부와 성적과 인정과 사랑이 혼재되면서 엄청난 트러블에 직면해.




킹스필드 역을 맡은 존 하우스먼은 영화 <맹크>에서 오슨 웰즈와 맹크 사이를 부지런히 오가며 통신역할을 하는 실제 인물이야. 연극계에서 오슨 웰즈와 친분을 갖고 있었지.


법학에 진심인 하트는 유머와 휴머니즘을 잃지 않고도 킹스필드 교수의 강의시간에 두각을 나타내지. 동시에 운명처럼 다가온 수잔과의 사랑도 포기하지 않아.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잊을 수 없는데 학기말 고사를 마친 하트는 수잔과 해변가로 여행을 떠나. 그리고 며칠 후 성적표가 날아오지. 열어봐라고 말하는 수잔. 하지만 하트는 보지 않고 접어서 비행기를 날리지. 어린 시절 난 그 장면을 이해할 수 없었어. 그런데 관객들은 날아간 종이비행기 속으로 선명한 A+를 보게 돼. 


영화 제목 '페이퍼 체이스'란 "법조인이 되기 위해 거쳐야 하는 혹독한 통과의례"라는 뜻. 하지만 범생이처럼 세속적인 학력과 경력을 추종하는 사람을 뜻하기도 해. 성적, 좋은 대학, 좋은 직장을 좇아살아가는. 


주인공 하트는 본인이 그런 탄탄대로에 들어왔다는 걸 인지해. 하지만, 인간적이고 스펙트럼이 넓은 휴머니스트로서 그는 성적표 열기를 거부함으로써 자신의 아이덴티티와 자존감을 지켜내지. 일종의 퍼포먼스라고나 할까. 


아마도 그는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해서 변호사가 됐겠지. 부와 명예를 거머쥔 삶을 살았을거야. 하지만, 그저 야망의 노예가 아닌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잃지 않는 변호사가 됐을거야. 그 정도만 해도 훌륭한 거 아닐까.  


인생은 누군가에게 인정받는 과정의 연속이지. 하지만 결국 나에게 최종 학점을 주는 사람은 바로 내 자신일거야. 지금 각자에게 성적표를 준다면 거기 뭐라고 적혀있을까. 아마도 하트는 자신 스스로도 A플러스를 주었을 거야. 그만큼 최선을 다 했으니까. 최선을 다하면 나머지는 하나님이 도우신다는 말이 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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