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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문 Sep 28. 2023

<비스티보이즈>의 허영

강남스타일의 말로

"지금부터 갈 때까지 가보자... 오빤 강남스타일.."


2012년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떴을 때 난 미국에 체류 중이었다. 나만 만나면 젊은 미국인들은 이 노래이야기를 했다. 사실 한류에 대한 관심이 싫지는 않았는데 뮤비를 보면서 약간의 이질감 같은 게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건 쾌락과 놀이의 끝에 이르고자 하는 욕망의 찬가였기 때문이다. 



뒤늦게 OTT에서 <비스티보이즈>가 눈에 띄었다. 감독이 윤종빈이다. <범죄와의 전쟁>, <공작>의 솜씨 있는 연출가. 그의 초기작인데 생각보다는 흥행에 실패했던 것 같다. 하정우가 <추격자>로 주목을 받은 지 두어 달 후에 개봉했다. 당시 포스터만 보면 화려하다. 무려 GOD의 윤계상이 주연이다. 간지 나는 포스터를 보고 한껏 기대하던 관객들이 엔딩크레디트에서 쌍욕을 하며 퇴장했다는 후문이다.




영화는 청담동 호스트바에 출근하는 윤계상과 남자 마담 하정우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주 고객층은 역시 비슷한 일을 하는 텐프로 룸살롱 언니들이다. 그들은 영업을 마치고 술에 취한 상태에서 다시 자신들이 손님이 되어 남성 접대부들로부터 보상을 받기 원한다. 하정우는 고객을 끌기 위해 잘생긴 오빠들을 관리하는데 씀씀이가 헤프다 보니 제때에 돈을 갚지 못해 사장(마동석)에게 항상 쫓기는 신세다. 



윤계상은 원래 부자였는데 어쩌다 이쪽에 발을 디딘 후에 돈 많은 여자들에게 돈을 충전받아 살게 된다. 일단 시작이 어렵지 빠지면 헤어나기 어려운 법. 손님과 종업원으로 만난 윤계상과 윤진서는 서로 호감을 느끼며 사귀게 되지만 유사 직종끼리 살아간다는 건 폭약을 안고 사는 것과 비슷한 법이었다. 아직까지 순진한 윤계상은 윤진서에게 집착하며 공사구분이 흔들리고 선수답지 못한 행동을 한다. 하정우는 <어떤 하루>에서 보여줬던 능청보다 더한 능구렁이식 거짓말로 여자들을 속인다. 애인에게 돈을 뜯어내고 그 돈을 갚기 위해 또 다른 여자를 속이는 속칭 '공사'의 달인이다. 한마디로 답 없이 스타일만 내세우는 강남오빠들의 최후는 어떻게 될 것인가.




이 영화를 2008년에 봤더라면 나도 "낚였네.." 하면서 실망하고 나왔을게 분명하다. 도대체 하고픈 얘기가 뭔가. 왜냐하면 당시 강남에서 일어나는 그냥 흔한 이야기 외에 다른 게 없어서다. 증권사를 중심으로 전단지가 펼쳐지면 그게 돈을 불리는 펀드매니저들이 모인 룸살롱에서 퍼져나가던 때였다. 고급 유흥주점을 찾는 고객은 변호사, 의사, 교수들이었고 그중에서도 VIP들이 가는 곳이 텐프로 주점이었다. 금융위기가 터진 1년 뒤를 내다보지 못하고 화려함이 절정에 달하던 시기에 벌어졌던 실화들. 남자들도 명품구두인 '발리'를 찾으며 BMW가 본격적으로 늘어나던 시절이었으니.



하지만 십여 년이 지나 이 영화를 보고 나니 이 영화의 메시지를 객관적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일단 영화가 만들어진 2007년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이었다. 그때는 무한성장의 환상이 우리를 사로잡았을 때다. 사람들은 747 공약을 내건 이명박 후보에게 몰표를 주었다. 747 공약이란(7% 경제성장, 국민소득 4만 달러, 7대 강국) 경제공약 비전으로 연평균 7% 경제성장을 달성해 10년 내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의 7대 경제강국시대를 열겠다는 것이었는데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좌초되었다. 어쩌면 애초에 불가능한 목표였는지도 모른다. 청계천에서 빈민운동을 했던 김진홍 목사마저 이런 자본주의의 환상을 지지했으니 이제 와서 누구를 꼬집겠는가.


당시 젊은이들은 실제로 돈이 없으면 빌려 쓰고 갚기 위해 쉽게 버는 길을 찾았었다. 그 시대상이 그대로 녹아있는 영화를 지금 세대들은 이해하지 못할 것 같다. 거리에 늘어나던 BMW가 고작 십년만에 천만원도 안되는 중고차로 전락한다는 것을 누가 생각했겠는가자본은 유행을 부추기고 다시 그 유행을 스스로 파괴한다. 



결국 윤종빈은 목이 말라 바닷물을 마셔버린 바보들의 이야기를 담은 듯하다. 마실수록 더 목이 마른. 아무리 돈을 모아도 깨진 항아리에 물 붓기 식인 십여 년 전의 흥청망청 시대를 너무나 잘 그렸다. 그에 비하면 지금 청년들은 검소하고 모범적이다. 아니 허황된 꿈조차 꿀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 초저금리에서 허덕이며 로또와 가상화폐만이 희망인 젊은이들에겐 미래를 이야기 하기 어렵다. 그런 지금 세대들에게 영화 속 두 남자는 한마디로 쓰레기다. 강남 쓰레기. 그럼에도 한때 강남에 그토록 쓰레기같은 언니오빠들이 넘쳐났다는 건 영화로 기록될 만하다. 그게 진정한 강남스타일이라고 우긴다면야 할 말 없겠지만. 여전히 구찌와 샤넬만 있으면 행복하다고 스스로를 속인다면야 백약이 무효하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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