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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문 Oct 14. 2023

새장과 날개 사이

영화 <틱. 틱. 붐>의 재능


천재 뮤지컬 작가 조나산 라슨의 이야기를 그린 <틱. 틱. 붐>은 현실과 이상사이에서 번민하는 젊음을 그린 웰메이드 뮤지컬이다. 감독은 린 마누엘 미란다. 틱. 틱. 붐은 그의 귀에서 들리는 째깍째깍 하는 이명을 뜻한다.


먼저 이런 뮤지컬을 만들어내는 할리우드 시스템, 인적자산이 부럽다. 그리고 주연인 존(앤드류 가필드)을 포함, 배우들이 어찌나 노래를 잘하는지 시종 감탄이 흘러나온다. 예를 들면 어느 평범한 일요일 브런치, 즉 존이 서빙하는 문댄스 레스토랑의 일상을 한 편의 뮤지컬로 장착하는 기술이 놀랍다. 



맨해튼. 그곳은 꿈의 도시이자 냉혹한 서열의 거리였다. 수많은 예술가들이 태어나는 동시에 한쪽에선 소멸한다. 아예 데뷔조차 해보지 못하는 아티스트들이 별처럼 많다. 그 가운데 존(조나산)이 서 있다. 그는 머릿속에서 언제나 뮤지컬 각본을 구상한다. 8년째 계속되는 그 일에 서서히 지친 주변 친구들은 하나둘씩 다른 길을 선택한다. 그리고 존이 가장 사랑했던 아티스트 수전(알렉산드라 쉽)도 음악 강사의 길을 찾아 떠나는데..



이런 말을 하면 좀 미안하긴 하지만, 역시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작은 일반 영화와는 수준이 다르다. 바로 직전 보았던 어떤 과도한 액션영화와는 몸이 반응하는 태도가 다르다. 해마다 수만 편씩 쏟아져 나오는 할리우드 영화에 대한 감식안은 그래서 매우 중요하다. 우리의 시간과 뇌의 작용, 그것이 현실에 순기능을 주는 것까지 생각한다면 우리는 영화 큐레이터들에게 감사해야 한다. 



한편 존이 그리도 꿈꿨던 각본 <슈퍼비아>는 죽어가는 지구를 은유한 작품이다. 어렵게 얻은 워크숍을 개최하지만, 그렇게 철학적이고 심오한 주제는 흥행과는 거리가 있어 평론가와 제작자들은 칭찬을 하지만 동시에 타골명언을 날려준다. 


"연필 날카롭게 깎아. 네가 잘 아는 걸 써.."


각본을 웍샵에서 선보이는 것은 '타임스 광장에서 내시경 하는'것처럼 작가를 발가벗기는 일이다. 결국 8년간 매달린 작품은 무대에 오르지 못하고 프레젠테이션에서의 임팩트로 막을 내린다. 




그런 와중에 죽마고우인 마이클이 에이즈 양성반응을 보이고, 사랑하는 수전이 떠나가면서 존의 삶은 처참하게 바닥을 친다. 그러나 그런 악재들은 역설적으로 그에게 새로운 창작의 불씨를 안겨준다. 그렇게 탄생한 작품이 12년간 브로드웨이를 누빈 "렌트"다. 토니상 4개 부문과 퓰리처상까지 휩쓴 그 전설의 뮤지컬을 존 자신은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다. 공연전날 그는 대동맥파열로 인한 뇌출혈로 사망한 것이다. 



"렌트"는 기존의 뮤지컬 형식과 스토리를 혁신한 기념비적인 명작으로 기록된다. 하지만 그런 명작의 탄생 이면에는 피를 짜내는 창작자의 고통이 있었다. 그리고 단순히 머릿속이 아닌 현실의 체험적 고통과 실연의 아픔이 녹아 있었다. 영화 속에서 존은 이렇게 말한다.


"왜 우리는 불 속에 손을 넣을까? 고통스러운 것을 알면서도. 그건 바로 새장과 날개 중에서 어느 것을 선택하느냐의 문제이다. 재앙이 와야만 혁명이 일어난다. 왜 피를 흘려야 하는지 체험해야만 보이는 것이니까."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은 윌 스미스에게 돌아갔지만, <틱틱붐>의 앤드류 가필드도 충분히 수상할 만했다. 그는 맡겨진 배역에 99% 빙의하는 놀라움을 선보였다. 1990년 서른 살의 존 라슨, 그 광기 어린 시선과 인스피레이션이 가필드를 통해 그대로 전해오는 듯했다. 가필드가 잘하는 연기는 이런 것이어야 했다. 스파이더맨이 아니고. 가필드, 네가 잘하는 걸 해. 다음에는 상 탈 것 같아... 굿 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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