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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문 Oct 27. 2023

'로마'니까 가능한 스토리

<로마 위드 러브>의 낭만



한국에서 국제학회를 개최했을 때의 일이다. 이탈리아에서 온 친구가 서울을 너무 좋아하는 것이었다. 저녁때 다른 나라 친구들을 데리고 홍대입구를 가겠다고 난리였다. 그에게 물었다. 넌 모던한 도시가 좋니? 너희 나라 멋지잖아. 그 친구는 답했다. 콜로세움? 유적? 맨날 봐라. 질린다. 변화하는 게 멋진 거야.


그렇다. 로마는 시간이 멈춘 도시다. 그럼에도 관광객들은 로마에서 빨리 유적을 보고 싶어 마음이 조급해진다. 역사와 문화가 농축된 그곳에선 뭔가 특별한 일이 벌어질 것 같다.



우디 알렌이 연출한 <로마 위드 러브>는 도시자체가 낭만으로 가득한 로마에서 우연히 사랑에 빠지는 사람들을 그린 코미디다. 하지만 그 배경이 로마가 아니라면 그런 농담은 1도 통하지 않았을 것이다. 로마니까 가능한 코미디다. 


뉴욕에서 로마로 여행 온 헤일리는 미켈란젤로라는 로마 남자와 우연히 만나 사랑에 빠진다. 그들의 초대로 헤일리의 아버지인 우디 알렌이 로마에 온다. 1977년 <애니홀>에서부터 지금까지 일관되게 신경증적인 역할을 해 온 우디. 미켈란젤로의 아버지가 장례업을 하는 것을 알고 무시했지만 그가 목욕하며 부르는 오페라 솔로를 듣고는 그의 목소리에 매료된다. 음반 기획자였던 우디는 그를 끝까지 설득해서 무대에 서게 만든다.


로베르토 베니니는 평범한 로마의 시민이자 직장인이다. 어느 날 꿈같은 일이 벌어져 자신도 모르게 스타가 되어 기자들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다. TV인터뷰도 하는데 아침은 뭘 드셨냐는 질문에 식빵과 카페라테라고 하자 사람들이 감동한다. '어머, 식빵이래 식빵~.'



알렉 볼드윈은 젊은 날의 자신으로 보이는 젊은이를 만나 감정적인 사랑을 경계한다. 하지만 로마에서 그게 쉬울까. 애인의 친구의 매력은 치명적이라 제시 아이젠버그는 불같은 사랑의 늪에 빠져든다.


시골에서 로마로 스카우트 제의를 받아서 온 젊은 부부는 로마의 복잡한 거리에서 길을 잃고 자신들의 정체성까지 잃을 지경에 놓인다. 매혹적이고 화려한 셀럽들이 넘쳐나는 이 도시에서 자신들이 심하게 왜곡되는 것을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영화는 로마라는 오랜 유적의 매력도시와 거기에서 잠시 머물다 가는 짧은 인생을 비교한다. 그리고 바닷가의 모래만큼이나 많은 사람이 지나쳤을 로마의 유적을 카메라에 담아 누군가에겐 추억을 안겨주고 누군가에겐 여행을 떠나고픈 자극을 안겨준다. 콜로세움, 트레비 분수, 스페인계단, 캄피돌리오 광장 등 로마의 볼거리가 들어올 때 우린 다녀왔던 그 시간을 기억하거나 값싼 에어티켓을 검색하고픈 충동을 느낀다.


하지만 영화는 로마와 로마에 살면서 한껏 부풀어 오른 셀럽의 삶을 철저히 구분한다. 유명인으로서 누리는 특권이 권력이 되어서는 안 되고 그걸 지나치게 부러워해서도 안된다는 걸 강조한다. 심지어 유명인이 무엇을 먹는지까지 관심을 가지는 일반인들의 지나친 관음증에도 일침을 가한다. 셀럽의 시시콜콜한 일상을 파헤치는 인*그램의 폐해를 우디 알렌은 이미 예언했다. 또한 인간의 재능을 그저 바라보지 못하고 사업으로 엮으려는 비즈니스 우선주의도 비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관객을 홀린다. 진짜 스타가 된 것 같고, 기가 막힌 미녀가 내 호텔방에 들이닥칠 것 같고, 유명 연예인과 데이트를 하게 될 것 같고 넘어서는 안될 관계의 선을 넘어도 될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왜냐고? 이곳이 바로 로마니까.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에선 정말 꿈같은 일이 벌어질 만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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