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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문 Feb 12. 2024

시민덕희-무능한 공권력에 대한 일침


보이스 피싱 대출사기로 3200만원을 입금한 덕희(라미란)는 뒤늦게 사기임을 알고 졸도한다. 아이둘을 건사하면서 세탁회사에서 일하는 덕희는 경찰서에 찾아가 박형사(박병은)에게 호소해 보지만 다른 업무에 치인 경찰들은 이 사건을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태생이 바지런하고 응답빠른 덕희에게 사기범 손대리(공명)는 조직에서 탈출을 원한다며 도와달라고 하지만 경찰은 믿지 않는다. 칭따오에 있는 조직을 검거하려면 총책(이무생)을 잡아야 하는데 그러려면 현장을 덮쳐야 한다. 보다못한 덕희는 조선족 출신 동료 봉림(염혜란)과 의리있는 숙자(장윤주)와 함께 칭타오로 건너가서 춘화루라는 식당을 모조리 뒤지는데....

박영주 감독의 장편 데뷔작 <시민덕희>는 설 연휴에 사전 정보없이 극장에 갔다가 제대로 건진 작품이다. 일단 실화를 바탕으로 한 줄거리라 기름기가 적고 단백질은 풍부하다. 사건 깊숙이 들어가면서 어둠의 실체가 보이고 도저히 이길 수 없는 거대한 벽에 부딪히는 느낌이 든다. 중간중간에 깨알같은 개그코드들이 작열하는데 부담감이 없다. 사실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웃음은 나오는 법이니까.



포스터만 보면 명절 훈훈한 가족 영화같지만 오분만 지나면 이게 실화 기반의 범죄 스릴러라는 걸 알게 된다. 다만, 너무 어둡고 습하지 않고 정의감과 허탈감이라는 냉탕과 온탕을 오간다. 그러다가 중국 칭타오의 조직을 폭로하려는 손대리(공명)를 본 순간 '와! 이거 재밌어지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명이 누군가.  데뷔작 <수색역>에서 강렬한 눈빛을 날리면서 가슴에 외마디 비명을 던졌던 연기파 배우니까. 이번에도 공명은 덕희와 함께 줄탁동시로 펼치는 멋진 콜라보 연기를 선보였다. 손이 후들거릴정도로 떨리는 장면도 나온다.



하지만 이 영화는 무능한 공권력에 대한 풍자가 절반 이상이다. 유사한 일을 겪어본 분들이면 우리나라에서 경찰이 과연 시민을 위해서 존재하는지 의문이 든다. 너무나 많은 간접 사건들을 겪어서 그런지 경찰의 손은 똥손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똥손이라도 적극적인 도움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오죽하면 보이스 피싱 총책을 잡으러 세 명의 여인들이 출동해야 했을까. 저마다 필요한 장비(망원렌즈 카메라)와 치밀한 계획까지 만들어서 말이다. 경찰은 마지막까지도 느리고 답답하다. 도무지 융통성이 없으니 환장할 노릇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는 시민들이 직접 나서는 일이 허다한 것이다. 하지만 그러려면 대단한 용기와 각오가 필요하다.



며칠전 칭타오 맥주와 양꼬치를 먹었는데 영화속 칭타오는 꽤 멋진 도시였다. 양꼬치도 맛있을 것이다. 하지만 각종 조직범죄들이 알을 까는 곳도 칭타오라니 무시무시하다. 게다가 조직들은 공안과도 통하는 듯 보인다. 한국은 공조수사에서 난조를 보이며 곳곳에서 행정편의주의가 난무한다. 확실한 증거를 봤음에도 불구하고 절차대로만 하면 피해자는 골든타임을 놓치고 만다. 영화속에서 만난 경찰들을 보면 고구마 먹다가 목이 콱 막히는 느낌을 경험하실 것이다. 극 중 염혜란이 소화가 안되고 가슴이 콱 막혔듯이.


* 라미란의 대체불가한 역할과 염혜란의 중국어 실력 좋고, 장윤주는 베테랑에 이어 정의의 여전사로 다시 등장한다. 애림역의 안은진도 짙은 인상을 남긴다. 박영주 감독의 연출도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 오백만은 갈 듯 하다. 오후 2시에 매진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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