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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은 Apr 07. 2024

유학생 우울 투병기

말레이시아 정신과 진료 후기

    학교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다. 입시를 하던 중 학교에서 내 성적, 그중에서도 예상 점수를 실제 성적보다 낮게 입력하여 영국 대학교들에 제출한 것이다. 

    벌써 몇 주나 지났지만, 아무래도 알게 모르게 내 무의식이 영향을 받아 우울의 형태로 돌아온 모양이다. 성적 입력 실수에 대해서는 나중에 깊게 설명하기로 하고 - 마음의 준비가 된다면 말이다 - 오늘은 잠깐 이 우울증에 대하여 글을 써보려고 한다. 약을 받기 위해 찾아간 말레이시아 현지의 정신과 의사 선생님께서는 한국에서 뵌 정신과 선생님과는 굉장히 달랐고, 선생님의 상담에 상당히 좋은 인상을 받았다. 

    성적 입력 실수가 있고 나서 며칠 이후, 잠시 학교를 떠나 한국의 본가에서 일주일 정도 생활했다. 충격이 컸기에 잠시 휴식을 취한다는 명목이었다. 그때에 내가 받은 '충격'에 대한 진단서 기록을 남겨 두기 위해 본가 근처의 정신과에 찾아가게 되었다. 계획대로 스트레스에 의한 증상이 물리적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진단받았다. 다만 추가로 어릴 때부터 우울의 정도가 상당히 높은 편이라는 진단 또한 받았다. 항우울제를 받아야 할 수준이지만, 곧 말레이시아로 다시 떠나가야 하니 현지에서 꼭 다시 진료를 받으라는 말씀이셨다. 

    그리고 말레이시아로 돌아온 후 여러 주가 지난 지금, 우울증이 도지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모의고사에, 끝마치지 못한 진도를 전부 따라잡느라 정신없던 시간이 지나서 그런지, 혹은 월경에 의한 호르몬 변화에 영향을 받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무엇에도 집중하기 싫었고 그럴 마음도 들지 않았으나 겨우 근처의 정신과 의원을 검색하고 예약하였다. 그날은 학교에서 준비하는 뮤지컬 리허설이 끝나기 전에 예약 시간에 맞춰서 연습을 빠져나왔고, 시간에 맞게 그곳에 도착해 접수를 했다. 20분, 30분 정도 내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한 가족과 선생님이 계시는 상담실에서는 웃음소리가 새어 나와 나 또한 웃음 짓게 했다.

    '중국어가 아닌 영어일까요?', 서로 인사를 나눈 뒤 의사 선생님의 첫 질문이었다. 선생님의 첫인상은 이곳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중국인 아저씨의 느낌이었다. 대머리에 푸근한 인상, 웃음 짓는 표정이 익숙한 얼굴에 조금 안심되었던 것 같다. 곧바로 어떤 일로 찾아왔는지 대화를 시작했고, 증상뿐만이 아니라 나의 배경에 대해서도 선생님께서는 찬찬히 메모하셨다. 학교의 실수에 대한 이야기에서는 우리 둘 다 어이없는 웃음을 나눴고, 농담을 주고받았다. 울음이 필요한 순간들에는 내가 다시 말을 잘할 수 있을 때까지 차분히 기다려주셨다.

    12살, 13살 무렵부터 우울감이 시작되었다는 말에 선생님께서 짐짓 놀란 기색을 보이셨고, 내가 가진 증상이 어떤 것인지 파악하기 위한 질문이 이어졌다. 선생님의 결론은 호르몬에 의한 우울증으로 보인다고 하셨다. 어릴 적부터 시작되었고, 딱히 큰 계기 없이 시작되는 우울증이라는 것이다. 물론 살면서 생기는 여러 가지 일들에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는 것이 우울증이지만, 딱히 '친구나 가족과의 싸움', '성적 문제' 등이 우울의 시발점이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동의하였다. 선천적으로 뇌에 필요한 특정한 호르몬이 부족하게 분비되기 때문에 그런 특징이 나타난다고 한다. 이 우울증을 가진 사람들이 별다른 문제가 없어 보이는 삶을 산다는 것과 또래보다 차분하고 성숙하다는 점 또한 나와 같았다. 

     항우울제 등 약이 도움이 될 거라고 하셨다. 약은 시험 기간인 것을 고려해 최대한 빨리 도움을 줄 수 있도록, 그러나 몸에 부담이 가지는 않을 정도의, 그리고 동기 부여에 도움이 될 것을 골라 처방해 주셨다. 아직 투약을 시작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변화가 느껴지지는 않는다. 오늘도 공부를 위한 동기 부여는 딱히 느껴지지 않았으며, 느껴지는지 모르겠지만 이 글은 꽤나 꾸역꾸역 작성되고 있다. 

    언급하였듯이 한국의 진료와는 큰 차이가 있다고 느꼈던 점이 나에게 굉장히 흥미로웠다. 한국의 상담은 건조한 편이었고, 증상과 필요한 처방 위주의 대화가 진행되었으며 전형적인 정신과 의사의 역할만을 수행하는 선생님이셨다. 개개인의 성향 차이일 수도 있지만, 말레이시아의 선생님께서 사사로운 이야기도 즐겁게 들어주셨고, 함께 재미를 느끼며 대화를 나눌 수 있었던 점에서 나는 더 높은 평가를 드리고 싶다. 누군가는 필요한 것을 빠르게 결론지을 수 있는 한국의 상담을 더 선호할 것이다. 그보다 궁금한 점은 이러한 차이가 단순히 의사 선생님의 성향 차이인지, 혹은 나라 간의 분위기 차이에 의한 것인지였다. 나는 후자라고 생각한다. 

    아직도 나의 가족은 우울증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고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나를 대하지는 않기 때문에 이로 만족할 수밖에 없지만. 내가 조금 더 어릴 때 우울증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던 아빠와는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게 너무도 불편하다. 엄마는 우울증 약에 의존하게 될 것이라며 투약에 대해서도 좋게 생각하지 않고 있다. 이곳에서 만난 국제적 배경을 가진 친구들은 더 개방적이고 이러한 질환에 익숙하기 때문에 나를 대하거나 우울증에 대해 이야기할 때에 어떤 위화감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런 것들이 다르다. 

    '투병기', 제목과는 달리 꽤 짧은 시간 동안 일어난 일들을 다룬 듯하다. 어쨌든 나는 지금 공부를 해야 하는 상태이고 다양한 결정의 책임을 안고 있으며 여전히 하고 싶은 일도 많은 사람이다(우울증이 심할 때에는 그렇지 않지만 지금은 조금 나아진 모양이다). 약이 하루빨리 도움이 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나뿐만이 아니라 모든 우울증 환자들이 알맞은 처방을 받고 어떠한 편견도 없는 곳에서 나아지기를 기도하겠다. 


    이야기의 가치를 아는 당신께서 제 이야기에 공감하여 누르는 구독과 라이킷은 현재 말레이시아 유학 중인 제게 큰 도움이 됩니다. 제 이야기를 읽으며 흥미로우셨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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