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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자차 Feb 12. 2022

영화 듄 후기 (10)

10편. 감상평 - 어쩌면 끝없는 줄다리기(4)

그래서 레토가 말했듯 우린 어떤 선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 것 같다. 그들이 그토록 사막의 힘을 협력을 통해 얻고자 했던 것도 자신들을 번영의 길로 이끌 존재를 만들고자 했던 것도 결국은 같은 이유라고 봤다. 하코넨 남작 같은 선택은 파멸을 가져올 것이기에 현명한 레토는 다른 길을 찾고자 했겠지. 비록 그는 죽었지만 그의 유언과 반지는 폴에게 고스란히 전해졌으니 남작과는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 폴에게 걸어보라고 얘기해주고 싶다. 그가 정말 퀘사츠 헤더락이라면, 모하임과 베네 게세리트의 바람대로 그들을 더 나은 길로 이끌 존재가 바로 폴일 테니까. 그런데 정말로 외계에서도 인간의 세상에서 통용되는, 선을 향한 순수한 목적이 통할까. 외계인이라고 칭하는 생명체들은 무엇을 추구하며 살까. 그들은 도덕을 뛰어넘은 존재일까. 여러 도의적인 기준에 어긋나지 않으면서도 순수하게 자신들의 운명을 추구하는 존재들일까. 죽기 전에 외계인을 볼 수 있다면, 꼭 만나서 함께 차를 마시면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싶다. 언젠가 지구를 방문한 외계인이 방송에 출연해서 TV로 그들의 삶을 알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다. 


아무튼 하코넨 남작의 이러한 과거의 행적들은 후에 커다란 운명의 사건으로 그들에게 돌아갈 것 같다. 어쩌면 그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아라키스에서 작아진 자신들의 입지가 아닌, 스스로 눈덩이처럼 불려온 자신들의 업이 아닐까 싶다. 그것 또한 운명이라고 할 수 있기에 말이다. 내가 운명을 만들며 키워 온 업은 과연 선업일까 악업일까. 권선징악이 될 것이기에 하코넨 남작은 죽게 되겠지만, 그 인물의 삶과 업에 대해선 생각해볼 필요가 있겠다. 폴이 하코넨 남작과 다른 길을 걷고자 한다면, 필연적으로 그 업에 대해 고민해야 할 것이고 어떤 노선을 따를 것인가 하는 선택의 순간이 올 테니까. 남작은 그 순간에 오늘의 길을 선택해서 그 육중한 몸에 업이 쌓인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운명이라는 것은 실상 대단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어떤 하늘의 계시나 벼락처럼 다가오는 순간이 아닌, 우리가 여태 길러왔던 우리의 삶의 희미했던 모습이 점차 선명해지는 것을 ‘운명’이라고 말한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가볍게 ‘운명의 무엇’이라고 표현하곤 하지만, 정말 그것이 운명이 되려면 결국 그 운명을 겪는 사람의 담담한 자세와 끈기 있는 태도가 필수적이란 생각이 든다. 그 운명을 마주할 용기가 없는 사람에겐 그것은 더이상 운명이 아닌, 그저 두려운 존재일 뿐일 것이다. 어디선가 이런 말을 들었다. 시작은 운명적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이후는 모두 현실이다. 그렇다면 우린, 운명을 어떤 자세로 맞이해야 할까.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폴처럼 행동할 것이냐 하코넨 남작처럼 행동할 것이냐는 단순한 게 아니라, 나와 내 운명과의 끊임없는 줄다리기를 하는 시간일지도 모르겠다.


듄 감상문 끝~!


2편은 2023년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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