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자차 Feb 12. 2022

영화 듄 후기 (9)

9편. 감상평 - 어쩌면 끝없는 줄다리기(3)

반면 하코넨의 운명은 어떨까. 영화에서 아트레이데스 가문과 반대에 위치한 하코넨은 악의 축으로 등장한다. 그런데 이 가문도 참 특이한 구석이 있다. 폴은 그가 한 선택이 운명을 만들어간다고 요약한다면, 하코넨은 운명을 위해 선택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코넨 남작이 했던 ‘나의 듄이다,’라는 대사에서 드러났듯, 그는 아라키스를 자신의 운명으로 만들기 위해 선택을 했다는 얘기다. 남작에겐 운명이란 목적을 이루기 위한 신화였다고 생각한다.


식민지를 정당화하기 위해 갖가지 이유를 덧붙이듯, 남작도 아라키스를 소유하기 위해 자신의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싶었을 것이다. 남작의 행동이 애초에 확실한 욕망에서 비롯되었는지 아니면 단순히 스파이스를 채취하다 다른 생각도 들었는지는 영화에선 나오지 않지만, 그가 80년간의 행동을 합리적이고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싶어한다는 것은 잘 드러난다. 남작이 도의에 어긋나는 일을 해서 그렇지, 그것만 제외하고 보면 운명의 또 다른 시각을 발견할 수 있다. 나는 하코넨 남작에게서 ‘어쩌다 보니 그것이 내 인생’이라는 말을 떠올렸다.


가끔 그런 적이 있지 않나. 주변 사람들에게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묻다 보면, 다들 나름의 합리적인 이유는 있는데 정말 자신의 선택에 확신을 가질만한 이유는 잘 없을 때도 보인다. 가령 직업을 선택할 때, 혹은 진로를 선택할 때 그런 경우를 볼 수 있었다. 원하던 진로는 A였는데 어쩌다 보니 B를 선택하게 되었다던가, 원래는 B를 했는데 어느 순간 C를 하게 되었다던가, 원한 것은 C였는데 이상하게 내 삶은 뭘 해도 D의 방향으로 흘러가는 경우 말이다. 이럴 때 우리는 생각하지. 이렇게 될 것이 내 운명이 아니었을까. 혹은 상상력이 풍부하다면 이런 생각도 한다. 누군가가 내 삶의 초침을 건드렸던 것 같아, 라고.


그런데 이런 것을 운명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 내가 선택한 것만이 나의 운명이 될 수 있는 걸까. 어쩌면 내 의도나 목적과는 다르게 흘러가도 내가 그것에 만족한다면, 그 속에서 다른 목표를 발견하고 그것을 이루려고 노력한다면 그것이 나의 운명이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솔직히 모두가 영웅이 될 필요는 없으니까. 영웅이 흔하다면 세상이 더 정의로워질 수 있겠지만, 보도 사이의 들풀은 누가 발견할 건데? 하늘에 떠다니는 식빵을 닮은 구름을 보며 맛있다고 생각하고 집에 가서 빵을 굽고 이걸로 ‘나는 제과제빵의 천재인가봐’라는 생각은 누가 할 거냐 이 말이다, 가볍게 말하자면. 폴의 운명이 거창한 어떤 것을 위한 시초라면 하코넨 남작의 운명은 우당탕탕 빙글빙글 흘러가는 우리네의 삶과 가장 비슷한 운명일지도 모르겠다. 아 물론 그가 한 나쁜 짓은 에어프라이어에 바삭하게 날려버리고!


늘 창백하고 화난 사람들...


작가의 이전글 영화 듄 후기 (8)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