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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자차 Feb 12. 2022

영화 듄 후기 (8)

8편. 감상평 - 어쩌면 끝없는 줄다리기(2)

그런데 운명이 참 가혹할 때가 있다. 벽에 부딪히는 것은 예삿일도 아니고 뜻대로 풀리지도 않을 때가 더 많다. 폴도 그랬다. 하코넨에게서 겨우 탈출하니 모래폭풍이 기다리고 있었고, 아슬아슬하게 샤이 훌루드를 피했으며, 프레멘의 자니스와 맞붙게 되었다. 이 순간에 한 폴의 선택이 이상적이지도 않았다. 오히려 현실적이었고 침착했다. 거대한 모래 폭풍은 피할 수 없을 정도로 가까웠고, 샤이 훌루드는 빠르게 쫓아왔으며, 자미스는 자신의 목숨을 걸면서 폴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때 폴은 어떤 행동을 해야 했을까. 나는 영화처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른 선택보다도 가장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고 한다. 눈을 뜬 순간부터 감는 순간까지 매사에 선택을 해야 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정말 맞는 말이다. 아침에 일어날 것인지 잠을 계속 잘 것인지도 선택이며 밥을 먹을 것인지 안 먹을 것인지도 선택이다. 혹자는 그건 당연한 것이고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항변할 수 있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당신은 그 순간 일어나기로 결정했고, 밥을 먹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건강을 유지할 수 있었고 성실하단 평가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당신이 한 그 선택 때문에.


만약 우리가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선택을 했다면 결과는 어땠을까. 마냥 꿈만 꾸는 선택을 했다면? 운명이란 말처럼 꿈이란 말도 참 낭만적이기 그지없다. 영화는 첫 대사인 ‘꿈은 심연의 메시지다.’와 달리 끝없는 폴의 현실을 보여준다. 네 꿈으론 퀘사츠 헤더락이 된 네가 있겠지만, 그 길을 위해서 너는 끝없는 두려운 현실을 견뎌내야 한다는 것을 대모 모하임이 곰자바를 통해 일깨운다. 하코넨은 제시카와 폴을 아라키스의 사막에 던져 놓으며 그들이 처한 현실을 알린다. 사막은 약한 자를 살려두지 않는다고. 그러나 폴은 스파이스를 통해 보이는 자신의 미래에 현혹되지도 않았고, 마냥 이 순간이 나아지길 얌전히 기도한 것도 아니었으며, 길을 더 꼬이게 할 선택을 하지도 않았다. 폴과 제시카가 바위에 올라가 사막수트로 갈아입는 장면에서 확인할 수 있다. 누군가라면 여전히 당황하고 어머니 뒤에 서서 의지하며 떨었을 그 순간에, 폴은 마치 자신이 당연히 해야 할 일처럼 여기며 수트로 갈아입고 사막을 건넜다. 제시카는 이 순간에 정말 이 아이가 퀘사츠 헤더락일 것이라는 확신을 가졌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우리의 운명에 확신을 더해줄 이성적이고 현명한 선택을 해야 한다고 폴이 말해주는 것 같았다. 


혹자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그가 과제를 해결할 수 있었던 것 또한 그가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운명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되묻고 싶다. 우린 우리의 삶에 생겨났던 과제를 어떤 시선과 태도로 대면했던가. 나는 폴에게서 그 담담한 용기를 발견했다. 초반엔 자신의 운명을 부정하고 두려움에 떨었지만 이내 ‘나의 길’이라고 인식했다. 아버지의 죽음과 던컨이 자신을 도련님이 아닌 ‘나의 주군’이라고 불렀을 때, 그는 레토가 했던 ‘지도자는 부름에 답하는 존재.’라는 말이 떠올랐을 것이다. 제시카의 ‘두려워하지 말라’는 기도문도 일맥상통한다. 폴의 운명은, 그 선택에 기꺼이 용기를 더했기 때문에 그가 퀘사츠 헤더락이 될 운명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던컨도 폴도 이 행동을 취하는 것으로 봐선 아트레이데스 사람들의 규칙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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