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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자차 Feb 12. 2022

영화 듄 후기 (7)

7편. 감상평 - 어쩌면 끝없는 줄다리기(1)

듄 1편은 폴을 통해 우리에게 어떤 말을 하고 싶었을까. 나는 예고편에 나왔던 ‘두려움을 넘어 운명과 마주하라.’라는 문장이 정말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고 느꼈다.


운명이라는 것은 어감상 참 낭만적인 느낌이다. 이건 운명을 사랑과 직결한 매체들이 많아서 우리의 머릿속에 그렇게 인식된 것 같은데, 사실 운명은 그 길이 행복이 아닌 이상, 한 인간의 삶을 구속하는 모순적인 단어로 해석할 수 있다고 본다. 개인마다 행복의 기준이 다른 요즘엔 운명 자체가 두렵고 무겁게 다가올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원치 않는 과정과 결말이라면 그 운명이 더욱 가혹하게 다가올 수도 있겠지. 폴도 처음엔 자신의 운명에 큰 두려움을 느꼈으니까 말이다.


그렇다면 운명은 어디서부터 시작되는 걸까.


영화에선 마지막 장면에 차니가 폴과 제시카를 데리고 가며 ‘이제 시작이야,’라고 했지만 사실 폴의 운명은 그 전부터 이미 시작된 것임을 영화 내내 모하임과 제시카, 레토가 알린다. 제시카는 자신의 시점에 퀘사츠 헤더락이 태어날 수 있는 징조를 느꼈기에 딸이 아닌 아들 폴을 낳았고, 모하임은 제시카의 선택에 화를 내면서도 폴의 운명을 시험하기 위해 길을 닦아 놓았다. 레토는 모든 것을 짊어지고 아들 폴을 지켜달란 약속을 요구한다. 리산 알 가입. 폴은 미신을 심어 놓았다고 평했지만, 그건 폴이 운명적으로 아라키스에 올 사람이었다는 것을 뜻한다. 과정이 어떠했든 폴의 시점은 늘 ‘운명적인 것’이 따라다녔다. 늘 꿈에 나오던 자신을 부르는 아라키스의 한 소녀와 던컨의 예고된 죽음은 그를 아라키스의 ‘리산 알 가입’으로 강하게 이끌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사막 텐트에서 폴이 두려움과 혼란을 느낀 것은 자신에게 보인 미래의 원인이 그저 평범하지만 조금은 특이한 것으로 오인했던 본인의 모든 것이라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한편으론 이런 의문이 든다. 누군가가 닦아 놓았던 길을 폴이 따라갔기에 아라키스에 간 것이 그의 운명적인 노선이었다고 한다면, 아라키스에서 폴에게 펼쳐진 상황들은 즉, 하코넨이 폴과 제시카의 생사에 관여하게 된 후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은 과연 정말로 폴의 운명에 써있던 일이라고 할 수 있을까.


우리의 운명은 이미 시작되었을까. 태어난 환경, 물려받은 유전자, 경험했던 다양한 순간들, 가정과 기관의 교육, 교유관계, 어려운 순간, 극복의 노력 등 영화에선 생략됐지만, 폴도 이런 과정을 거쳤을 것이다. 돌아보니 우리도 마찬가지 아닌가. 양과 질은 다를지라도 각자 비슷한 순간들을 지나왔다. 누군가는 여기에 더해진 것과 빠진 것도 있을 테지만 어쩌면 그것마저도 나를 만든 요소들이며 내 운명을 만들 기초작업이 되었다. 나의 의지가 아닌 타인의 의지에 의한 작업물이 완성된 셈이다.


폴은 열다섯살에 아라키스에서 멸문지화를 겪으며 처음으로 자신의 선택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예를 들자면 모래 폭풍 속으로 들어가는 것, 모래 벌레가 언제 나타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자신이 가진 구호용품과 그동안의 지식을 활용해 사막을 건너는 것, 자미스와 결투 후 칼라단으로 돌아가자는 제시카의 말에 아라키스에 남겠다고 말하는 것 말이다. 나는 폴의 운명이 이때부터 시작되었다고 생각한다. 환경은 말 그대로 환경일 뿐, 타인이 조성한 환경은 독립하기 이전까지 살아야 하는 무대이지, 내가 평생 살아야 하는 장소는 아니다. 내가 살아야 하는 장소는 오로지 나의 선택으로 형성된다.


그래서 십대 이전이 아닌 십대 이후, 즉 이십대부터의 시간이 진짜 자신의 운명을 만들 무대라고 생각한다. 지질하게도 청년기 이전의 상황이 끝없이 내게 영향을 끼치고 발목을 잡겠지만, 그 고리를 끊고 나아가는 것은 폴의 선택처럼 오로지 나의 몫이다. 혹시 지금 과거의 기억이 나를 붙잡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말해주고 싶다. 스무 살이 된 이상 넌 너의 뜻대로 모래 폭풍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샤이 훌루드를 피해 사막을 건널 수도 있고, 따뜻한 고향이 아닌 낯선 아라키스에 남아 너의 미래를 설계할 기회를 만들 수 있다고. 그리고 그건 오로지 너의 선택에 달려있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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