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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자차 Dec 19. 2023

[드라마] 낮에 뜨는 달 후기

후기

이상하게 나는 이 그림이 맘에 든다. 출처 : 네이버, 낮뜨달 도하 배경화면


인연이나 환생을 다룬 드라마는 참 많지만, 마냥 아름답게만 그려내는 드라마가 대부분이라 이번 드라마도 그렇게 각색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그 어떤 우여곡절을 겪어도 완벽한 행복의 결말이라면 시청자 입장에서 부담이 적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난 결말이 꼭 행복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매번 드라마를 볼 때마다 조금 더 현실적이기를, 조금 더 열린 결말이거나 다른 결말이기를 바라곤 한다. 만약 환생과 인연을 다룬다고 해도 그것의 명암을 모두 보여줬으면 했다. 그리고 이 드라마는 그걸 잘 보여주었다.

     

영화는 과거에 저지른 업보에 따라 환생을 거듭하는 삶을 살았다. 원한이 생긴 자의 한이 풀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영화의 삶이 반복된 것이다. 그들의 관계는 모두 ‘한’으로 얽혀있는데, 그 시작을 되돌아가면 분명한 원인이 존재한다. 세 사람의 만남이 아닌, 맺어서는 안 되었던 인연을 맺게 된 것이 그 원인이었다.

     

인연이란 무엇일까. 나와 만나는 모든 사람이 나의 인연일까. 나는 인연이란, 스쳐 지나가는 인연과 맺어지는 인연이 있다고 생각한다. 스쳐 지나가는 인연이란 말 그대로 잠시 머물다 지나치는 인연이고, 맺어지는 인연이란 선연과 악연을 모두 합한 인연이다. 여기서 스쳐 지나가는 인연에 하나를 더해야 한다. 바로 악연. 맺어져서도 다시 만나서도 안 될 악연. 내가 먼저 고개를 숙이고 그저 미안하다고 사과를 해서라도 맺어지거나 얽혀서는 안 될 인연. 악연과 선연은 모두 나와 맺어지게 되어있는데, 이 과정에서 악연은 다시 얽히지 않도록 보내주고 선연만 남아 잘 가꾸어야 한다. 저 사람과 내가 악연인 것을 알면서도 오로지 감정적으로 대해버린다면, 나는 또 다시 그 악연과 얽히게 되고 그것은 곧 다음 생까지 이어질 것이다. 다음에 만날 땐 어떻게 만날지 알 수 없는 채로.

     

그렇다면 선연은 모두 좋기만 할까. 그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제의 친구가 오늘의 원수가 될 수 있다는 말은 너무 극단적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선연과 악연의 차이가 그만큼 한순간이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떤 끝맺음을 하는지에 따라서 그 인연의 결과가 달라진다는 뜻일까. 만약 그렇다면 이런 경우는 선연일까 악연일까. 예를 들면, 나는 참 잘했는데 상대방이 그만큼 해주지 못한다거나, 상대의 노력에 내가 부응하지 못한 경우. 아니면 서로 좋게 만났는데 상황이 따라주지 않거나, 서로의 관계와는 다르게 상황이 뒷받침을 해줘서 좋게 풀어지는 경우는 악연일까 선연일까.

     

도하와 영화는 1500년 전 악연으로 만났다. 도하는 영화의 조국과 가족을 죽였고, 영화는 소리부와 도하를 죽였다. 시작과 끝은 악연이고, 그 과정은 두 사람의 애틋한 사랑으로 채웠다. 소리부에겐 이 관계가 더 없을 악연이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죽인 영화의 곁에서 늘 복수를 감행했다. 그런 이유로 영화는 영문도 모른 채 이후의 생마다 서른 살의 생일을 맞이하지 못하고 죽었다. 도하 또한 마찬가지였다. 1500년의 시간은 본래 가졌던 것이 무엇인지도 아득하게 만들며 원망과 증오로 가득 찬 채 영화의 곁에 머물게 되었다. 끊고 싶어도 끊을 수 없는 지독한 인연을 맺게 된 것이다. 세 사람은 그날의 사건을 기준으로 같은 과정을 반복하는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두 사람이 서로 사랑했기에 이 둘의 인연은 선연일까. 만약 영화가 자신의 전생을 기억하지 못했더라면, 이 세 사람의 인연은 과거의 인연과 다를 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가 전생을 기억하게 되면서 모든 것이 바르게 정리되기 시작했다. 1500년 전의 자신을 포함해서 내가 알지 못하는 나에 대한 것을 제대로 바라보게 되면서 현생의 인연과 자신의 삶에 대해 깨달음을 얻었다. 전생을 아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것을 통해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실수를 반복하지 말라는 말은 과거를 통해 깨달음을 얻으라는 말과 같은 말일지도 모르겠다.

     

업보도 그런 것이 아닐까. 업보는 왠지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하는 말 같은데, 사전적인 의미로 보면 선과 악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살면서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으로 행하게 된 선업과 악업을 인과응보의 원칙에 따라 돌려받는다는 뜻이다. 인과응보란, 권선징악과는 다르다. 인연과 업보 또한 권선징악의 개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냥 그 자체로 A가 있어서 B가 생겨났다, 고 생각한다. 마치 시절인연처럼 말이다.

     

시절인연이란 모든 것이 때가 되어 일어난다는 뜻이다. 엇, 그런데 이거 왠지 사주팔자와 비슷하게 들린다. 사주팔자는 내가 가지고 있는 글자 여덟 개와 운에서 들어오는 글자가 있다. 이 글자들은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면서 인간의 삶에 사건과 감정을 부른다. 모든 사람은 각자의 고유한 것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모두가 고유하고 소중하다고 해서 모든 시절을 통틀어 환영받진 않는다. 내가 잘 적응할 수 있는 시절은 내가 가진 좋은 능력들이 잘 발휘할 수 있는 무대가 되지만, 나와 적합하지 않은 시절은 그와 반대가 된다. 좋은 대운에는 잘한 것은 돋보이고 못한 것은 작은 흠결이 되지만, 좋지 않은 대운에는 잘한 것은 그늘에 들어가고 못한 것은 부각된다. 그저 운의 탓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좋은 운이었을 때, 내가 했던 작은 흠결은 누군가에게 큰 피해가 되었을 수도 있다. 내가 좋은 운이라서 그 사람의 피해를 인지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이런 일이 쌓이고 쌓이게 되면, 좋지 않은 운이 들어왔을 때 과거의 일들이 시절인연으로 업보로 내게 돌아오는 것이다.

     

내가 무언가를 잘하게 되었을 때, 민망한 기분과 부끄러운 마음에 ‘다 운이 좋아서다’라고 할 때가 있다. 하지만 정말인지 이 말은 틀린 말이 아니었다. 정말로 운이 좋아서였다. 그럼 좋지 않은 모든 일은 기신운이라도 들어서 그런 걸까. 그렇게 생각하면 모순이 생겼다. 생각 끝에 내린 결론은 이렇다. 좋았던 시기에 내가 누군가에게 끼친 피해를 내가 깨닫게 되는 시간. 마치 시절인연처럼, 내가 주고받은 것을 다시 경험하면서 계속해서 깨달아가는 일이 업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늘 좋지 않던 상황도 어둡고 날이 서 있던 마음도 점차 누그러지며 주변이 보이기 시작했다. 운이 좋아지길 바란다면 내 마음부터 처음과 같은 청정한 마음으로 갈고 닦아야 한다는 것을 서서히 느꼈다. 사주팔자에서 대운은 약 20년이라고 한다. 계산을 해보니 딱 20년이었다. 어두운 터널 속을 이해하게 된 것이.

     

영화는 도하와 얽힌 전생을 깨닫고 도하에게 사과하며 눈물을 흘렸다. 내가 사랑하는 너를 죽였노라고, 미안하다고. 그리고 이내 곧 도하도 깨닫는다. 내가 너의 곁에 머문 까닭은 네가 미워서가 아니라, 너를 지키기 위해서였다고. 두 사람은 함께 살고자 이 악연의 고리를 끊어내기로 결심한다. 그렇게 소리부와의 악연도, 도하와 영화의 악연도 끝난다. 악연이 끊어지며 준오의 몸에서 나가는 도하의 영혼은 오랜 병을 치유 받는 기분이었다.

     

악연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 도하는 자신의 소멸을 선택했다. 가지 말라는 영화의 말에도 붙잡히지 않았다. 내가 도하였어도 그랬을 것 같다. 오히려 가뿐한 마음으로 소멸할 수 있을 것 같다. 영화와의 인연이 완전히 무(無)로 돌아가게 된다면, 정말로 다시 시작하고 싶을 때 무(無)의 상태로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악연의 고리를 끊었으니, 이제 어떤 인연을 만들어가느냐에 따라 달린 것이다. 그 누구의 영향을 받지 않고, 오로지 두 사람의 의지만으로도 가능하다. 만약 두 사람이 다신 만나지 않게 되더라도, 서로를 힘들게 했던 관계가 사라졌으니 그것만으로도 좋은 일이다. 게다가 도하와 영화는 서로의 염원대로, 악연의 고리를 끊고 현생을 충실히 살다가 다음 생에 새로운 인연으로 만나게 되었다. 환생한 모습에서 대학생인 영화와 고등학생인 도하가 만나는 장면은 두 사람을 응원하는 시청자들에게 어떤 안도감을 주었을지도 모르겠다.

     

드라마를 보면서 영화와 도하가 부러웠던 점은 두 사람의 인연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해결을 했다는 점이다. 내게도 알 수 없는 인연과 알 수 없는 것이 몇 가지 있는데, 내 평생 그것을 궁금해하며 살아왔다. 어렴풋이 그게 무엇인지 알 것도 같은데, 해묵은 것이 시원하게 해갈된 것은 아니라서 자꾸만 목이 마른다. 이 드라마를 도하의 입장에서 본 것도, 마지막 장면에서 마음이 조금이라도 가벼워진 이유도 이런 것 때문이다. 나도 알고 싶고, 만나고 싶다. 그래서 결론을 내리고 싶다. 아무래도 일이 이렇게 되지 않은 이유는 상대가 원하지 않거나 시절인연이 아니기 때문이겠지? 그럼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 기다려야 하나. 도하처럼, 1500년이라도? 도하가 왜 그렇게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했는지 백번 이해가 간다. 하하하하.

     

만약 나도 도하와 영화처럼 그 인연을 알게 된다면, 나는 어떤 결론을 내리게 될까. 일단 도하와 영화는 둘이 원했기 때문에 다음 생에 다시 만났지만, 나는 그걸 알게 된다면 다음 생을 얻을 이유가 사라질 것이다. 오래 사는 것은 바라지 않으니, 짧게 살더라도, 그걸 알게 되면 도하처럼 소멸하게 되더라도 기쁘게 받아들일 테다. 오히려 반복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편안하고 안도감이 든다. 오히려 저승에 가더라도 금방 적응을 잘할 것 같다. 꿈에서 저승의 모습을 본 적이 있는데 (내 생각엔 그게 저승인 것 같다), 만약 그게 저승이라면 내 마음에 딱 든다. 게다가 이승에선 이제 더는 볼 일도 미련도 없으니까. 완벽하게 저승사자로 취업해서 열일하게 되겠지. 아, 염라대왕님 볼 생각에 벌써 흥미진진한데. 원서접수 좀...

     

아니 그런데 말입니다. ‘원인이 있어 결과가 있다’라는 말 자체가 인연, 업보, 환생을 설명하는 가장 간단한 말이라면, 좀더 효율적으로 업보를 청산하기 위해선 전생을 알아야 하는 게 아닐까요. 누워있다가도 흑역사가 떠오르면 ‘끄아!’하면서 감았던 눈도 번쩍 뜨이게 만드는데, 전생을 꿈으로 알게 된다면 효과가 직빵일 것인데 말이죠. 말이 너무 상스럽군. 그렇지만 적합한 단어인걸. 아무튼. 꿈을 통해 알고 싶은 게 있다면, 내가 기억하는 전생과 기억하지 못하는 모든 전생 그리고 미래의 일을 알고 싶다. 아, 나는 미래도 정해져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라서. 그리고 이미 정해져 있는 미래라면 미리 알고 있는 게 더 좋다고 생각한다. 마음의 준비라도 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이런 꿈을 꾸기 위해선 일단 머리 위치부터 바꿔야겠지? 깔깔. 북쪽으로 바꿔야 하나. 아니면 자기 전에 기도를 하고 자야 하나.

     

아무튼, 14번의 만남에서 나와 시청자들을 위로해준, 어딘가에 있을 도하와 영화의 연상연하 로맨스가 잘 이루어지고 있기를 바라면서~ 그리고 전생을 기억하고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잘 해결되길 바라면서~ 죽음 이후 저승사자로 잘 취업하는 내 기도를 바라면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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