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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자차 May 30. 2024

영화 소울메이트 후기 (5)

영혼의 동반자

출처 네이버 영화 소울메이트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없고 우리말샘 사전에선 ‘솔메이트’라고 나오는 이 영혼의 동반자는 뜻만 보고선 이해할 수 없는 참 직관적이지 않은 단어다. ‘영혼’을 검색하면 ‘꽃부리 영(英)’을 쓰는 영혼과 ‘신령 령(靈)’을 쓰는 영혼이 나오는데 앞선 영혼은 훌륭한 사람의 혼이자 죽은 이의 혼을 높여 부르는 말이고, 뒤의 영혼이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영혼의 뜻이다. 즉 보편적으로 영혼은 육체에 깃들어진 넋을 말한다. 동반자의 뜻도 두 가지다. 하나는 ‘어떤 행동을 할 때 짝이 되어 함께하는 사람’을 말하고, 하나는 ‘어떤 행동을 할 때 적극적으로 참가하지는 아니하나 그것에 동감하면서 어느 정도의 도움을 주는 사람’을 말한다. 사전에 정의된 뜻으로만 조합하면 영혼의 동반자란 하나의 영혼이 두 사람에게 깃들어 마치 짝을 이룬 상태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영화에선 왜 영혼의 동반자로 세 사람을 보여줬을까. 보통 생각하기에 영혼의 동반자라면 이어진 이후 죽을 때까지 영원히 함께 하는 불멸의 그림이 상상되는데, 이들은 한 사람이 죽어버리면서 아주 일찍 관계의 끝을 맺는다. 그뿐인가. 젊어서 죽는 것뿐만 아니라 실제로 영혼의 동반자 마냥 친하게 지낸 시간은 살아온 시간에 비해 무척이나 짧다. 정확히 따지자면 동반자의 뜻 중 후자의 뜻의 관계와 비슷하다. 그런데도 이들이 영혼의 동반자가 아니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아주 완벽한 관계였다.

     

돌이켜 보면 나에게도 미소나 하은이 같은 친구가 있었다. 사랑이나 우정이라고 정의할만한 감정은 모호했지만, 그 당시 그 친구를 꽤 좋아해서 주변을 맴돌거나 함께 놀기 위해 노력했었다. 어릴 적 느끼는 감정은 굉장히 단순해서 ‘좋다’가 여러 갈래로 나뉘는 것은 모르고 그냥 ‘좋다’로 퉁 치고는 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좋아하는 친구들을 왜 좋아하는지 잘 모르는 채로 좋아했고 그건 어떤 불손한 의미가 있거나 다른 의도가 숨어있는 것도 아닌 정말 순수한 의미로의 ‘좋아하는’ 중이었다. 아주 나중에야 알게 된 건 그 안에 동경, 질투, 부러움, 존경, 설렘 등등 한 끗 차이로 달라지는 감정이 있다는 것이다. 그땐 그걸 몰랐으니 나는 수많은 진우였고 내 곁의 사람들은 미소와 하은의 역할을 번갈아 맡으며 빙글빙글 지구를 돌았다.

     

내가 좋아했던 친구는 대체로 예술적 재능을 가진 친구들이었다. 영화 속 하은이처럼 그림을 잘 그렸고 미술 학원에 다니거나 진로를 잡은 친구들로 늘 나의 동경의 대상이자 존경의 대상이 되었다. 이따금 미소처럼 끼가 많아 노래와 춤을 잘하는 친구들도 몇몇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 친구들을 좋아했던 이유는 밝고 안정적인 성격 때문이었다. 나는 성격이 밝기보단 차분함을 가장한 그늘진 모습이었고 속은 어수선하고 복잡한 사람이라서 나와 반대되는 안정적인 친구들이 좋았다. 늘 불안하고 공허한 나와 달리 친구들은 가족과 사이도 좋았고 자기가 좋아하는 공부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럴 수 없는 처지라서 그 친구들이 마냥 부럽기만 했다.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도록 힘껏 지원해주는 부모님, 대화가 많고 가족다운 따뜻함을 풍기는 환경, 구김살 없이 맑은 얼굴로 웃는 모습은 지금 생각해도 그 나이를 가장 즐겁고 신나게 보내고 있는 반증이다. 집에 있는데도 늘 섬 같은 분위기에서 살던 나는 그들에게서 나오는 따끈따끈한 호빵 같은 온기가 신기했다. 아니 어떻게 사람한테서?

     

그래서 영화 속 여러 장면이 이해가 갔다. 미소가 벼락 맞은 대추나무 목걸이를 달라고 했던 것도 이해가 가고, 27살까지만 살다가 죽을 거라는 말도 이해 가고, 고생했던 서울살이에 대한 푸념이 아니라 바이칼 호수의 엽서를 건넨 것, 근사한 호텔에서 밥값으로 자존심 싸움을 하던 것도 이상하게 이해가 갔다. 내가 겪은 일과는 전혀 다른 일인데도 말이다. 또 그 반대로 네가 27살에 죽으면 나는 어쩌냐는 장면, 동굴에서의 진우를 보고 모른 척한 것, 엽서를 받았을 때의 감정, 소지품에서 발견한 목걸이를 눈감아준 감정도 이해가 갔다. 나도 한때는 친구가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그 그늘을 알아봤고, 내가 가진 그늘을 눈치채주길 바랐다. 내가 그걸 굳이 언급하지 않고 모른 척 넘어간 것처럼 그들도 그렇게 해주길 원했다. 그들이 먼저 말할 때까지 기다렸던 나처럼, 내가 입을 열 때까지 무한정이고 기다리길 바라는 이상한 사람이었다. 분명 모순적인 행동이다. 영화에선 하은이와 미소가 진우라는 연결 고리를 통해 만나 마음을 고백했지만, 나에겐 진우가 없었고 꼭 그럴 때 나는 진우가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내게 온 마음을 보여주고 손을 내밀던 그들에게 화살을 쏴버렸다. 미소가 호텔에서 하은이에게 쐈던 화살처럼.

     

미소를 보면서 참 안타까웠던 이유는 과거의 나와 행동하는 방식이 너무 똑같아서 그랬다. 숨길 줄만 알지 표현하는 것은 몰라서 서툰 솜씨로 캔버스를 채우던 미소가 너무 안쓰러웠다. 나도 속을 덜어내는 데에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썼기 때문에 그 마음이 이해가 갔다. 진우를 그리던 하은이가 했던 말처럼 내 마음을 어딘가에 알리고 싶었다. 친구에게도 선생님께도 낯선 사람에게도 말하지 않은 것은 잘한 일인 것 같은데, 오랜 시간 텅 비어버린 마음을 채울 길이 없어 방황한 것은 좀 아쉽다. 그렇게 살다 보니 할 줄 아는 건 내가 내게 했던 화살이나 쏠 줄 알지 다른 것은 아무것도 못하는 무지렁이였다.

     

그렇게 화살을 쏘아대면서도 나는 하은이를 꿈꿨다. 스크린도어가 설치되기 전 멍하니 햇살이 내리쬐는 열차 선로를 바라보다 정신을 잃을 것 같던 과거처럼 나의 속과 본능은 미소였지만, 하은이처럼 살면 하은이 같은 마음이 생기고 환경이 마련될 것 같아서 그랬었다. 진우가 하은이를 선택한 이유도 그런 게 아닐까. 처음 볼 땐 진우가 둘 사이에서 왜 갈피를 못 잡나 싶었는데, 아무래도 나와 같은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 혹은 걸어가야 하는 정도(正道)가 하은이라고 생각하니 이해 못 할 것도 없었다. 참 신기하지, 영화를 볼수록 진우가 나와 가장 닮았다.

     

영화의 진우가 어떤 역할인지 처음 봤을 때는 이해하지 못했다. 삼각관계도 아닌 병풍 같던 그의 역할에 남자 주인공을 넣은 이유가 아름다운 그림을 만들기 위해 그랬던 것인가 싶기도 했다. 그런데 몇 번을 돌려볼수록 진우는 결국 미소도 하은이도 될 수 없었던 누군가를 그린 역할로 보였다. 하은이를 바란 미소, 미소를 바란 하은이. 하지만 하은이도 미소도 될 수 없어서 그저 둘 사이에서 평생 방황하고 방관자처럼 먼지처럼 부유하는 이상하지만 나름 그럴듯한 누군가 말이다. 조심스럽게 그림을 그려볼까 하는 하은이에게 차갑고 냉정하게 일갈하는 진우의 말은 겨울 서리처럼 날카로웠지만, 한편으론 나야말로 내게 난 꿈이라는 싹을 잘라내는 데에 그만치 효과 있는 말은 없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안다. 그래서 진우 마음은 이해하지만 그래도 진우 너는 참 나빴다. 그런 말은 내게 하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그 싹을 다 잘라낸 내가 결혼식장에서 날아가 버린 신부를 황망히 바라보는 신랑의 기분을 너무 잘 아니까. 내가 섣불리 잘라버린 누군가의 싹이 미소나 하은이가 될 수도 있으니까. 나와 다르니까.

     

그렇다면 영혼의 동반자를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의 영혼의 동반자는 어느 날 세상에 나타나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너를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해서 되는 일도 아니다. 정석대로 간다고 보장된 것도 아니고 우당탕탕 온갖 모험을 통해 얻을 것도 아니다. 하은이의 파혼 후 그의 어머니가 비 내리는 처마 밑에서 작게 읊조리던 말처럼, 사람 얼굴이 다 다른 이유는 각자의 삶이 있기에 그렇다는 말처럼, 그러니 너만의 길을 가야 함이 맞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시간이 흘러 옛날 엽서 속 내가 꿈꾸던 곳을 찾아낼지도 모르겠다. 막연한 꿈과 두려운 과정과 감춰둔 낡음과 빛나는 도착이 눈에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살아가면서 무엇을 겪고 맞이하던 두려워 피하거나 모른 척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나를 알아가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나는 지금 캔버스에 나의 모습을 그려가는 중이라 이것은 사건이 아닌 나를 비춰주는 거울이라고 받아들인다면, 보이는 것을 한 치의 꺼풀 없이 그대로 솔직하고 담담하게 묘사할 수만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영혼의 동반자를 찾는 가장 올바른 길이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진우는 딸을 찾았고, 미소는 제 얼굴을 보았고, 하은이는 바이칼 호수에 도착했다. 여정이 끝났을지 아직 멀었을지 모르겠지만, 남은 생 내 안의 무언가를 섬세하게 그려가는 일은 멈추지 않고 계속될 것이다. 진심으로 그들을 응원한다.

     

나의 영원한 동반자가 될.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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