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으로 존재하는가
제목 : 유어 아너
장르 : 스릴러
방송 시작 : 2024.08.12.
편성 : ENA
기획 : KT스튜디오지니
제작사 : 테이크원스튜디오, 몬스터컴퍼니
제작진 : 강희준, 정민채, 이상윤, 김용기, 유종선, 임민주, 마유나, 김재환
등장인물 : 손현주, 김명민, 김도훈, 허남준, 정은채, 박세현, 최무성, 백주희, 박지연, 정애연, 하수호
업보라는 말이 있다. 불교에서 사용하는 어휘지만 종교를 떠나 이 단어를 이해하고 받아들인다면 크게 좋은 일은 못하더라도 해서는 안 될 짓을 하진 않게 되는 것 같다. 업보란 보통 알고 있는 의미에 따르면 나쁜 행동, 나쁜 결과, 나쁜 원인을 말하는데 사실 업보라는 건 좋은 것도 포함하고 있다. 즉 업보란 내가 하는 모든 것을 총칭하는 말이다. 선하고 악한 행동과 선하고 악한 것을 나눌 수 없는 모든 것을. 업보는 사람이 태어난 이래 사라진 적이 없으며 이 사람이 죽을 때까지 함께 가는 것으로 내 삶의 발자취를 왜곡 없는 모습 그대로 보여주는 거울이다. 무지하던 때의 실수와 잘못도 업보에 포함되며 분별할 나이가 되어 한 짓들도 당연히 그렇다. 업보의 설명 끝엔 늘 바르고 선하게 살아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데, 나는 이 선한 것과 악한 것의 기준이 참 어려웠다.
선하고 악한 것은 무엇일까. 내 의도가 중요한 걸까 아니면 결과에 따라 달라지는 걸까. 내 주변이 좋으면 선한 걸까 혹은 온 세상이 좋아야 선한 걸까. 나만 만족하면 되는 걸까 아니면 상대까지 만족해야 좋은 걸까. 결과가 선하다면 과정은 악해도 괜찮은 걸까? 처음엔 악하더라도 결과가 선하면 되는 걸까. 선악은 내가 판단할 수 있는 것인가. 아니면 판단되는 것인가. 생각할수록 뭘 어떻게 해야 선하고 바른 업보를 쌓을 수 있는지 한결 더 어려워졌다. 선과 악을 이분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에서 벗어나 다른 시각으로 보아야 했다. 직선 양 끝에 놓인 두 어휘를 하나로 붙이니 선악이 윤회로 변했다.
윤회는 쉽게 얘기해서 원인과 결과의 과정 아래 돌고 돈다는 뜻이다. 깨달음을 얻고자 이번 생이 끝나면 다음 생에 다시 태어나는 것인데 사실 윤회란 막연한 게 아닌 가장 현실적인 법칙이다. 우리 일상에서도 윤회를 손쉽게 찾을 수 있다. 해와 달이 뜨고 지는 것이고, 계절이 지나는 것이고, 규칙적인 삶과 같은 것이고, 높은 확률로 내일이 있는 것이다. 더 쉽게 말하자면 이는 업보와 비슷한데 젊었을 때 건강 관리를 하지 않으면 나이 들어 고생한다는 것도 윤회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윤회란 가차 없고 명백한 인과관계 과정이다. 변호사와 판사를 잘 만나 죄의 경중을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라 윤회 자체가 나의 변호사며 검사이며 판사다. 그래서 인간에게 윤회란 선대 조상과 부모에게 받아 대를 타고 내려오는 유전자이고 그 유전자의 싹을 틔우게 만드는 조성된 환경이며 어릴 적에 들인 습관이고 다듬지 못한 나인 것이다.
그래서 송판호와 김강헌의 캐릭터가 흥미로웠다. 단순하게 나쁜 재벌 정직한 공직자가 아니라 그들의 핵심이 있는 무언가가 끼치는 삶에 대해 조명하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생각’이라고 봤다. 송판호와 김강헌은 필연적인 업보와 윤회의 굴레에 살고 있다. 올바름을 떠나 명예 자체만 생각한다면 송판호와 김강헌 모두 명예의 정점에 있는 사람들이다. 청렴하고 올곧은 신념의 판사와 원하는 것 모두 가질 수 있는 회장은 대척점에 있으면서도 가장 닮은 인물인데, 이들은 한 가지 자신의 삶이 뒤바뀔 생각을 가졌다는 공통점이 있다. 모두 나에겐 그럴 권리가 있다는 생각이다. 송판호의 ‘자신이 죄의 경중과 유무를 결정’할 수 있는 권리, 김강헌의 ‘내가 할 수 없는 것은 없다’는 권리가 그것이다.
이들이 판사가 되고 회장이 된 것은 삶에서 성취해 낸 과업일까? 열심히 공부하고 머리가 좋은 대가로 판사가 되었고, 선대의 힘을 키운 능력의 대가로 회장이 된 것은 순수한 나의 성취인가? 사건에 대한 필연적인 결과일 뿐이지, 그것이 내가 이뤄낸 나의 것은 아니다. 나의 본질은 판사도 아니고 회장도 아니다. 그 둘의 본질은 ‘나에겐 그럴 권리가 있다’는 생각 그 자체다. 그 생각이 오늘의 두 사람을 존재하게 만들었고 그들을 닮은 자식을 태어나게 만들었다. 오로지 그 생각 때문에 영영 만나지 않았을 수도 있던 두 사람이 필연적으로 만나게 된 것이다.
이는 은이를 재우고 생각에 잠긴 김강헌의 독백과 석양이 지는 바닷가에서 송판호와 김강헌이 앉아 나누던 대화에서 잘 요약하고 있다. 김강헌은 늘 어둠에서 살았기 때문에 그것을 죄라고 표현했지만 실은 그것은 선과 악 그리고 선과 악 사이의 무언가다. 한 생각으로 태어난 우린 선악을 반복하며 살아가다 또 한 생각의 존재를 눈으로 보고자 자식을 낳는다. 자식이 부모의 거울이라는 말은 나의 생각이 적나라한 존재로 드러났기 때문이 아닐까. 아무리 생각해도 은이는 아무런 죄가 없다는 송판호의 말은 그래서 틀렸다. 은이에겐 죄가 있다는 것도 은이가 그런 일을 당해도 된다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다만 은이는 김강헌의 또 다른 생각, 마지영의 또 다른 생각의 결과이기 때문에 필연적인 것이다. 은이의 존재는 다른 가족을 해하면서도 자신의 가족만은 끔찍하게 생각하는 우원의 한 모습이고 생각이었다.
김상현 또한 마찬가지다. 그가 죽은 이유는 김상혁의 행동에 대해 가볍게 여긴 까닭과 동시에 그의 행동이 존재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마지영은 김상현이 아무런 죄가 없다고 했지만, 김상현이 그런 생각을 하게 된 이유엔 필연적인 원인이 존재했다. 상현이가 죽고 나서 가장 먼저 떠오른 상혁이에 대한 마지영의 솔직한 속내는 이복형인 상혁과 자신의 가족을 바라보는 상현의 눈을 존재하게 했고, 김상현은 그 존재의 눈을 거르지 않고 자신의 눈으로 받아들였다. 스스로 그 눈의 존재 자체가 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런 죄가 없는 듯한 김상현은 필연의 결말을 맞이했다.
그래서 총을 겨누며 사람의 목숨은 가치가 다르다는 그 말도 호영에겐 필연적이면서 동시에 한 생각이다. 법정에서 느꼈던 송판호의 생각이 지은혜의 죽음으로도 깨달아지지 못했고 이는 그 생각의 존재인 송호영에게 나타났다. 마지막 장면에서 호영이 말한 대사는 피해자이면서도 그가 송판호와 같은 생각이라는 것을 보여줬다. 호영의 생각은 김상현의 죽음과 자신의 죽음이란 존재를 가져왔고, 이는 다시 생각의 근원이자 필연적인 원인인 송판호의 후회와 자책으로 돌아갔다. 원인과 결과, 모든 필연이 제자리에 있었다.
이 모든 것은 업보의 탓인가. 아니면 선과 악의 구분이 흐릿한 탓인가. 이도 아니면 사람으로 태어나 윤회에 갇히게 된 탓인가. 나는 내가 나를 알아차리지 못한 탓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나의 한 생각을 알아차리지 못했기 때문에 나는 그 생각으로 시작되어 존재했고, 나를 존재하게 한 생각의 원인에 따라 나의 운명과 인연을 성실하게 밟았고, 결국 윤회의 굴레에서 과거의 업보를 청산하고 새롭게 쌓은 업보를 통해 또 하나의 생각의 존재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러니 이 굴레를 벗어나는 방법은 딱 한 가지이다. 반성과 알아차리는 것. 한 생각과 생각의 존재를 알아차리고 그 길을 걷지 않는 것. 그렇지 않는다면 나는 계속해서 한 생각의 결과에 따라 늙고 죽으며 고뇌하는 인간의 시간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 같다.
송판호와 김강헌의 생각이 그 대에서 멈췄더라면 다른 존재로 나타났을 것 같아서, 송호영과 김상현과 김상혁이 스스로 다듬었더라면 결과가 달랐을 것 같아서, 은이가 호영이와 분리되었더라면 피할 수도 있었을 것 같아서 마지막 회가 참 안타까웠다. 그리고 불현듯 내가 본 가장 춥고 험하고 높은 곳이 어디였을까 생각하게 된다. 나의 한 생각은 지금 어떤 존재의 나로 있을까. 그것은 무엇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