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한나에게
이럴 때 추천해요
-헵타포드의 언어를 이해하고 싶을 때
-한나의 의미를 알고 싶을 때
-이안과 루이스의 모습이 내 안에 있을 때
개봉일_ 2017.02.02
장르_드라마, SF, 스릴러
국가_미국
러닝타임_116분
배급_유니버설 픽쳐스
원작_소설, 테드 창 / Stories of Your Life and Others 당신 인생의 이야기
감독_드니 빌뇌브
각본_에릭 헤이저러
기획_글렌 바스너, 댄 코엔, 에릭 헤이저러, 스탠 울로드코브스키, 카렌 룬더, 토리 메츠거, 말란 포펠카
출연_에이미 아담스, 제레미 레너, 포레스트 휘태커
OST_
기억에 남을 OST이다. 잊지 못할 것 같다.
길을 걷다 이 노래가 나오면 그곳을 따라가고 싶을 것 같다.
만약 나의 삶이 끝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이제부터 어떻게 할 것인가? 그리고 그 과정을 모두 알게 된다면, 나는 그 운명을 피할 것인가 아니면 받아들일 것인가?
나는 운명 개척론자가 아니다. 나는 인연법이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내가 경험한 바로는 사람의 탄생과 죽음 그리고 삶은 무섭도록 촘촘한 인과관계에 맞게 흘러간다.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다. 과거에도 이 순간에도 미래에도 겪을 일을 겪기 위해 각자의 위치와 과업이 정해져 있다. 한나의 이유로 한나라는 결과가 나오듯이 어떤 한나를 선택하든 한나라는 대가를 받아야 한다. 만약 내게 정해진 한나가 아닌 다른 한나를 선택한다면 그 한나에 대한 대가가 치러진다. 그래서 삶은 나라는 존재 자체가 한나이며 내가 존재했기에 한나를 겪어야 하는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이다.
한나. 한나는 루이스와 이안의 존재로 이어지는 필연적인 결과물이다. 루이스가 아이를 낳지 않았다면 한나는 태어나지 않았을까? 아니다. 한나는 반드시 태어난다. 한나가 자식이라는 형체로 루이스에게 온 것뿐이지 한나라는 존재는 이미 정해졌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가장 효과적인 모습으로 적절한 때에 등장한다. 즉, 삶이라는 깨달음의 과정에서 반드시 겪어야 할 산이 바로 한나다.
한나는 도구인가? 깨달음을 주기 위한 장치로서의 인간인가? 한나는 생명인가? 우리는 모두 어떤 이유로 만나고 인연을 맺게 된다. 누군가는 나에게 고통을 주고 또 누군가는 내게 행복을 준다. 누군가는 내게 깨달음을 주고 누군가는 내게 아무것도 주지 않는다. 반대로 나는 누군가에게 슬픔을 주고 누군가에게 괴로움을 겪게 하며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요구하고 누군가에게 어떤 것을 빼앗는다. 나라는 존재에 얽힌 각각의 인연이 다양한 형태로 찾아온다. 그것은 운으로 찾아오기도 하고 사람으로 찾아오기도 하며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가 깨닫도록 유도하고 제공한다. 하지만 우린 그것을 직접 겪으면서도 깨닫지 못한다. 우린 그것을 노력, 운명, 개척, 반전, 성취, 목표, 실패, 파산, 소유로 이해할 뿐 그것을 종합한 하나의 단어나 주제를 이해하지 못하고 때론 거부한다. 헵타포드가 지구에 온 목적에 대해 알고 싶어 하는 모습과 헵타포드의 무기와 선물의 의미를 구별하고자 하는 모습이 낯설지 않은 이유다.
헵타포드는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루이스에게 그가 가장 이해할 수 있는 방식인 한나를 보여줬다. 내가 알지 못하는 아이, 하지만 분명한 나의 아이, 그 아이의 운명을 이미 알고 있는 나. 루이스는 대체 왜 끝을 알면서도 한나를 만나기로 한 것일까.
사랑은 무엇인가. 사랑은 후세를 남기기 위한 감정의 시작인가? 나는 사랑이란 한나를 알려주는 장치라고 생각한다. 그 어떤 것보다도 다채롭고 강하고 질긴 결속력을 바탕으로 이뤄지는 감정의 연결은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다. 사랑을 대하는 인간의 방식은 다양하고 그만큼 인간은 사랑에 무섭도록 집착한다. 그래서 사랑이야말로 비이성적인 행동이 아니라 치밀하게 계산된 공동의 작업이다. 사랑함으로써 우린 주어진 공동의 과제를 수행하게 되고 같은 한나를 찾아 결합한다. 서로를 이어주면서 동시에 서로를 갈라놓기도 하며 끊임없이 공동의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의 한나를 가진 누군가를 향해 달려간다. 한나를 보는 태도는 루이스와 이안의 모습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린 루이스처럼 한나를 이해할 수 없고 두려워하고 결국 받아들이기도 하고 이안처럼 한나를 떠나기도 한다. 한나를 떠난 이안은 나쁜 것인가? 아니다. 한나의 곁에 남아 한나를 이해한 루이스도 그 진면을 깨닫기도 전에 떠난 이안도 각자 한나를 대한 태도가 다를 뿐이다. 다만 떠난 것이 해결되지 못한 한나라면, 이안은 다시 한나를 만나게 될 것이다.
그럼 사랑을 하지 않는다면 한나를 피할 수 있을까? 처음부터 이안도 루이스도 되지 않는다면 가능할까? 아쉽게도 그렇지 못하다. 태어난 것은 나의 값을 치르기 위함이기에 다른 형태로 계산하게 된다. 그래서 한나는 세상의 모든 것에 존재한다. 앞서 말했듯이 생명은 절대 자신의 한나를 피할 수 없다. 그뿐이랴. 한나는 그 어떤 방식으로 분류될 수도 없다.
한나는 그 자체로 한나로 존재한다. 한나는 좋고 나쁨도 없고 귀한 것과 천한 것이 없으며 고통과 기쁨도 없다. 한나는 마치 인간처럼 복잡하지만 아주 간단하고 명쾌한 진리를 갖고 있다. 이 세상에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는 한나를 만나면서도 그것이 한나라는 것을 알지 못하는 이유다. 우리는 한나를 찾고 한나를 인식하는 것에 치중한 나머지 오감이 발달해버렸다. 한나는 오감을 통해 인식하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한나는 살아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의 몸을 감싼 공기와 같다는 사실은 믿기 어려운 일이다.
한나가 두려운가? 하지만 동시에 한나는 무지개다. 무지개의 아름다움에 감정이 이끌려 그것이 ‘잡을 수 없는’ 것임을 잊어버리지만 않는다면, 한나가 제공하는 것은 나의 인연법에 따라 경험할 수 있는 다채로움을 줄 것이다. 그것이 무기일 수도 선물일 수도 있지만, 그 어느 것도 상관없다.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은 그것이 무기와 선물이란 범주에서 벗어나 인연, 나의 한나 그 자체를 이해하는 것이다. 고통이 주는 고통스러운 감정에 매몰되지 않고, 행복이 주는 감정에 취하지 않고, 늘 평온한 상태로 오감으로 들어오는 것에 얽매이지 않고 그 너머를 바라봐야 한다. 헵타포드는 우리들에게도 루이스에게도 한나에 대해 깨달을 기회를 놓치지 않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기에 애봇의 죽음을 ‘죽음의 과정’에 있다고 표현한 것은 죽음이라는 생명이 끊어지는 그 순간을 지칭한 것이 아닌 큰 범위에서의 한 부분이 되며, 이것 또한 한나의 종결이자 또 다른 한나의 시작을 의미한다. 한나는 존재하는 모두에게 필연적이기 때문에 존재하면서 남긴 나의 한나가 있기에 그로 인해 생기는 또 다른 한나, 그 다음의 한나가 계속된다. 그러니 우리에겐 정말 많은 기회가 있는 것이다. 아주 슬프고 아주 행복하고 아주 복잡하고 아주 단순한, 찰나의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면 알아볼 수 있는 나의 한나들.
인생이 슬픈가? 삶은 슬픈 것인가?
나는 슬프다고 생각한다. 삶은 그냥 존재하는 것이라서, 태어남의 존재가 아니라 ‘삶’이라고 정의된 것이 그냥 그곳에 있을 뿐이다. 나는 삶에 어떤 의미로 존재하지 않는다. 나라는 존재는 그냥 거기에 있을 뿐이다. 나는 누군가의 필연의 한나이며, 다시 스스로 한나가 되어 필연의 한나를 향해 가야 한다. 나의 한나가 다시 한나가 되지 않으려면 이번 생에 한나를 모두 해결하면 될까. 그리고 모든 것이 흩어지듯 한나를 소유하지 않는다면 될까. 이건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한나는 매력적이고 환희가 넘치며 고통스럽고 괴로우며 쾌락을 주고 공허함과 허무함과 외로움과 고독을 느끼게 한다. 고백하는데 나는 한나를 매우 사랑한다. 나도 한나가 얼마나 예쁘고 얼마나 따뜻하고 얼마나 소중한지 잘 안다. 그래서 불쑥 안개 속에서 한나가 나타나면 모르는 척 머리를 털어내며 한나를 두고 멀리 아주 먼 곳으로 떠나고 싶기도 하다. 한나가 나에게 줄 것을 알기 때문에 그렇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이안이며 그의 마음이 이해가 갔다.
되짚어보면 헵타포드를 만난 두 사람처럼 수많은 한나를 겪으며 나의 품에서 떠나보내기도 어떤 것은 뇌리에 깊게 박히기도 했다. 아마 앞으로도 계속 반복될 것이다. 한나의 진실을 다 알기도 전에 이미 한나를 만날 것이고, 긴 장마가 끝나고 하늘에 뜬 잡을 수 없던 일곱 빛깔의 무지개처럼 계속해서 한나를 향해 갈 것이다. 안개 속에 가려진 목적지를 향해서 말이다.
나의 한나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몇 번의 한나가 지나갔지만 앞으로 만나게 될 다른 한나가 있다. 매우 두렵고 걱정스럽고 염려스럽다. 동시에 한쪽에선 초연한 마음도 든다. 그래도 한나를 만나게 된다면 적어도 이전과 같은 행동을 하진 않고 싶다. 적어도 이전처럼 한나의 진면을 파헤치기 전에 충격을 받거나 거부하지 않고 싶다. 여전히 헵타포드는 내게 한나라는 무기를 건넬 것이고 나는 루이스처럼 한나를 선물로 받아들일 것이다. 루이스가 한나를 통해 헵타포드를 이해한 것처럼 나도 나의 한나를 통해 나의 헵타포드를 그들의 언어를 이해하고 싶다.
영화 컨택트는 매우 슬프고 아름다운 영화다. 내겐 다른 어떤 영화보다도 가장 의미 있게 오래도록 깊이 남을 영화일 것이다. 혼란스러운 한나와 여전히 함께하는 나의 모습을 이안과 루이스를 통해 바라볼 수 있었다. 그리고 앞으로 내가 또 만나게 될 한나와 알게 될 헵타포드의 언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도 말이다.
그러니 슬퍼할 이유가 없다. 나의 마음은 매우 슬프지만 슬퍼할 이유가 없다. 때때로 행복을 느낄 테지만 행복할 이유도 없다. 루이스가 깨달은 사실처럼 나도 한나를 알고 있음에 감사하고 한나를 준비할 수 있음에 감사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인 것 같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