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질을 찾아 질러!
이럴 때 추천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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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술을 지키는 법
-생존 가이드북을 숙지해야 하는 이유
-운동 중에 최고로 좋은 운동은 달리기 운동
-싸움 중에 제일 피 튀기는 싸움은 눈치 싸움
-현재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법이 궁금하다면
-만년필 하나 정도는 소지하고 다녀야 하는 이유
영화정보
제목_탈주
개봉일_2024.07.03.
장르_액션
감독_이종필
배급사_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들어가는 글_
벌써 몇 번이나 보는 영화다. 처음 봤을 때는 재밌다고 해서, 두 번째 봤을 때는 첫인상이 강렬해서, 세 번째는 공감이 가서 또 보고 싶어서 봤다. 나는 북한 사람도 아닌데 왜 이 북한 군인의 이야기에 공감이 갔을까? 왜 그들에게서 나의 모습을 비춰봤을까? 왜 이들의 대화에 멈칫하게 되었을까. 내겐 이런 이유만으로도 완벽히 추천하고 싶은 영화다.
그나저나 임규남이... 왜 리현상이가 그렇게 잡고 싶어 했는지 알 것도 갔디. 좋은 자리 주겠다는데도 악착같이 제 길 찾아가겠다고 마음을 휘젓고 들쑤시니, 러시아 귀공자가 눈에 들어올 리가 있갔서? 이거이 출신 성분이 좋아 무탈하게 커서 그렇디. 다음엔 리현상의 시선을 끌도록 더욱 아름답고 격동적으로 움직이라우. 귀공자 모범을 제대로 선보이라고. 알간?
인물 소개_
임규남 / 집 나간 개새끼
별명을 붙일까 말까 고민했다. 근데 별명대로 진짜 집을 나가서 붙였다. 리현상. 왜 그렇게 말했어. 말이 씨가 됐잖아. 영화는 내내 내 마음을 복잡하게 했다. 물론 영화 초반에는 분명 임규남의 시선에서 봤다. 그걸 굳이 잡고자 하는 리현상을 떨떠름하게 생각하기도 했었다. 다른 사람을 붙여줘서 눈길을 돌리게 한 후 규남이가 탈출하게끔 시간을 벌어주고 싶을 정도였다.
그렇다. 분명 조준경 안으로 규남이가 붙잡혔을 때까지만 해도 ‘아 꼭 죽여야 하나.’ 싶었다. 조금만 혼내주고 다시 곁에 두고 싶었다. 악재에도 굴하지 않고 늘 기회를 엿보고 추진력 좋던 규남이의 죽음을 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시야 속 규남이가 눈을 부릅뜨자 생각이 바뀌었다. 그 순간 깨달았다. 내가 이 영화를 리현상의 시선에서 보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남한에 자리 잡은 규남이의 모습은 내게 불편하고 평안한 감정을 주었다. 참 이상했다. 내가 꼭 규남이의 탈출을 바라지 않은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규남이가 탈출하지 못했다면 나는 그보다 더 괴로웠을 것 같다. 그래서 마음껏 실패하려고 간다는 규남이의 말이 몇 번이고 나를 이 영화로 돌아오도록 만들었다.
리현상 / 현재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라
리현상은 현상이로 부르면 안 되고 꼭 ‘리’를 붙여야 한다. 이현상 안 돼. 리현상 돼. RE현상. 이름처럼 자꾸만 되새기게 되는 리현상은 매력적인 악역이면서 공감하게 되는 이상한 인물이다. 탈주는 리현상의 이야기인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리현상을 보자면 어릴 적 가졌던 순수한 의지를 꺾고 스스로 통제 속 현실로 들어간 사람이다. 그에겐 규남이란 어떤 장치 같은 게 아니었을까? 리현상이 사는 세상은 그에게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이자 작위적인 현실이다. 그 속의 현실적인 존재는 규남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규남이의 자아를 직면하자 장난스러운 가면을 벗어던지고 약이 바짝 오른 것이다. 규남이가 떠나버리고 남은 세상은 정말로 역할놀이로 가득 찬 현실일 테니 말이다.
리현상은 왜 쉬운 길을 어렵게 갔을까. 규남이가 완벽히 포기하고 돌아오길 바라서 굳이 술래잡기를 하는 것 같았다. 어떤 마음을 가진 술래였을까. 나라면 무엇을 해도 채워지지 않았을 것이다. 선우민도 가질 수 없어 규남이도 떠났어, 그래서 나한테 남은 게 뭘까 싶어서. 그래도 리현상이라면 다시 장난스러운 가면을 쓰고 열심히 일하고 살 것 같다. 혹은 또 다른 규남이가 생기지 않도록 더더욱 무섭게 자신과 주변을 단속하며 살거나. 만약 리현상에게 기회가 온다면 그는 자신이 쓴 구절처럼 행동할까 아니면 자신이 한 말처럼 행동할까? 나라면?
선우민 / 내가 사랑했던 개자식
사랑하긴 했는데 나쁜 남자였나. 아니면 가장 먼저 현실로 떠나버려서 개자식이 되었나. 아름다운 얼굴과 아름다운 이름을 가진 묘한 남자는 리현상과 깊은 눈빛을 주고받는다. 두 사람의 눈빛을 보고 탈주 2가 나온다면 이 둘의 이야기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도 선우민의 역할이 여자가 아니라 남자고 송강이었기 때문에 좋았다. 모른 척해야 하는 아름다운 옛 연인... 근데 남자와 남자? 재밌다.
아 그런데 궁금하다. 어느 쪽일까. ‘나쁜 남자를 사랑한 리현상’이었을까 아니면 ‘리현상을 두고 떠난 개자식’이었을까. 벌써 상상만 오천만 번은 한 것 같다. 어느 쪽이든 선우민은 리현상보다 더 현실주의자 같다. 파티장에서 홀로 귀티가 흐르는 게 리현상보다 출신 성분도 좋아보인다. 분명 아쉬운 건 리현상, 가지고 논 건 선우민이다. 재회했을 때도 선우민은 자세부터 여유가 넘쳤다. 리현상과 달리 시선에 당혹스러움이 없었다. 휴대폰에 저장된 이름마저도 잊지 못한 쪽은 리현상이라고 말한다. 그저 오늘은 불통이었을 뿐이다.
리현상이 옛 실력으로 거뜬하게 연주하자 자신을 잊었다고 생각했던 걸까? 연주가 끝나자 몸을 돌려 나가는 모습에서 그의 마음이 보였다. 그래도 굴하지 않고 러시아로 들쑤시는 끈질김은 흥미롭다. 내 생각에 리현상의 집 강아지가 규남이었듯이, 선우민의 집 강아지는 리현상이었을 것 같다. 리현상은 박력 있게, 선우민은 능숙하게 다뤘을 뿐이다. 그래서 선우민이 진 것 같다. 집념으로 가출하는 규남이에게 귀공자는 다툴 상대가 못 된다. 무슨 생각으로 현실을 택한 리현상인데, 왕자님은 싸움을 몰라.
김동혁 / 모든 것은 운이 결정하는 것
애처로운 사연에 동혁이도 꼭 남한에 갈 수 있기를 바랐다. 가족을 먼저 보내고 홀로 남는 마음은 상상할 수 없다. 하지만 하늘의 운은 동혁이의 내일을 허락하지 않았다. 왜일까? 동혁이는 규남이보다 덜 절박했기 때문에 그런 걸까? 그가 철저하지 않아서? 영화 속 동혁이의 행동으로만 보면 조금 본인의 책임도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그런 것을 다 떠나서 동혁이에게 없던 것은 ‘하늘이 허락한 운’이라고 생각했다.
하늘이 대체 뭔지. 하늘이 허락한 운이 있고, 허락하지 않은 운이 있다. 왜 이렇게 사람마다 운이 다른 걸까. 마음만으로 되는 건 없고, 가장 냉정하고 무서운 건 하늘이자 나의 운이다. 아무리 노력하고 준비해도 그 길이 나의 길이 아니라면 절대 흘러가지 않았고, 잠시 흐르다가도 다시 빠져나왔다. 혹은 내가 가야 하는 길이고 운이라면 내 발이 동상에 걸렸더라도 그 물에 발을 넣어야 했다. 하늘을 탄복하게 만드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동혁이의 죽음은 너무 슬펐다.
캐릭터가 정말 재밌고, 하나하나 공감도 갔다. 인물들의 대사도 자꾸만 떠오르고, 캐릭터가 주는 의미를 생각하게 된다. 영화 속 가장 마음에 드는 인물은 리현상이다. 구교환 배우가 연기한 리현상은 생동감이 넘치고 입체적이었다. 아니 왜 이렇게 멋있냐고요. 그 이상한 제복 너무 잘 어울려. 올백머리 무슨 일이야. 옆모습 차가워요. 그냥 너무 무서워요. 리현상을 피해 다니자. 안 그럼 진짜 죽을지도 몰라. 응 같이 일하고 싶지 않아... .. ..>_<
거기엔 리현상의 외모와 그의 사소한 행동도 한몫했다. 끅끅끅끅 웃으며 제 손가락보다 가느다란 립밤을 바르고 춤추며 피아노 치던 사람이었다. 반대로 후반부에 갈수록 웃음기 없이 쫓아가는 모습은 리현상이 원하는 것을 향할 때 어떤 사람일지 추측할 수 있었다. 내 생각에 리현상은 규남이가 떠나고 조금은 생각에 잠길 것 같다. 그리고 휴대폰에 저장한 선우민의 이름을 다른 것으로 바꿀 것 같다. 규남이가 떠났으니 본인도 선우민의 강아지가 될 필요가 없을 테다.
이제 보니까 탈주는 규남이가 아니라 리현상이 더 절박했던 것 같다. 모든 대사와 상황이 리현상이 만들어 놓은 가면을 벗겨내는 것처럼 다가왔다. 리현상의 실제 모습은 규남이 그 자체였을 것이다. 리현상은 무엇으로부터 탈주하여 무엇에 도달하고 싶었을까? 문득 피아니스트로서 삶도 그가 진짜 원한 건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음악_
모든 노래가 다 좋았다. 유튜브엔 탈주ost를 정리해 놓은 플레이리스트가 있다. 라흐마니노프의 연주들이 리현상을 그려내는 것 같다. 그렇다. 난 이제 리현상을 잃어버릴 수가 없서. 각별해졌다 이 말이야. 끅끅끅끅끅끅... 이거이 리현상흐마니노프가 아니면 뭐갔서? 사랑이 전광석화처럼 다가온 걸 내 어카겠니. 제대로 기강을 세워야 하지 않겄서? 수신제가 치국평천하를 위해 절차 밟으러 가자.
https://youtu.be/wxi_CTA0iy8?list=RDwxi_CTA0iy8
그런데 이 노래, 리현상이 파티장에서 선택한 노래, 뭔가 의미가 있을 것 같다. 피아노 솜씨가 제대로라는 선우민의 도발에 다 잃어버렸다고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가 선택한 곡이다. 이걸 듣는 선우민의 표정도 주목하게 된다. 눈을 감고 음악을 즐기는 게 아니라 꼭 무언가를 떠올려 생각하듯 심상치 않다. 아마 이 곡을 사이에 두고 두 사람 간에 감정적 갈등이 깊었던 것 같다. 하지만 완벽하게 옛 실력으로 연주를 하니 선우민 속이 퍽 상했겠다. 연주를 빼려는 행동에 득의양양했는데, 자존심 강한 옛 연인의 녹슬지 않는 실력이나 보게 돼서.
그래서 내가 듣기엔 파티장에서 연주한 곡은 미련 없고 경쾌한 느낌이었다. 회상하는 장면 속 곡이 굉장히 낭만적이고 감정이 풍부하게 느껴지는 것과 반대였다. 현재의 선택이 옳았음을 증명해야 한다는 그의 말처럼, 선우민 앞에서 음악으로 증명하려고 한 것 같다. “나 너 없이도 잘 살아^^” 이렇게. 근데 그 잘 사는 모습의 증거인 존재인 옛 운전사 아들 규남이가 탈주를 한 것이고.
아무튼 리현상은 이 곡과 좋은 인연이 없다. 이 곡과 함께한 사람과 늘 헤어지는 것을 보면 리현상의 운명의 음악임이 분명하다. 리현상 본인도 음악과 이별했고, 사랑한 연인이었던 선우민, 이젠 집 강아지 규남이와도 이별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가장 사랑했던 음악이 사실 내 운명의 복선이었다면, 나는 이별을 사랑한 걸까. 앞으로 이 곡을 연주하기엔 많은 용기가 필요할 것 같다.
훗날 선우민과 리현상은 다시 만날 것 같은데... 선우민이 임규남 얘기를 꺼내며 슬쩍 떠보다가 그쪽도 미련 없는 리현상을 보고는 완전히 물러날 것 같다. 오히려 전과 달리 옛 연인 선우민을 대하는 리현상의 태도가 더 가벼워지고 편해진 모습에 맥이 풀릴지도 모른다. 어쩌면 선우민이 했던 것보다 더 가볍게 추근대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 리현상에겐 더 이상 현재가 옳다는 것을 증명할 필요가 없어졌을 테니 말이다. 규남이의 박력 있는 탈주로 리현상은 무엇을 깨달았을까?
삶의 의미_
아무리 세상에 새롭고 좋은 것이 많다지만, 그것 중에 내 맘에 드는 건 몇 가지 안 된다. 내가 좋아하는 빵도 정해져 있고, 내게 잘 어울리는 스타일도 정해져 있다. 언젠가 호기심에 새로운 것을 접해봐도 잠시 신기하고 좋을 뿐, 결국 본래 좋아하던 것을 선택한다. 요즘엔 너무 같은 선택만 하는 것 같아 일부러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편이다. 내게 기회가 있을 때 마음껏 선택해 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옛날부터 좋아하던 것은 변하지 않는다. 그중 하나가 무용과 미술이다. 꿈이 있던 분야라서 자주 기웃대는데, 본래의 삶을 유지하려는 습성 때문인지 인연이 쉽게 닿지 않는다. 하지만 타고난 취향은 시간에 퇴색되지도 않아서, 잠시 고개만 숙일 뿐이지 여전히 기회를 엿보고 있다. 예전과 다른 것이라면 애쓰진 않는다는 것이다. 때가 되어 내게서 떠났다면, 다시 때가 됐을 때 내게 돌아올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영화 속 리현상의 취향은 피아노였다. 예술은 낭만과 의미를 찾던 그에게 예민하고 풍부한 정서를 쏟아붓기에 최고의 텃밭이었을 것이다. 그가 군인이 된 현재의 모습을 생각한다면 그것이 피아노였을 때도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실은 그것이 잡초였고 진짜 네 운명은 군인이라면 어떨까. 나 역시 원하고 가고자 했던 길을 걷지 못했을 때 좌절감이나 억울함이 아닌 분노가 생겼었다. 이 분노는 그것을 철저히 외면하게 했고, 이후엔 리현상의 ‘현재의 선택이 옳았음을 증명하라’라는 말처럼 행동했다. 나는 내가 다른 길 위에 똑바로 서도록 몰아붙였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주어진 운명에 나를 맞추는 건 보람도 없고 너무 힘들었다. 이십 년 동안 뒤집어쓴 양가죽을 버리는 것만큼 새로운 양가죽에 익숙해지는 것은 만만치 않았다. 세 살 버릇이 아직 여든도 안 갔는데 말이다. 나를 더 힘들게 한 것은 이해하기 힘든 것을 수용하는 것보다 내 안에 남아있던 찌꺼기들과 공허함이었다. 나는 이미 현재를 택했고 그것에서 성과를 내기로 결심했으면서도 그랬다. 끝내 목표를 이뤄도 잠시뿐이지 늘 무언가가 채워지지 않아 방황했고, 공허함에 익숙해졌다. 여기에 대체 불가능한 것이 나타나면 정말 난감해졌다.
홀연히 나타난 아름다운 옛 연인은 왜 꼭 힘들 때만 올까. 어떻게 여전히 매력적이고 매혹적일까. 사람이어도 힘든데, 생각은 내게서 비롯된 것이라 더 어렵다. 내 경우엔 흔들리지 않으려고 차갑게 외면하거나 아무렇지 않은 척한다고 해서 괜찮아지지 않았다. 밤이 되면 내게 온 마지막 기회였을까 봐 의미를 찾으며 뒤숭숭했다. 그래서 극 중 선우민에게 흐르던 리현상의 시선, 손을 주머니에 숨기는 행동, 깔끔한 연주를 해내고 인상을 찡긋하는 표정, 일하는 도중에 전화를 끊어버리며 짓는 얼굴에 과거의 내가 겹쳐 보였다.
그에게 선우민이란 무엇이었을까. 나에게 선우민이란 이상이다. 내가 사랑하는 대상은 늘 그 당시의 내 모습이 섞여 있다. 그것이 어떤 존재든 사실은 내게서 비추고자 한 것이 보일 때 사랑하게 된다. 그래서 지나간 추억을 떠올리는 건 웃음이 나오기도 하지만 그 시절로 나를 돌려보내기도 한다. 이상은 내가 되고 싶었지만 될 수 없던 것이다. 그래서 이상은 늘 아픈 손가락이다. 작은 이상은 작은 현실의 힘이 필요하고, 큰 이상은 커다란 현실의 힘이 필요하다. 큰 이상을 작은 힘으로 버티는 방법은 없다. 그래서 후련히 해소하고 묻어야 한다. 무턱대고 묻었다간 움푹 올라온 턱에 발이 탁 걸리게 될 것이다. 파티장에서 마주친 선우민처럼 말이다. 그때 리현상의 표정은 규남이를 찾던 광기 어린 표정과 함께 그가 무엇으로부터 탈주하려고 했는지 알 수 있었다.
가끔 나이에 상관없이 나의 본질을 건드리는 사람이 있다. 내 피에 새겨진 이상형이기도 하고 어떤 감각을 건드리는 사람일 때도 있다. 어떤 사람은 그 사람 존재 자체가 내게 묵직한 한 방을 줄 때도 있다. 특별한 나의 시절에 있던 사람도 있다. 이런 사람을 만나지 않는다면 그것만으로 행운이자 불운일 것이다.
만약 내가 리현상이라면 어땠을까? 나는 피하고 모른 척하고 멀리 떨어지는 편이다. 하지만 속으론 요동치는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고 오히려 아무렇지 않게 대한다. 마치 리현상이 몸을 가다듬고 다시 춤을 출 때처럼 말이다. 지금도 선우민 같은 사람을 마주치게 된다면 최대한 다른 사람들 뒤로 숨어서 나를 감추려고 할 것 같다.
그래서 선우민이 아니라 규남이를 필요로 한 리현상에게 공감이 갔다. 그가 주어진 삶을 살아야 할 때 가장 필요한 것은 배우자와 자식 그리고 규남이다. 과거의 답습이지만 그건 여전히 모범적이고 전략적이다. 그렇게 나름 여러 계산을 한 뒤 사단장 직속 보좌 자리에 배려까지 해뒀는데, 구만리 같은 역할놀이를 함께할 규남이가 사라졌으니 큰 낭패다. 규남이는 리현상의 진짜 현실 속 역할을 담당하는 중요한 인물이며, 한여름 밤의 꿈인 선우민과 분리해 줄 장치다. 이런 인물이 자아를 가진다면 내가 믿어야 하는 가치와 현실에 균열이 생기게 될 것이다. 즉 선우민이 아닌 현실을 택했을 때 보장된 것들이 실은 허상이라는 새삼스러운 자각에 외로움과 두려움이 뒤섞일 것이다.
그래서 리현상은 자신의 세상이 흔들리기 전에 규남이를 통제하려고 했다. 규남이를 어쩌지 못한다면 결국 내가 나를 잡아먹을지도 모른다는, 그래서 여태 쌓아온 것을 다 버려야 할지도 몰라 겁이 났을 것이다. 규남이의 탈주에서 나의 과거와 그것이 실패했던 기억을 떠올렸기 때문에 불편했을 것이다. 곧이어 체념하여 선택한 현실을 완벽한 형태로 만들고 싶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한 인간을 체계 속에 넣으려면 자유와 낭만이 흐르는 모습을 깡그리 지워야 가능하다. 리현상은 기꺼이 그랬을 것이고, 그의 말에서 가려진 과거가 엿보였다. 그것이 참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의 말은 꼭 자신에게 하는 단속처럼 들렸다. 그가 사실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 전방을 주시하고 집중을 하는 것, 예의가 바른 것인지 그런 척을 하는 것인지에 대한 것, 시끄러운 것을 싫어하는 것, 세상에 낙원은 없다는 것, 네가 갈 길은 그쪽 아니고 이쪽이라는 것, 나라고 하고 싶은 것이 없었겠냐는 것, 아무리 몸부림 쳐봐야 소용없다는 것 등등 모두 자신에게 말하고 있었다. 위로 같지도 않은 위로로 나를 다잡는 건 얼마나 상처였을까. 나를 갉아먹는 시간을 넘어서느라 진짜 자신의 모습을 잃어버리는 건 일도 아니다. 그러다 진짜 내 모습으로 사는 사람을 마주할 때면 부러움과 불편함, 허탈함과 서글픔이 몰려온다. 왜 나는 저 사람처럼 행동하지 못했을까, 자책은 후회와 점철되어 이따금 나를 찌르곤 한다.
하지만 나라고 그런 기회가 찾아왔을 때 선택할 수 있었을까? 내가 리현상이었다면 나는 그와 다른 선택을 했을까? 아마 나도 리현상과 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다. 내가 잘하는 것보다 할 수 있는 것을 선택하고, 사랑하는 연인보다 해야 할 일을 선택하고, 다른 삶을 살 용기보다 안정적인 삶이 보장된 현재를 선택했듯, 리현상이 되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건 용기가 없어서가 아니라 내 밥그릇에 담을 수 있는 것 중 그것만이 가장 좋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리현상이 규남이를 마치 자신처럼 때린 것이다. 규남이의 비이성적인 행동과 이상적인 생각은 깊은 괴리감을 주었고, 그는 그 말에 무척 화가 나고 절망하여 스스로가 미웠을 테니 말이다.
리현상은 규남이를 쫓으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마 마음속 무언가가 무너지지 않았을까? 기어코 규남이의 머리에 총구를 겨누며 구구절절 설득하는 리현상의 모습이 안타까웠다. 몇 번이고 현실 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졌을 모습이 상상되어 안쓰러웠다. 하지만 리현상은 규남이의 삶을 절대 선택할 수 없었을 것이다. 보위부에 있었던 자신과 혈혈단신인 규남이는 다르다. 그 위치의 의미와 무게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에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자유와 희망의 종소리가 울리는 푸른 언덕 위에 앉아 자신의 손을 쓸어보는 리현상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할 수만 있다면 그 손을 잡아주고 싶었다.
안문센 속 편지엔 죽음이 아닌 의미 없는 삶을 두려워하라는 말이 적혀있었다. 그 말은 두 사람의 삶의 방향을 바꾸었고, 나에게도 삶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의미 있는 삶은 무엇일까? 내 생각엔 삶에서 의미의 찾는 것은 어리석다. 차라리 ‘삶 자체가 고통이란 것만이 변하지 않는 사실’임을 받아들여야 한다. 무한히 반복되는 삶을 벗어나지 않는 이상,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없는 것 같다. 오히려 삶에서 의미를 찾으려고 하면 그 끝은 결국 죽음뿐이다. 그래서 그 한 생각으로 나를 괴롭힐 필요는 없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힘을 들여 오늘의 하루를 잘 보내는 데에 중심을 두는 것이다. 그래서 삶과 그 삶을 살아가는 나, 본질적인 나를 분리하는 것이다.
어쩌면 리현상의 고통은 삶과 자기 자신을 너무 동일시 해서 생긴 번뇌였을지도 모른다. 나의 본질은 어디에 있든 변하지 않기에 어떤 삶이라도 살아가면 그만이라고, 그렇게 조금 가볍게 생각했다면 보다 나았을 것 같다.
부디 규남이가 자신의 본질을 실패에서 찾았듯이, 리현상도 자신의 본질을 찾게 되었으면 좋겠다. 나 또한 죽음을 향해 걸으며 나의 본질을 찾아가는 노력을 계속 이어갈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