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중학교 3학년 남학생 7명과 남도여행을 했다. 지리산 천왕봉을 뛰어 올라간 아이들과의 여행은 그 어느때와는 참 달랐다. 그 중, 내가 과연 저 아이들의 체력을, 묻지마 도전정신을 따라갈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의문에 대한 대답은 단 하루가 지나지 않아 공개되었다. 여수 밤바다를 기다리며 우리는 케이블카를 탔다. 약간 두렵기는 하지만 이쯤은 깊은 호흡 두어번으로 충분히 마음을 다스릴 수 있다. 막 매표를 하려는데 아이들이 달려오며 ‘크리스탈, 크리스탈’을 외친다. 무슨 소린가 싶어 주위를 둘러보니 이곳에는 일반 캐빈과 크리스탈 캐빈 두 종류의 케이블카가 있었다. 아이들이 간절하게 외치는 ‘크리스탈 캐빈’은 바닥이 유리로 뻥 뚫린 케이블카란다. 그거라면... 몇 번의 호흡으로 정리할 수 없다 절대. 아이들이 마구 우겨대며 꼬셨지만, 난 결국 일반 캐빈을 탔다. 캐빈 안에서 끝없이 펼쳐진 바다를, 촘촘하게 내려앉은 도시를, 반대쪽을 스쳐지나가는 크리스탈을 바라보다... 웬지 자신이 짠해졌다. 나는 왜 여기 이러고 있는걸까? 이게 뭐라고. 바닥이 보이든 보이지 않든, 그 아래에 깊은 바다가 있는 것은 변함이 없고, 내가 얼마나 무겁든 무겁지 않든 바닥이 내려앉을 가능성은 아주 희박함이 분명한...거기서 거기인 케이블카가 아닌가. 나는 왜 여기서 이러고 있는가?
아마 그때 부터였을 것이다.
절대 못한다고, 절대 안된다고, 스스로에게 어름장 놓지말고
두려움에 떨며 궁시렁 궁시렁 토달지 말고
내 앞에 열려진 문 앞에서
담대하게 그리고 사뿐히 한 발 앞으로 내딛어보자!
그날 이후 문득문득 무언가가 내 심장을 훑고 지나가기 시작했다.
두 아이가 어렸을적에는 아이들이 있어 하지 못하는 것들이 많았다. (물론 아이들 덕분에 할 수 있는 것들은 더 많았다.)
이제는 엄마가 못하는 것들을 아이들이 한다. 태어나 처음으로 간 서울 롯데월드에서 두어시간을 기다려 후룸라이드를 탄 나는 후들거리는 두 다리를 주체하지 못했고, 그런 나를 큰딸이 열심히 다독여준다. 둘째딸은 아빠와 자이로 드롭을 타고 와선 엄지 척 해 보인다.
내가 늘 다독이고, 엄지 척 해 보이던 그 아이들이 이제는 나를 향해 따뜻함을 발사하고 있구나, 그곳에선 아이들이 나의 보호자였다.
차를 타고 지날때마다 스릴을 만들어주는 우리 동네의 경사길 조차 무서운 ‘나’ 인데... 롯데월드에 온 것 자체가 나로서는 아주 큰 도전이었다. 소중한 내 아이들을 위해 이 정도의 노력은 당연한 나의 몫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래서 여수에서는 ‘짚라인’을 타기로 했다.
‘열려진 문’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문을 열었다’는 표현이 맞겠다. 누군가가 하자고 한 것도, 해야만 하는 상황도 아니었다. 한 번쯤은 순수한 나의 의지대로 도전해보고 싶었다.
나는 여수 라마다호텔 24층에서 바다를 향해 날아갈 것이다. 곧.
이제 우리 차례다. 갑자기 큰 딸이 눈물을 글썽인다. 작은 딸은 여기저기 눈알을 굴리고, 나도 갑자기 몸이 경직된다. 이 모든 당황스러운 상황에서 가장 불안한 사람은 단연코 남편이다.
그러나 우리는 아무도 포기하지 않았다.
바르르 떨면서 생명줄을 맸고, 앞쪽 가림막이 열리면서 동시에 바닥에서 발을 뗐다. 마구마구 뛰기 시작한 심장 소리가 주위의 모든 것을 삼켜버린 그 순간, 내 몸은 이미 바다 위에 떠 있었고, 순식간에 두려움이 흥분으로 바뀌었다. 나는 저 높은 곳에서 아래로 아래로 날개를 펼쳐 부드럽게 하강하고 있었다. 옆에서 딸아이의 비명소리가 아련하게 들렸지만 분명 거기에도 옅은 기쁨의 향기가 베여 있음이 분명했다.
이 날을 떠올리며 몇날 며칠을 고민하고 걱정했던가, 급기야 오늘 아침에는 물 한 모금에 체기가 생겨 줄곧 얼마나 속이 불편했던가, 그 긴 고뇌의 시간에 비하면 실제 비행시간은 1분 30초 정도밖에 되지 않았고, 나는 한국인 최초로 에베레스트 정상을 오른 것마냥 뿌듯함에 히죽히죽 얼마나 오랫동안 입을 다물지 못했던가.
나이가 들어 가면서(정말 쓰고싶은 표현은 아니지만,,. 어쩌면 ‘늙어가면서’라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른다) 더 이상 할 수 없어지는 것들이 하나 둘 늘어나게 된다. 그것은 분명 몸의 기능이나 체력이 약해져서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겠지만, 사회적 고정관념에 의해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것들도 많은 것 같다.
물리적인 부분은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받아들이겠지만, 정서적인 부분까지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틀을 따라가고 싶지는 않다.
내 앞에 하나, 둘 만들어지고 있는 높은 벽들을 쿵쿵 뿌리박게 그냥 내버려두지는 않겠다.
결국 깊이 뿌리내리게 되는 날은 오겠지만, 마음의 눈으로라도 조금 더 멀리, 더 넓게 볼 수 있도록 내 앞을 가로막려는 것들을 힘껏 차 버리겠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힘껏!